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음악 > 주목, 이주의 앨범
오만이 피해의식을 만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한때의 랩 지니어스가 '랩 찌질이'가 된 이유를 단순한 헤이터들의 질투 때문이라 판단하니 자연히 잔뜩 날이 서고, 성공을 위한 마이웨이의 다짐만 굳어진다. 긴 시간을 기다려 발매된 산이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은 작품보다 소문, 가십에 휘둘린 작품이다.
소위 '감성 힙합'이나 '발라드 랩'으로 성공한 MC들이 비판받는 것은 이중적 태도 때문이다. 한때 씬을 책임질 기대주로 평가받았던 이들이 정작 그 잠재력의 반의반도 활용하지 못하거나 일부러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고, '성공', '효도' 등 거창한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워 시류에 영합하면서도 힙합 아이덴티티는 지독하리만치 고수한다. 상업적 성공과 대의명분 중 선택과 집중이 요구되는데, 실리는 챙기면서 '난 변하지 않았어'라 주장하면 설득력이 있을 리 없다. 갑론을박 속에서 산이는 이 비판을 단순한 헤이터들의 질투로 규정하며 무시하거나, 실력을 과신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때문에 앨범은 메이저 씬에서 성공을 거둔 힙합 아티스들이 범하는 흔한 오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만다. 「나 왜 이래」와 「한 여름 밤의 꿀」 시리즈, 혹은 힙합 아티스트로써 자신을 증명하려 하는 랩 트랙으로 편이 갈리니 일관성은 일단 기대할 수 없다. 불가능하겠지만 아예 '가요 랩 전향'이나 '100% 힙합' 둘 중 하나를 표방했다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
「#LuvUHater」부터 이어지는 음침한 트랩 비트 위의 날 선 랩에는 과도하게 힘이 실렸다. 빅 션(Big Sean)의 랩에 감명받은듯한 플로우와 스토리텔링, 가사부터 훅까지 흥미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없다. 던 밀스와 씨잼, 양동근의 합세에 최고의 피쳐링 랩퍼인 그가 뒤로 물러나는 모습도 보인다. 건조한 리듬에 유치한 디스와 끔찍한 데뷔를 욱여넣는 기행을 선보인 「모두가 내 발아래」나 세 명이 따로 노는 「I deserve it」같은 최악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산이의 성공 공식을 따라간 두 트랙은 무난하다. 백예린이 상큼함을 더한 「Me you」, 서정적인 분위기의 「She's」는 음원 차트에 오래 머무를 곡이다. 이 더블 타이틀은 산이가 굳이 힙합을 고수하지 않아도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고유의 코드를 확립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스토리텔링 기법을 다시 가져온 「Using you」나, 다소 뻔한 이야기긴 하지만 유일하게 진실한 고뇌가 담긴 「성공하고 싶었어」도 충분한 감상을 가져갈 수 있다.
산이가 두려워하고 고민할 대상은 대중이 아니다. 어정쩡한 선택으로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것은 그가 더 잘 안다. 사람들도 처음부터 양치기 소년을 불신했던 것은 아니다. 그 자신도 어쩔 줄 몰라 독기만을 가득 품은 지금, '늑대가 나타났다'같은 앨범에 공감할 수는 없을 뿐이다.
2015/04 김도헌(zener12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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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 래퍼로 자리매김하며 올해로 데뷔 5년차를 맞이한 랩지니어스 산이의 첫 번째 정규앨범 [양치기 소년]은 먼저 공개된 수록곡 '#LuvUHater'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그간 산이를 둘러싼 많은 루머와 오해들에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며 이번 앨범의 컨셉을 짐작케 하는 듯 하지만, 거짓말을 소재로 하는 동화 '양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