칼럼 > 음악 > 주목, 이주의 앨범
추악한 이 세상은 고결한 영혼을 역겨워한다. 이토록 불결한 공기를 매일 먹은 남자는 백혈구가 감기 인자와 싸우듯, 그간 섭취한 독의 덩어리들을 세차게 토해낸다. '달'과 '별'이라는 예쁜 단어 안에는 분명 '시대의 내면'이 꿈틀거리고 있다.
독한 술이 반드시 필요한 하루. 사랑한다는 말이 소음으로 비쳐질 때 절망한 별은 하는 수 없이 심하게 취하는 것으로 새벽을 보내야만 한다. 희망에 손을 뻗어보지만 번번이 내쳐지는 운명에 지친 그는 무심한 한탄과 표독스러운 야성미로 나그네의 여독을 푼다. 김일두의 음악은 그런 별의 이야기를 담아 태어났다.
서늘한 언어로 가득한 이 낭만파 포크(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발라드) 앨범의 핵심은 '불편함'이다. 이야기의 전달을 의식의 흐름에 맡기다보니 구조적으로 정돈되지 못하고, 간혹 활자와 선율의 아귀가 맞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친절하지 못한 화법은 평화로운(나쁜 의미로 잔잔한) 나날을 원하는 이들이 아주 불편해 할 만한 방식으로, 낮은 곳의 이들에게는 쾌감을 선사하며, 스스로 변두리의 위치를 지향하면서도 도심지의 지하에까지 자연스레 퍼져 곳곳으로 스며들게 한다.
"여름 지나기 전 벙어리 피아노의 B를 쳐야 돼"(벙어리 피아노)라든가 "함께 본 건 하늘과 목 부러진 귀신"(시인의 다리)처럼 단어의 생경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이상야릇한 분위기는 밀레니엄 이후 대두된 미래파 시인들을 연상시키면서, 김일두를 처음 접한 이들을 먼저 한 번 밀어낸다. 게다가 안 그래도 파악하기 쉽지 않은 그의 심중은 격한 비명의 반복 배치로 분한 '파토스'에 의해 더욱 깊은 바다의 밑바닥까지 가라앉는다.(직격탄) 그를 소화해내기 위해서는 끝끝내 버틸 수 있는 끈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상상 속에서 그의 목소리를 지워보자. 남은 것은 단출한 코드의 고운 기타 스트로크, 혹은 화음을 펼쳐놓은 아르페지오뿐이다. 그 정도의 평범한(그 위에 어떤 목소리를 올려도 괜찮을 법한) 코드들을 러프한 손의 움직임으로 뒤틀어 장식한다. 서주부에는 기타의 독백으로 탁한 여백을 만들기도 한다. 청자들은 한층 더 불쾌해지고, 심지어는 강한 이질감에 몸서리치게 된다. 마치 흰 포장지로 계피 사탕을 감싼 것처럼, 웅크리고 있지만 언제든 검은 독을 뿜을 수 있는 혀를 구축한 셈이다. 그야말로 일관되게 반항적이다.
그러한 불친절함과 까다로움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의 결핍을 날것 자체로 내보인다는 점에서 이 앨범은 의미가 있다. 낯선 언어의 나열에다가 여기저기 친밀감이 상실된 구석이 가득하지만, 사실 그 모습이 꾸밈없는 우리의 자화상이기에, 첫인상에서 거부감을 느꼈다 할지라도 마침내는 왠지 모를 끌림을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행복과 슬픔의 굴레 안에서 방황하던 남자가 매끄럽진 않지만 고결한 음색으로 “그만 여기까지”라는 말을 토해낼 때, 우리는 그 어떤 기교나 고음역대의 안정적인 발사 같은 건 차치하고 오직 그 목소리의 무게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타고난 무언가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완성시킨다는 건 바로 이런 사람에게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상, 임화, 기형도. 신이 앗아간 무고한 이름들. 그들을 대신해 지상에 내려준 새 영혼 가운데 김일두, 그가 있음을 결코 의심치 않는다. 삶을 녹여낸 서정은 이토록 짙고 뜨겁다. 아픈 생은 모질도록 밉고, 사랑스럽고, 눈이 예쁜 아이는 먼 하늘을 그리워한다.
2015/05 홍은솔(kyrie17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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