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의 삶을 꿈꾸는 도시인들에게
『산골농부의 자연밥상』
모쪼록 이 책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혹은 그렇게 살아가고자하는 분들에게 응원이 되었으면 싶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만 자급자족의 삶을 꿈꾸는 분들에게도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원도 산골에서 농사짓고, 요리하고, 글을 쓰면서 여섯 번째 봄을 맞는다. 가끔은 남편이 도와줄 때도 있지만, 500여 평 되는 밭을 일구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타고난 건강과 농사 솜씨가 남다를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전혀 아니다!
귀촌하기 전까지 뭔가를 심어본 경험이라곤 화분에 과꽃 씨앗 몇 알을 밀어 넣다시피 심은 게 전부였다. 화분을 빛이 잘 들지도 않는 베란다에 두고 물을 너무 자주 줘서 꽃도 못 보고 끝이 났다. 단 한 번의 경험으로 생명을 키우는 일에 더럭 겁이 났다. 그 후로 더 이상 뭔가를 키워보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냥, 안 하면 그만이지 하는 식이었다. 요리도 마찬가지였다. 안 하고 안 먹으면 간단했다. 입맛 당기는 음식은 외식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굳이 집에서 만들 이유가 없었다. 건강에도 무관심했다. 별명이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었지만 도무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지금은 매일 새로운 음식을 만들며, 그 과정을 블로그에 소개하고 있다. 또 매월 2개 매체에 요리 칼럼을 쓰고 있고, 그동안 틈틈이 써온 농사와 요리에 관한 글이 책으로 출간된다. 무미건조했던 내 삶에 찾아온 이 엄청난 변화가 새삼스럽고 또 가슴 벅차다. 삶도 농사도 요리도 그만그만한 시행착오는 있게 마련인데, 이제 그 시간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니 모든 게 감사하고 행복하다.
지금 생각해도 디지털과는 전혀 인연이 없던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게 참 신기하다. 귀촌할 무렵 컴맹은 면했지만 고작해야 일기를 쓰는 정도였다. 넷맹을 면한 건 2004년, 태평농에 입문해 더듬더듬 홈페이지를 보면서부터였다. 그러다 지인의 권유로 2008년 봄에 블로그라는 것을 개설해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니, 손수 농사짓고 자연이 내준 음식들을 먹으면서 그 사이 몸도 마음도 무척 건강해져 있었다. 이때부터 어떻게 하면 안 하고 안 먹을까 궁리하기 급급했던 요리에 조금씩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준 농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이웃과 나눠야겠다는 마음도 일었다. 서툰 솜씨지만 농사짓는 과정과 텃밭에서 거둔 먹을거리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디지털 카메라에 담아 소개했다. 누가 얼마나 볼까 싶었는데 포스팅한 글의 조회수가 올라가고 댓글이 점점 늘어났다. 누구 봐도 알아보기 쉽게 정리해야겠구나 싶어 더욱 정성을 기울였다.
사실 산골에서 농사를 짓다보면 일상적인 대인관계는 협소해질 수 밖에 없다. 뭐하나 내세울 것 없는 산골농부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된 데는 블로그 덕이 컸다. 지난 7년 동안 <산골농부 자연밥상>에 포스팅한 글이 무려 5천 개가 넘었다. 어지간히 쓰고, 사진도 엄청나게 찍었다. 이야깃거리가 많아서라기보다는 소소한 산골의 일상에서 얻는 감동이 컸고, 그렇게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좋았기에 꾸준히 할 수 있었다. 자화자찬 같지만 그 시간들을 즐기다 보니 그동안 요리 실력이나 사진 찍는 솜씨가 많이 늘었다. 그리고 블로그 이웃들과 나누는 교감이 고즈넉한 산골을 훈훈한 정으로 채워줬다.
강원도 산골에 새로이 둥지를 틀면서 본격적으로 나 홀로 농사를 시작했다. 태평농 고방연구원에서 몇 년을 보냈는데도 산골에서 첫 농사는 심는 시기도 가늠하지 못해 여름에 심어야 할 콩을 봄에 심고, 식용은커녕 씨앗도 못 받아 대代가 끊긴 작물도 여럿 있었다. 이웃들 보기 민망할 정도로 풀만 수북하게 자란 밭에서 가위질하다 지쳐서 주저앉은 적도 수십 번이었다. 몇몇 작물을 제외하곤 거둘 게 없어서 가장 바빠야 할 추수기를 멍하니 보내기도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난 가을은 대풍년이었다.
토착종 씨앗을 심어서 가꾼 제철음식으로 차리는 산골밥상은 농사를 잘 지어 때에 맞게 거둬야 비로소 일용할 양식이 만들어진다. 오일장에 가도 내 텃밭에서 농사지은 채소를 찾아보기 어려워 작정한 요리가 있어도 때를 놓치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부족한 재료로 어설프게 만들어도 자연에서 거둔 먹을거리는 소화가 잘되고 몸이 편안했다. 마음먹기에 따라 몸이 편안해질 수 있지만, 몸이 편안할 때 마음의 평안은 더 커진다. 어느 날 문득, 음식과 몸과 마음의 연결고리가 절절하게 와 닿았다. 그래, 바로 이거야!
