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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라우스의 마지막 선물,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Vier letzte Lie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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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제목처럼 이 음악은 모두 네 곡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1곡 ‘봄’, 2곡 ‘9월’, 3곡 ‘잠들 무렵’은 헤르만 헤세의 시에 곡을 붙였고, 4곡 ‘저녁노을’은 아이헨도르프의 시를 가사로 삼았습니다. 편편마다 추억에 대한 회상, 또 죽음을 앞둔 노년의 심경이 애잔하게 서려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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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면에서 오페라 이야기를 한 적은 없습니다. 오페라는 별도로 다뤄야 할 또 하나의 방대한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 대해 다시 한번 언급하기 위해 그의 오페라 한 편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이 작곡가의 음악적 전반기를 대표하는 것은 역시 교향시일 테지만, 20세기로 접어들어 40대를 맞은 그의 음악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르는 역시 오페라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20세기 벽두인 1905년 12월 9일, 독일 드레스덴의 궁정오페라 극장에서는 매우 노골적인 오페라 한 편이 막을 올렸습니다. 이 오페라에서 섹스하고 싶다는 욕망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 여주인공은 ‘살로메’였지요. 그녀는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욕정을 느꼈고 그것을 감추지 않습니다. “네 몸에 매혹당했어” “너를 만지고 싶어” “네 입술에 키스하고 싶어”라는 고백이 그녀의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옵니다. 하지만 요한은 그녀의 노골적인 프러포즈를 거절하지요. 그러자 복수의 정념에 휩싸인 살로메는 의붓아버지 헤롯왕 앞에서 옷을 한 겹씩 벗어던지며 유혹의 춤을 춥니다. 그녀의 요구는 딱 하나입니다. “요한의 목을 잘라 내게 달라”는 것이었지요. 그때까지의 오페라 역사에서 가장 관능적이고 관음적인 장면이 그렇게 펼쳐집니다. 이른바 ‘일곱 베일의 춤’이라고 불리는 장면입니다.
 
<살로메>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오페라 작곡가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첫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이 오페라를 초연할 당시 41세였던 그는 이미 유명한 음악가였지요. 한스 폰 뷜로를 잇는 지휘자로서의 탄탄한 입지, 교향시 분야에서 이룩한 작곡가로서의 업적 등으로 슈트라우스의 명성은 이미 확고했습니다. 교향시 <돈 후앙>을 발표한 것이 1888년이었고 <죽음과 변용>은 그 다음해였습니다. 1890년대의 슈트라우스는 <맥베스><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잇따라 발표했고 마침내 <영웅의 생애>로 관현악 작곡가로서의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오페라 <살로메>의 원작은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입니다. 세기말의 탐미주의자 와일드는 신약성서 마태복음의 한 구절에서 ‘살로메’라는 소녀를 데려와 한층 더 강렬한 캐릭터로 재창조했지요. 마태복음에 서술된 세례 요한의 사형집행은 살로메의 어머니 헤로디아의 사주에 의한 것이지만, 와일드는 그것을 살로메의 좌절된 욕정과 그로 인한 복수의 드라마로 그려냈습니다. 연극 초연은 1894년 프랑스 파리에서 이뤄졌지요. 하지만 이후의 과정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초연 3년 뒤 동성애 스캔들에 휘말린 와일드는 법정 구속돼 노동 금지형에 처해졌고, <살로메>의 이마에는 ‘사악한 연극’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습니다. 당연히 수많은 극장들이 ‘쓰레기’의 상연을 거부했지요. 물론 모든 극장이 그랬던 건 아닙니다. 와일드의 고향인 영국은 완전히 문을 닫아걸었지만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간간히 공연됐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관객들은 반응이 워낙 뜨거웠던 까닭입니다. 공연 비즈니스의 측면에서 보자면, <살로메>는 포기할 수 없는 연극이었던 셈이지요. 1903년 막스 라인하르트의 연출로 베를린에서 공연됐을 때도 관객이 대거 몰렸는데, 객석에는 당시 39세였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앉아 있었습니다.  
      
