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의 도시 라스베가스와 마카오
3천원으로 즐기는 소박한 카지노 체험기
라스베가스와 마카오는 아주 닮은 도시다. 두 도시 다 야경이 화려하고, 호텔 속에 수로를 숨기고 있으며, 카지노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아주 다르다. 라스베가스는 훨씬 더 크고 환상적이며, 마카오에서는 뭘 먹어도 다 맛있다.
미라지 호텔의 화산쇼와 파리 호텔의 에펠타워
화려하기 그지없는 라스베가스의 밤
카지노에 처음 갔을 때, 내가 쓴 금액은 단돈 2달러였다. 사실 1달러만 쓰고 싶었지만, 칩을 교환하는 최소 단위가 2달러였다. 라스베가스에서 2달러만 쓰고 넘어가다니, 나름 건전한 밤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서도 숙소에 가서 바로 잠을 청한 일행도 있었으니 완전 건전한 것도 아니었다. 세상에서 도박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에 와서도 전혀 흔들림 없는 자세라니, 조금 감탄했다. 정말 눈길 한번 안주고 바로 침대로 달려갔으니 말이다.
카지노는 라스베가스에서 그리 잘나지도, 완전 후지지도 않은 호텔에 있었다. 단체 관광객이 묵기에 적절한 호텔이었고, 나름 갖출 건 다 갖추고 있었다.
다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아쉬운 점이 많았다. 낡은 카페트와 어두컴컴한 조명, 그리고 섹시한 바니 걸 복장을 한 40대 웨이트리스들. 짧은 치마와 드러난 가슴은 놀라울 정도였지만, 얼굴에 주름은 감출길이 없었다.
늦은 밤, 혼곤한 정신으로 슬롯머신의 버튼을 눌렀다. 같은 그림을 세 개 맞추면 이기는 게임의 룰은 명료했고, 조작방법도 아주 간단했다. 칩 열 개가 백 개가 되었다 다시 열 개로 줄고, 이백 개가 되었다. 운이 좋은 밤이었다.
바로 옆에서 20달러가 1분도 안 돼 공중에 다 산화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운이 더 실감났다. 내 2달러는 크게 늘지도, 줄지도 않으며 계속 생명을 유지했다. 최초 투자금이 적으니 잭팟이 터져봐야 수익도 소소했고, 잃어야 손해 볼 것도 없으니 스릴도 없었다.
결국엔 버튼을 누르는 것도 귀찮아지기 시작해, 투자금을 다 잃고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던 일행과 칩을 나눴다. 그리고 그 순간, 금발의 웨이트리스가 맥주병이 늘어선 쟁반을 들고 내게 다가 왔다.
“우쥬 라잌 드링크 섬띵?”
내가 어벙하게 있자, 그녀는 호방하게 웃으며 말했다. 물, 맥주, 칵테일 중에서 고르면 자기가 가져다주겠다며, 팁을 잊지 말라고 윙크도 찡긋 날렸다. 누가 봐도 최소 40대로 보이는 그녀는 마치 손녀에게 말하듯 친절하게 천천히, 분명한 발음으로 반복했다.
카지노의 정말 멋진 점은 게임을 하는 동안 모든 음료가 무료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무료는 아니다. 웨이트리스에게 팁을 줘야하고, 알코올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게임을 멈추기 힘들어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짜 드링크가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고 카지노가 나를 제대로 대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도전할 수 있는 슬롯머신 앞에 붙어 깨작거리고 있을 뿐이라도 말이다.
기분이 꽤 좋았지만, 지갑을 더 열고 싶진 않았다. 적당히 기분 좋은 선에서 일어나 객실로 가는 길에 늘어선 기념품 가게를 구경했다. 정말 보기 힘든 물건들이 가득했다. 노골적이고, 섹시하고, 유쾌하지만, 이걸 사갔을 때 과연 어디에 쓸 것인가 고민되는 그런 제품들 말이다. 특히, 엉덩이와 관련된 제품이 많았다.
마지막까지 살까말까 망설였던 티셔츠
다음날 새벽, 단체로 버스에 올라 옹기종기 모여 보니 역시나 있었다. 밤새 카지노에서 젊음을 불태운 일행이 말이다. ‘어젯밤에 내가 백만 원을 땄었는데 말이야. 아침이 되니 마이너스 30만원이 되어 있네.’
그렇게 말하는 눈이 빨갛게 충혈 된 게 안쓰러웠다. 얇아진 지갑도 유감이고. 하지만, 이제 어디에 가든 라스베가스에서 화끈한 밤을 보냈다고 자랑스레 말할 수 있으리라. 촤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칩이 쏟아져 내리는 흥분과 그 칩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오싹한 순간을 또 언제 겪어 보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에서 머무는 단 하룻밤이었지만, 모두 다른 밤을 보낸 날이었다. 누군가는 그냥 잠을 청했고, 누구는 잠시 머물렀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밤을 불태웠다. 누가 잘 놀았고, 못 놀았는가가 아니라 사람 사는 게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다.