그때부터 예사롭게 지나치던 자생초와 시답잖게 여기던 벌레들까지도 소중해졌고, 산골의 일상에 더욱 활기가 돌았다. 굵은 드라이버나 미니괭이 같은 소도구만으로도 큰 경험 없이 농사를 짓고, 요리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손수 만든 음식으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바꿨다는 건 무엇보다 신나고 벅찬 일이 아닌가.
농사와 요리에 탄력이 더해진 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궁금증과 호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좋아지면 궁금한 게 많아지고 보고 싶어지는 것처럼, 내겐 농사와 요리가 그랬다. 작물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점점 더 궁금해지고 좀더 다가가고 싶었다. 그리고 궁금증이 한 가지씩 풀릴 때마다 더욱 각별해졌다.
주위에선 날마다 새로운 요리를 선보이는 산골밥상을 경이롭게 여기는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진짜 별것 아니다. 밭에서 키우는 작물은 한정돼 있고 거두는 시기도 정해져 있다. 그러니 지루하지 않게 좀 더 맛있게 먹으려면 먹는 방법이 다양해야 한다. 나에게 ‘잘 먹는다는 것’은 내 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키워준 흙과 작물에 대한 도리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예를 다하면 몸은 자연히 건강해진다. 손에 닿는 식재료마다 사랑하는 사람 떠올리듯 간절한 마음을 기울이면 신통하게 숨어있는 맛이 톡톡 튀어나와 내가 만들어 놓고도 그 맛에 흠뻑 반한다. 다양한 요리와 풍성한 맛은 작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만들어가는 것 같다.
산골 농사와 내 요리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실 분들도 적잖이 있을 듯싶다. 거름을 하지 않아도 소출이 있는지, 두둑을 만들어도 캐기 힘든 고구마를 평지에 심어 어떻게 캐는지, 재료가 암만 신선해도 기본양념조차 갖추지 않은 음식에서 감칠맛이라니.. 선뜻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여기에 담긴 글은 내 체험이며 내가 심어 거둔 작물과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준 음식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대부분의 일들이 열정만으로 술술 풀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한눈팔지 않고 지금껏 올곧게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스승인 태평농 이영문 선생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다. 시골 살림이란 게 일이 좀 많은가. 농사는 물론 일상에서 빚어지는 온갖 궁금증에 대해 근본 원리까지 콕콕 짚어주는 선생님 답변이 네이버 검색보다 빠르고 명확하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더 많은 질문으로 두툼한 노트를 빼곡히 채웠다. 제자가 똑똑하면 하나만 일러줘도 열을 깨우치겠지만 그러질 못하니 하나를 여쭈면 열을 일러주셨다.
열심히 배우고 익혔다고는 하지만 누군들 나만큼 노력하지 않을까. 운도 따라준 것이다. 좋은 인연으로 이 책을 준비하면서 농사짓고 요리하는 동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고, 쉽게 풀리지 않는 글을 붙들고 끙끙대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게 레시피를 정리하면서 계량을 표준화하는 것이었다. 내가 먹기 위해 요리하고 그걸 블로그에 올릴 때는 그저 내 식대로 하면 됐는데, 막상 책으로 출간하려고 보니 좀 더 구체적인 계량이 필요했다. 재료의 수분 함량이나 보관 방법, 먹는 사람의 취향 등에 따라 조금씩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처음 시도하는 분들에게 가이드를 해준다는 마음으로 여러 번 만들어보면서 정리한 것이지만 미흡한 부분이 많다. 대부분 1인분을 기준으로 했으니, 각자의 필요에 맞게 가감하길 바란다.
모쪼록 이 책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혹은 그렇게 살아가고자하는 분들에게 응원이 되었으면 싶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만 자급자족의 삶을 꿈꾸는 분들에게도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5년 봄날,
산골농부 자운
산골농부의 자연밥상자운 저 | 한문화
강원도 산골에서 태평농법으로 농사짓고, 직접 거둔 식재료로 요리하고, 농사와 요리에 대한 글을 쓰는 산골농부 자운의 자급자족 라이프를 담은 책이다. 저자가 짓는 태평농은 봄이 되면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거름을 주며 키우는 일반 농사법과는 다르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유기농법과도 다르다. 태평농은 말 그대로 무농약, 무비료, 무시비, 무경운으로 자연의 힘을 믿고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자연농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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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농부의 자연밥상』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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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골에서 태평농법으로 농사짓고, 직접 거둔 식재료로 요리하고, 농사와 요리에 대한 글을 쓰는 산골농부 자운의 자급자족 라이프를 담은 책이다. 저자가 짓는 태평농은 봄이 되면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거름을 주며 키우는 일반 농사법과는 다르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유기농법과도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