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마카오에서 먹으며 즐긴 태교여행
많이 걷고, 자주 먹고, 헤매는 여행
태교여행이라고 하면 여유로워 보이지만, 임산부는 사실 힘들다. 가만히 서 있어도 힘들고, 커다란 배 때문에 바로 눕지도 못 한다. 입덧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없었던 빈혈이 생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힘들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여행을 가는 것은 육아에 파묻힌 아줌마가 되기 전에 마지막 자유를 누리기 위한 발버둥이다.
임신을 하고 아기 엄마들이 많이 가입한다는 카페에 가입했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해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해야 할 수많은 일과 그 일을 조금 편하게 해줄 주옥같은 조언이 가득했는데, 그 중에 내 심금을 울린 말은 ‘아기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여행 많이 다녀요’였다. 육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그때까지도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하나는 알 것 같았다. 아이를 낳고 나면, 향후 몇 년 동안 내 인생은 없어질 거라는 것 말이다.
그래서 임신 7개월, 31주에 여행을 떠났다. 아슬아슬한 시기였는데, 임신 32주 이후엔 항공사에서 탑승 거부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태교여행을 떠나는 임산부가 늘면서 임산부 케어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항공사가 늘었지만, 기본적으로 비행기에는 임산부 배려석이 없다. 그나마 공간이 넓은 맨 앞좌석이나 움직이기 편한 통로 측으로 배치해주긴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라서 주의가 필요하다.
여행지를 홍콩으로 정한 건 별 이유 없었다. 운 좋게 저렴한 비행기 표를 구했고, 남편과 나 둘 다 홍콩에 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우리는 기대를 최대한 줄였다. 나는 집에서 요리를 할 때도 어지럼증 때문에 중간 중간 쉬어가며 해야 하는 임산부였다. 많이 걷고, 많이 보는 대신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숙소를 예약하며 조식을 전부 생략했는데, 이건 조금 후회되는 일이다. 남편은 아침엔 밥보다 늦잠을 자는 타입인데 반해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가장 든든하게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홍콩에 도착한 첫날부터 우리를 헤매게 한 맥도날드. 밤에만 파는 메뉴인데 맛있었다.
비행기는 홍콩에 밤늦게 도착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눈에 띈 건 맥도날드였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메뉴판에 그려진 밥 그림이 ‘나는 홍콩에서만 먹을 수 있는 메뉴야’라고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기와 브로콜리가 곁들어진 따뜻한 밥은 생각보다 더 맛있었다. 부실한 기내식을 먹고 출출했던 참에 든든한 야참이었다. 중간에 딴 길로 샜기 때문에, 같은 비행기를 내린 사람들이 어디로 이동하는 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우린 그때부터 길을 헤매기 시작해서, 홍콩에 머무르는 내내 길을 찾기 위한 사투를 벌여야 했다.
홍콩 음식은 맛있다고 했는데, 첫날 아침식사는 그렇지 못했다. 나름 대중적으로 보이는 식당이었는데 분명 건물 벽엔 음식사진과 가격이 함께 표시되어 있었는데, 메뉴를 체크하는 메뉴판엔 중국어와 간단한 영어만 있었기 때문이다. boiled pork with vegetable(삶은 돼지고기와 야채), steamed pork with fried noodle(찐 돼지고기와 튀긴 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찌 보면 불고기가 bulgogi인 우리나라보다는 친절한 메뉴설명이었지만, 중국요리에 익숙하지 않은지라 이 정도 설명으로는 어떤 맛인지 상상하는 게 쉽지 않았다. 처음으로 고른 튀긴 면요리는 완전 실패했다. 면 한 올 한 올에 배인 묵직한 기름과 짠 소스의 조합은 어떻게 참고 넘기기 힘든 수준이어서, 자스민 차만 들이켰다.
홍콩에서 먹은 충격과 공포의 튀긴 면 요리 / 건더기가 알찬 완탕면 / 시원한 망고 디저트
그 다음부턴 신중하게 메뉴판에 사진이 확실히 있는 곳을 골라 들어가거나, 한국에서 들고 온 가이드북을 참고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음식이 비슷비슷한 수준이었다. 반면에 마카오에서는 어떤 것을 먹어도 맛있었는데 비밀은 가지고 갔던 관광책자에 있었다. 홍콩의 경우 ‘$HK50로 즐기는 맛있는 홍콩’이란 제목으로 약 7천 원 정도에 즐길 수 있는 저렴한 요리를 소개하고 있었고, 마카오는 ‘마카오 미식여행’으로 고급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한 책이었다. 첫 메뉴 선택에 실패한 후에, 책자만 믿고 다녔더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 대체적으로 음식총평을 적어보자면 딤섬은 어디를 가나 맛있었고, 샌드위치나 스파게티는 우리나라와 별 다를 바 없었다. 완탕면은 탱글탱글한 새우 완자를 뜨끈한 국물과 함께 먹는 게 좋았다.