그것이 오페라 <살로메>가 탄생한 배경입니다. 아마도 그날 객석에 앉아 있던 슈트라우스의 마음속에는 어떤 떨림과 흥분이 충분히 존재했을 겁니다. 두뇌 회전이 빠른 현실주의자였던 그는 이 파격적인 연극을 오페라로 만들면 결과가 어떨지를 직감했을 겁니다. 슈트라우스의 그런 측면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평은 훗날에 아도르노(1903~1969)의 입에서 흘러 나왔지요.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그 자리에 계속 멈춰 있을 수 없다. 크게 판을 벌인 사업가가 자신의 사업의 거래량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으면 이제 망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존재하지 않는 삶을 그럴듯하게 베낀 환영의 음악”이라고까지 혹평했습니다.

 

그런 혹평의 근거에도 불구하고 슈트라우스의 예감은 맞아 떨어졌습니다. 이 에로틱한 오페라의 드레스덴 초연은 대성공이었습니다. 곧바로 입소문을 탔고 세간의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이듬해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다시 공연했을 때는 인구 15만 명의 도시에서 진풍경까지 벌어졌습니다. “도시 전체가 굉장히 흥분해 있었다. 의견들이 모였다가 쪼개졌다. 술집의 철학자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떠들어댔다. 다른 지방에서 온 손님들, 평론가, 언론인, 빈에서 온 외국인들… 3회 공연이 모두 매진됐다. 짐꾼들은 무거운 짐을 나르느라 끙끙댔고 호텔 종업원들은 금고 열쇠를 가져왔다.”(알렉스 로스 『나머지는 소음이다』 중에서) 
     
일곱 베일을 하나씩 벗으며 춤추는 의붓딸의 몸을 음탕한 눈길로 더듬던 헤롯왕은 “요한의 목을 달라”는 살로메의 집요한 요구를 결국 받아들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오페라 사상 전무후무한 장면이 벌어지지요. 살로메는 은쟁반에 담겨 나온 죽은 요한의 얼굴에 격정적으로 키스를 퍼붓습니다. “나는 지금 너의 목에 키스하였노라”고 노래하면서 집착적인 욕망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이 오페라의 결론은 살로메의 욕망에 대한 찬미가 결코 아니었지요. 성애에 대한 그녀의 무아지경적 탐닉은 가부장에 의해 결국 단죄받습니다. “저 여자(살로메)를 죽이라”는 헤롯왕의 명령이 이 오페라의 종점이었던 것이지요. 20세기 벽두에 등장한 이 문제적 오페라는 그렇게 ‘가부장적 의식’ 속에 갇히고 맙니다. 그래서 철학자 지젝은 <살로메>에 대해 “남성적 응시를 위해 무대에 올려진 볼거리”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그것은 결국 슈트라우스의 인식적 한계였겠지요. 그는 타산이 빠른 현실주의자였던 동시에 가부장적인 남자였습니다. 교향시를 거쳐 오페라의 세계로 진입한 그는 <엘렉트라>(1908), <장미의 기사>(1910),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1916), <그림자 없는 여인>(1917) 등을 잇따라 작곡합니다. 55세였던 1919년에는 빈 국립오페라극장 음악감독에 취임하면서 독일ㆍ오스트리아의 가장 막강한 음악가로 입지를 굳힙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삶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이랄 수 있는 나치와의 관계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지요.

 

음악은 정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종교와 귀족이 음악의 후원자였지만, 현대로 오면서 정치권력과 자본이 음악에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특히 민주주의의 발전이 더딘 나라일수록 그 정도가 심하지요. 한데 이 지점에서 많은 음악가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이중적입니다. 음악의 순수성을 외치는 음악가들일수록 권력과 더욱 친연성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친연의 논리는 아주 단순하지요. ‘음악을 후원하는 정부’는 그 권력의 속성이 어떻든 ‘좋은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 이면에는 자신의 출세와 성공이라는 욕망이 깔려 있습니다. 슈트라우스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그는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에게 보낸 편지에서 “음악과 극장을 후원하는 새 정부”에 큰 호감을 피력합니다.

