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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하우스와 뭉크만으로 충분한 오슬로의 매력에 빠지다.

오페라하우스와 뭉크만으로 충분한 오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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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 오슬로 사람들처럼 그냥 웃기로 합니다. 그래, 뭉크의 <절규>를 봤잖아! 오페라하우스와 뭉크만으로도 오슬로는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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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오페라하우스

 

스톡홀름에서 꼬박 6시간 기차를 타고 이동한 오슬로. 4명이 마주보고 앉아야 하는 좌석은 삼나무처럼 기다란 다리를 지닌 북유럽 사람들과 앉기에는 불편 그 자체였습니다. 6시간 내내 누가 기다린다고, 뭘 보겠다고 오슬로에 가는지 자학할 수밖에 없었죠. 특히나 페스티벌 일정에 맞춰 끊임없이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저로서는 점점 ‘여행’이 아니라 ‘이동’이 되는 것 같아 향수병이 짙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슬로 역에 도착해 숙소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다 방전된 저의 에너지가 재충전을 시작했지 뭡니까. 바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오슬로의 오페라하우스가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입을 떡 벌리고 탄성을 자아낸 저는 숙소에 짐을 놓고 바로 오페라하우스로 달려갔습니다.

  

●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노르웨이 최대 규모의 현대적인 문화복합시설로 오슬로(Oslo) 중심부의 남쪽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다.


'우와우와’를 연발한 저는 간절한 기도와 함께 티켓박스로 갑니다. “오늘 저녁 공연 있어?” “그럼, 아름다운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야.” “얼만데? 싸고 잘 보이는 곳으로 부탁해.” 짧은 영어로 말을 하면 웃으며 반말하는 기분이라서요. 아무튼,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오슬로에서 저는 우리 돈으로 2만원에 3층 발코니 석을 확보했습니다. ‘야호!’가 절로 나오더군요. 티켓박스며 편의시설, 공연장 입구 모두 무척이나 모던한 디자인입니다. 와이파이까지 잡혀요. 오페라하우스 밖으로 나온 저는 건물 앞뒤 위아래 구석구석을 신이 나서 탐색합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할 곳 없는 세종인은 햇빛에 굶주린 이곳 사람들에게는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인데요. 공연과는 무관하게 건물 주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이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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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살에 어지러움을 느낀 저는 숙소에 들러 오랜만에 블라우스를 챙겨 입고 발레 공연을 보러 다시 오페라하우스로 향했습니다. 오슬로의 물가는 살인적이지만, 공연을 포기하지는 마세요. 500ml 생수 한 병이 3천 원을 넘는데, 2~3만 원에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볼 수 있다니까요. 고층의 발코니 석은 시야 제한이 있지만, 같은 가격의 스탠딩 석은 무대를 바로 볼 수 있어서 체력만 허락한다면 도전할 만합니다. 공연장 안도 돈이 무척 많이 들어간 모던함이 기분 좋게 묻어납니다. 발코니 석은 의자 자체가 무대를 향해 사선으로 설치돼 있고, 3줄 이상 놓지 않았습니다. 유럽 다른 나라의 100년 이상 된 오페라극장만 봐와서 일까요? 쾌적한 공연장에서 마냥 신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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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어땠냐고요? 이게 참 아이러니컬한데요. 솔직히 제가 지금껏 봐왔던 <잠자는 숲속의 미녀> 중 최하였습니다. 런던에서 봐왔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발레는 ‘선의 미학’이라고 생각하는데, 전체적으로 오슬로의 선들은 넉넉하네요. 유난히 턴과 고정 동작이 많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이다 보니, 무용수들의 기량이 여실히 드러나는데요. 다소 미흡한 그들의 무대를 보며 객석에서는 기립박수를 칩니다. 이를 지켜보는 저는 재밌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 드는데요. 쏟아지는 기름 때문에 무언가에 고생스럽게 매달릴 필요가 없어서 일까요. 고전 발레의 교과서라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치열함 보다는 ‘그냥 춤을 춘다’을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여유가 오슬로 만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공연이 끝나고 밖을 나서는데 아직 해가 지지 않았습니다. 낯선 곳에서 홀로 공연을 볼 때는 늦은 귀가 때문에 긴장하곤 하는데, 오슬로의 밤은 저를 안심하게 하네요.
 