프리팜(www.freepam.co.kr)에서 택배비만 내면 받을 수 있는 여행책자.
홍콩, 마카오, 대만 가이드북을 받아볼 수 있는데,
번역이 깔끔하고 내용이 알차 대부분의 여행자가 필수로 가져간다.
홍콩에서는 대부분의 관광지가 숙소에서 걸어갈 만 했기에 많이 걸었다. 임신하고 이렇게 많이 걸은 것은 처음이었다. 홍콩은 오랫동안 영국령이었기 때문에 영어가 잘 통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진 않았다. 중국어가 더 우세했고, 도시 사람들은 바빴다. 로밍해온 핸드폰으로 위치 검색을 했는데, 비슷한 곳까지는 데려다주는데 목적지 앞에선 자꾸만 우리를 빙글빙글 돌게 만들었다. 부른 배는 무겁고, 날은 덥고, 자꾸 헤매기만 하고. 마음에 파고가 일 때마다 커피나 망고음료를 입으로 밀어 넣었다. 단걸 먹고 나면 잠시 기분이 좋았다. 그것으로도 해결이 안 되면 남편을 끌고 카페로 들어가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앉아 쉬었다. 홍콩을 그렇게 돌아 다녔는데 그 유명한 빅토리아 피크엔 가보지도 못했다. 야경으로 유명한 곳인데, 낮 동안 너무 걸어서 밤엔 피곤해서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홍콩이 번잡한 도심가라면, 마카오는 세계유산이 있는 휴양도시에 가깝다. 바로 옆에 있는 섬이지만, 홍콩은 영국령이었고 마카오는 포르투갈령이었던 차이가 아직도 선명히 드러난다. 마카오에 들어서는 순간 도로표지판에 중국어와 포르투갈어가 나란히 적혀 있는 걸 볼 수 있고, 포르투갈 특유의 흑백이 교차하는 깔사다 장식을 볼 수 있다. 홍콩과 비교하자면 교통여건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호텔 셔틀이 주요 관광지에 다 데려다 주는지라 다니기엔 더 편했다. 버스는 카지노와도 연계되어 있으므로, 실제로 머물고 있는 호텔과 관계없이 아무 버스나 타도 문제없다. 셔틀에 탈 때마다 쿠폰북을 받을 수 있는데 카지노뿐만 아니라, 호텔지구 내에서 식사나 쇼핑 관련 할인을 받을 수도 있으므로 한번 정도는 체크해 보는 것도 괜찮다.
마카오에서 먹은 미슐랭 투스타 매캐니즈 요리 가격은 비싸지만, 그만큼 맛있었다.
마카오 미식여행을 보고 먹어본 매캐니즈 푸드는 감동적이었다. 토마토 퓌레에 다양한 해물을 넣고 푹 끓인 해물밥, 매콤한 맛 때문에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다는 아프리칸 치킨, 고소한 오리기름이 배인 오리밥. 포르투갈 요리와 중국요리가 섞여서인지 느끼하지 않으면서 감칠맛이 나는 게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가끔 그때의 맛이 입안에 맴돌며 다시 먹고 싶어진다. 누가 해물밥을 보고 국물이 쌀알에 쏙 배어들어간 해물국밥 같다고 했는데, 딱 그런 정갈하고 깊은 맛이 난다. 맛있는 만큼, 가격도 꽤 나가는 편이다.
그냥 잘 먹고, 마음대로 돌아다닌 여행이라 잘 쉬었다 싶었다. 부른 배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여행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아이를 낳고, 본격적으로 육아를 시작하고 나니 한 끼라도 제대로 먹는 게 소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엄마들처럼 나 역시 미역국에 식은 밥을 대충 말아 먹는 나날을 보내다 보니, 왜 더 늦기 전에 여행가라고 하는지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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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쩌다보니 이곳저곳 여행 다닌 경험이 쌓여가네요. 여행자라기엔 아직도 어설프지만, 그래도 오래 다니다 보니 여행에 대한 생각이 좀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미국, 캐나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일본, 대만, 중국 등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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