 

물론 히틀러가 완전히 권력을 장악한 1933년에 그는 69세의 노인이었습니다. 나치의 속성을 속속들이 파악하기에는 좀 늙은 나이였지요. 또 스스로를 ‘음악계의 어른’으로 인식했던 그는, 이제 정부도 바뀌었으니 ‘내가 어른 노릇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1933년에 제국음악원 총재에 취임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개막식을 위해 작곡했던 ‘올림픽 찬가’는 물론이거니와, 독일ㆍ일본ㆍ이탈리아의 3국 동맹을 기념해 작곡했던 오페라 <평화의 날>을 순수한 애국심의 발로에서 창작한 음악이라고, 본인은 그런 식으로 굳게 믿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긍정적인 자기 암시였겠지요. 분명한 것은 슈트라우스가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였고, 본인 역시 그 권력을 내려놓기 싫어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나치의 권력자들은 그를 ‘독일음악의 모범’으로 추앙하면서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영광과 오욕의 삶을 살았던 교향시와 오페라의 대가 슈트라우스는 생애 마지막 무렵에 가곡을 쓰기 위해 펜을 듭니다. 그가 남긴 200여곡의 가곡 중에서도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즐겨 듣는 <네 개의 마지막 노래>(Vier letzte Lieder)가 바로 이때, 그러니까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아내 파울리네와 함께 스위스 곳곳을 떠돌던 시기에 작곡됩니다. 사실 그는 나치에 협력하던 시절에는 전혀 가곡을 쓰지 못했지요.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그가 20년 만에 다시 손을 댄 가곡입니다. 아울러 1948년 11월에 작곡했던 피아노 반주의 가곡 ‘접시꽃’을 제외하고는 슈트라우스의 마지막 음악으로 남아 있습니다.

 

소프라노 독창과 관현악으로 이뤄진 슈트라우스의 마지막 음악에 ‘네 개의 마지막 노래’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출판업자에 의해서였지요. 어쨌든 제목처럼 이 음악은 모두 네 곡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1곡 ‘봄’, 2곡 ‘9월’, 3곡 ‘잠들 무렵’은 헤르만 헤세의 시에 곡을 붙였고, 4곡 ‘저녁노을’은 아이헨도르프의 시를 가사로 삼았습니다. 편편마다 추억에 대한 회상, 또 죽음을 앞둔 노년의 심경이 애잔하게 서려 있지요.

 

또한 이 음악은 슈트라우스가 당대의 소프라노 가수였던 아내 파울리네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기도 합니다. 소프라노 독창을 위해 작곡한 것도 그렇거니와, 가사가 드러내는 의미도 그렇습니다. 특히 2곡 ‘9월’에서 조용히 울려 퍼지는 호른 소리는 슈트라우스가 호른 연주자였던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만듭니다. 또 3곡 ‘잠들 무렵’에서는 바이올린 독주가 아름답고 애틋하게 흘러나오지요. 어느 곡이든 가사를 음미하면서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슈트라우스는 이 곡을 작곡한 이듬해인 1949년 9월 8일, 고향인 뮌헨 근처의 가르미쉬에 있는 별장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아내인 파울리네는 그 다음해 5월 13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곡 봄


‘어스름한 무덤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꿈꿨네 / 너의 나무와 푸른 바람 / 너의 향기와 새의 노래를 // 이제 너는 빛을 받으며 / 화려한 장식 속에서 / 빛을 받으면서 마치 기적처럼 내 앞에 있네 / 너는 나를 알아보고 다정하게 유혹하니/ 너의 행복한 모습에 내 온몸이 떨리네.’