어메이징 뭉크(Munch)

 

오슬로를 찾은 또 하나의 이유, 바로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때문입니다. 노르웨이에는 두 명의 유명한 에드바르트가 있는데요. 바로 ‘페르귄트 조곡’으로 유명한 그리그(베르겐 출신)와 ‘절규’의 뭉크입니다. 개인적으로 <절규>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영어 제목은 <스크림(The Scream)>인데요. ‘스크림’보다는 ‘절규’라는 단어에서 묻어나는 절박함이 좋습니다. 저는 지난해 영국 에든버러에서 뭉크 특별전을 봤는데요. 그때 1910년에 완성된 후기 <스크림>을 봤습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봤던 <절규>는 1983년 베를린 전시 때 처음으로 선을 보인 작품인데요. 전작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저는 반드시 오슬로에 가면 뭉크를 탐하리라 결심했죠. 특히 올해는 뭉크 탄생 150주년으로, 오슬로의 국립 미술관과 뭉크 미술관에서 그의 전후기 작품을 모두 접할 수 있습니다. 샌드위치 하나에 만 원인 오슬로에서 뭉크 패스를 구입할 경우 두 미술관을 2만6천 원 정도에 입장할 수 있으니 마냥 행복하죠. 게다가 관광도시가 아닌 오슬로의 미술관은 런던의 내셔널갤러리나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처럼 붐비지 않습니다. 덕분에 그토록 보고 싶었던 <절규> 앞에 앉아 넋을 잃어봤습니다. 모든 것이 평화로운 그곳에서 홀로 혼동에 휩싸인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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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뭉크는 어렸을 때는 병약함 때문에, 커서는 사랑 때문에 심신이 많이 고달팠던 예술가입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 이후 뒤따르는 가난과 잦은 병치레. 광기와 악몽, 불행의 이미지가 어린 뭉크를 사로잡습니다. 화가로서 첫발을 내딛으면서 만난 연인은 그에게 첫사랑의 감정을 일깨우지만, 뭉크의 절절한 순정과 달리 너무도 자유분방해 쓰린 상처를 남기죠. 뭉크는 그녀를 만나며 끊임없는 애증과 질투, 의심에 사로잡힙니다. 이런 삶이 유난히 아픔과 죽음, 사랑과 실연, 질투에 관한 작품을 많이 그려내게 합니다. 그의 내면세계를 고스란히 작품에 쏟아낸 것이죠. 한 작품에 매달려 여러 변형 작품을 남기는가 하면, 판화 작업을 즐겼기 때문에 색이 다른 같은 그림도 여러 점입니다. 오슬로의 뭉크 특별전은 올해 10월 13일까지 이어지는데요. 마음 속의 혼돈과 고통을 뭉크와 함께 나눠보십시오.

  

오슬로의 배짱이 같은 여유로움

 

미술관을 나온 저는 193점의 조각 작품이 있다는 비겔란 공원까지 유유자적 산책에 나섰습니다. 쏟아지는 햇살, 파스텔 톤의 고풍스러운 건물, 우거진 나무숲과 공원. 햇살이 귀한 북유럽권에서는 햇빛만 났다하면 사람들이 훌러덩 옷을 집어 던지고 벌러덩 드러눕습니다. 비키니는 양반이라니까요. 잔디밭을 모래사장 삼아 속옷 차림, 때로는 그냥 누워 있습니다. 지금은 평일 오후 4시인데,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쏟아져 나온 것일까요. 기름과 연어를 비롯한 풍부한 바다자원 때문에 노르웨이의 1인당 GDP는 10만 달러에 육박합니다. 세계 3위로, 우리나라의 5배 정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제가 길을 헤매며 만난 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여유롭습니다. 한국에서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했던 저의 눈에는 이들의 배짱이 같은 여유로움이 꽤 부러운데요. 많은 것을 가졌으니 굳이 치열하게, 안달복달 할 것 없는 것이죠. 무용수들의 선이 조금 우아하지 않고 미흡하더라도 그들은 혹독한 비평 대신 기분 좋게 박수로 마무리 하는 게 아닐까 저만의 설을 풀어봅니다. 하루 종일 많이 걸었던 저는 비겔란 공원에서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트램을 탔습니다. 티켓을 살 수 있는 곳이 보이지 않아 트램 안에서 바로 표를 구입했는데요. 이 경우 티켓 값이 더 비싸더군요. 10분 이동하는 데 만 원을 내야만 했습니다. 가난한 여행자에게 만 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아시죠? 속상하고 억울하고,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햄버거가 아른 거렸지만, 어차피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 오슬로 사람들처럼 그냥 웃기로 합니다. 그래, 뭉크의 <절규>를 봤잖아! 오페라하우스와 뭉크만으로도 오슬로는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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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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