이때의 경험 때문인지, 그 후에 다른 카지노를 간 적이 없었다. 갈 기회는 몇 번이고 있었지만,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슬롯머신을 당기러 가는 게 내키지 않았다. 일확천금의 행운을 위해 피 같은 내 돈을 내야하는 도박은 나 같은 소시민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한 곳에서 찍은 것 같은 사진이지만
왼쪽은 라스베가스, 오른쪽은 마카오에서 찍은 사진이다.
야자수까지 비슷하게 심어뒀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두 번째 카지노가 다가왔다. 동양의 라스베가스, 마카오에 간 것이다. 여러모로 놀라운 도시였다. 규모는 작았지만, 확실히 라스베가스였다. 베네시안 호텔의 수로가 있고, 하늘로 솟구치는 물줄기가 음악과 어우러지는 분수 쇼도 있고, 밤을 밝히는 화려한 야경이 있었다.
휘황찬란한 호텔들은 카지노를 끼고 있었는데, 안이 전혀 보이지 않도록 벽을 세운 입구에 제복을 입은 보안요원들이 서 있었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선글라스를 칼같이 끼고, 엄청난 덩치로 위압감을 풍겨대진 않았다. 외려 깡마른 중년 아저씨나 몸이 퉁퉁한 아줌마 보안요원이 서있어 입구가 막혀있긴 했는데 친근한 느낌이었다. 중국은 어떤 의미에서 남녀와 외모가 평등한 나라인 것 같다.
마카오의 카지노 내부는 퇴폐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깔끔하게 유니폼을 차려입은 딜러와 웨이트리스들이 있었다. 바니걸 복장을 생각했던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조명도 매우 밝았으며, 전체적으로 깔끔한 느낌이었다.
여기서도 음료가 무료로 제공되었는데, 한잔씩 갖다 주는 게 아니라 음료 카트가 이동하면 거기서 알아서 가져가면 되었다. 물과 알코올과 따뜻한 차가 무한 리필 되었다. 세상에, 도박장에서 따뜻한 차라니! 중국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차를 즐기고, 뜨거운 물 인심이 후하다더니 카지노에서도 그랬다.
따뜻한 자스민 차를 들고, 슬롯머신 앞에 선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중국어였다. 버튼도 많고, 게임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 더 간단한 게임이 있는가 싶어 카지노 안을 빙글빙글 돌며 여러 기계를 봤지만 모두 중국어였다.
일단 칩을 바꿔야 될 것 같아 캐시 창구로 갔는데, 마카오에선 그냥 현금으로 게임이 가능했다. 홍콩달러를 기계에 집어넣고, 아무 버튼이나 눌렀다. 기계가 번쩍번쩍 빛이 나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지폐를 밀어 넣었다. 번쩍번쩍, 그리고 기계에서 종이가 하나 톡 튀어나왔다. 캐시아웃, 100홍콩달러? 아, 이긴 거구나. 감이 왔다. 어떤 구조로 게임이 진행되는지도 모른 채 그냥 마구잡이로 눌렀다.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캐시아웃 티켓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손에 남은 건 300홍콩달러짜리 캐시아웃 티켓이었다. 야호! 그걸 들고 카드게임이 펼쳐지는 테이블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여러 종류의 게임이 있었다. 홀짝을 맞추는 게임, 주사위를 굴려 주사위 눈의 합을 맞추는 게임, 공이 어디에 맞출지를 예상하는 룰렛 등등. 그러나 테이블 옆에 적힌 최소 배팅단위를 보자 도저히 게임을 할 수가 없었다.
최소 배팅단위가 300홍콩달러부터 시작해서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여기에 나와 있지 않은 더 비싼 단위는 안에 있는 시크릿 룸에서 가능하다고 했다. 아, 게임 한방에 4만원. 손이 덜덜 떨려서 할 수가 없었다.
10홍콩달러 정도야 잃어도 하나도 아쉬울 것 없지만, 300홍콩달러는 달랐다. 소심한 가슴을 부여잡고 나는 그렇게 카지노를 나섰다.
그날 딴 돈은 마카오 공항까지 가는 택시비가 되었다. 새벽 두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라 마지막 공항리무진을 타고 미리 공항에 가 있을까 했는데, 카지노에서 딴 돈으로 새벽까지 마카오의 야경을 즐기다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마카오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준 선물을 참으로 유용했다. 홍콩공항과 달리 마카오공항은 규모가 작았고, 새벽이라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아 시간을 때울 만한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소박하게 카지노를 다니며 얻은 교훈을 적어보자면 여권을 꼭 지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지노에는 18세 미만 청소년의 출입이 금지되므로 여권 검사를 열심히 한다.
또, 카지노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사항으로 카지노 안에서 사진을 찍다간 보안 팀에게 끌려갈 수 있다.
그리고 카지노는 사실 금연구역이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볼 수 없지만, 화장실이나 으슥한 곳에는 꼭 담배냄새가 배어있다. 그리고 카지노 입구에는 항상 흡연가들이 모여 있다. 한 발짝만 들어서면 담배를 필 수 없으니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를 내뿜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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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쩌다보니 이곳저곳 여행 다닌 경험이 쌓여가네요. 여행자라기엔 아직도 어설프지만, 그래도 오래 다니다 보니 여행에 대한 생각이 좀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미국, 캐나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일본, 대만, 중국 등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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