 

 2곡 9월


‘정원이 슬퍼하고 있네 / 차가운 비가 꽃 속으로 파고드네 / 끝자락에 다가선 여름이 / 조용히 몸을 떠네 // 황금빛 잎사귀가 하나씩 / 높게 자란 아카시아 나무에서 떨어지네 / 놀라고 지친 여름이 엷은 미소를 보내네 / 사라져가는 정원의 꿈속에서.’

 

 3곡 잠들 무렵(Beim Schlafengehen)


‘한낮은 나를 지치게 한다 / 내 동경하는 꿈은 / 피곤한 아이처럼 기꺼이 / 별이 빛나는 밤을 맞이하는 것이라네 // 손이여, 모든 행동을 멈추어라 / 머리여, 모든 생각을 거두어라 / 내 모든 감각은 잠 속에 빠지길 원하니 // 영혼은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채 / 자유로운 날개로 날으리라 / 신비로운 밤의 나라에서 / 깊고 오래 살기 위해.’

 

 4곡 저녁 노을에(Im abendrot)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 슬픔도 기쁨도 함께 지나쳐 왔다네 / 이제는 높고 조용한 곳에서 / 우리의 방랑을 끝내고 쉰다네 // 하늘이 점점 어둑해지고 / 주위의 계곡은 낮게 가라앉는데 / 두 마리 종달새가 꿈을 꾸듯이 / 안개 속으로 날아오르네 // 이리 오게, 종달새는 그냥 울게 놓아두고. / 곧 잠들 시간이니 / 우리는 이 외로움 속에서 / 더 이상 방황하지 않으리 // 오, 넓고 고요한 평화여! /저녁노을 속에 우리는 가라앉으니 / 어쩌면 이것이 죽음인가?’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Elisabeth Schwarzkopf), 조지 셸ㆍ베를린 방송교향악단/1965년/EMI


단 한 장의 음반을 꼽는다면 이것이다. LP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수십 년간 거론돼온 명연이다. 슈바르츠코프의 목소리는 이론의 여지없이 기품 있고 아름답다. 소프라노로서의 흔들리지 않는 테크닉은 물론이거니와, 가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전달력이 돋보인다. 네 편의 시가 품고 있는 서정성과 애틋한 드라마를, 절제와 균형 속에서 묘사해내고 있다. 조지 셸이 이끄는 관현악 반주도 빼어나다.

 

 

 

 

 

 

▶군둘라 야노비츠(Gundula Janowitz), 카라얀ㆍ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973년/DG


이 음반도 놓치기 아쉽다. 전자에 비해 좀더 탐미적이고 감각적이다. 특히 깨끗하게 뻗어나가는 야노비츠의 고음이 황홀함마저 느끼게 한다. 여기에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감각적인 연주가 더해졌다. 이 음반을 듣다보면 카라얀이 왜 그녀를 발탁했는지를 저절로 수긍하게 된다.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죽음과 변용’(Tod und Verklarung)을 함께 수록했다.

 

 

 

 

 

 

 

 

 

[관련 기사]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영웅의 생애(Ein Heldenleben) >
- 고결한 슬픔의 협주곡, 엘가 <첼로 협주곡 e단조〉
- 음악가가 말하는 인생의 봄날과 사랑
- 에릭 사티, <6개의 그노시엔느> (6 Gnossiennes)
- 에릭 사티, 3개의 짐노페디(Trois Gymnopedies)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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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나머지는 소음이다

<알렉스 로스> 저/<김병화> 역40,500원(10% + 5%)

'위기론'은 언제나 등장한다. 문학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 정치의 위기, 철학의 위기……. 마찬가지로 클래식의 위기, 음악의 위기도 매체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언제나 회자되는 위기론이라고 쉽게 보면 안 된다. LP에서 CD로, CD에서 MP로 전환된 급격한 매체변화와 싸늘한 청중반응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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