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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영웅의 생애(Ein Heldenleben) >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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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듣는 <영웅의 생애 op.40>는 ‘교향시 10년’을 마무리하는 음악입니다. <영웅의 생애>는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이 그랬던 것처럼 작곡가 본인의 ‘자전적 음악’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말하자면 스스로를 한 명의 영웅으로 음악 속에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영웅의 생애(Ein Heldenle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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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검색창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입력하면 꽤 많은 사진이 뜹니다. 어떤가요? 상당히 가부장적인 느낌을 풍기지요. 완고하고 과시적인 표정, 힘을 주고 정면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눈매 같은 것들이 지금 보면 좀 웃기기까지 합니다. 물론 100여 년 전의 ‘아저씨’들은 잘 웃지 않았지요.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표정은 유난히 사납고 강해 보입니다. 예컨대 같은 시대의 인물이었던 구스타프 말러와 비교하면 그런 느낌이 더 확연합니다. 어딘지 불안하고 쓸쓸해 보이는 말러에 비하자면 슈트라우스의 표정은 확신과 저돌성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그런 슈트라우스에게도 귀여운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여섯 살 무렵의 슈트라우스는 마치 여자 아이처럼 ‘예쁜’ 꼬마였습니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당시의 사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인터넷으로 검색되지 않는 사진들도 있지요. 예컨대 사육제 의상을 입고 어린이 악대의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은 슈트라우스와 관련해 꽤 유명한 자료 가운데 하나인데, 인터넷으로는 검색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사진 속의 꼬마 슈트라우스는 다른 친구들이 모두 부동자세인 것과는 달리, 혼자서 오른손을 번쩍 들어 보이면서 좀 ‘튀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선지 더 귀여워 보입니다.

 

바로 이렇게 친구들과 어린이 악대를 하며 흥겹게 놀던 여섯 살 무렵에, 슈트라우스는 작은 손으로 악보에 음표를 써넣는 놀이를 시작합니다. 훗날 그가 남긴 회고록에는 이런 술회가 담겨 있습니다. “여섯 살 때 내 첫번째 작곡 시도는 크리스마스 캐럴이었다. 나는 그야말로 악보를 그렸고, 어머니가 그 악보 아래에 가사를 써넣었다. 나는 아직 작은 글씨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캐럴) 다음에는 ‘재봉사 폴카’를 작곡했다.”
 
지난 해 말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 대해 언급했던 적이 있습니다.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곡을 설명했지요. 이번에는 그에 대한 두번째 글입니다. 일단, 지난 번 칼럼에서도 썼던 “슈트라우스는 음악 인생의 전반부에는 교향시에, 후반부에는 주로 오페라에 집중했다”는 언급을 다시 한번 떠올려주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두 개의 장르(교향시, 오페라)는 슈트라우스의 음악 인생을 대변합니다. 물론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가곡을 꼽을 수가 있겠지요. 슈트라우스의 회고에도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은 ‘성탄의 노래’(Weihnachtslied)라는 곡인데, 그 곡부터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48년에 작곡했던 <네 개의 마지막 노래>까지 셈한다면, 슈트라우스는 평생 동안 200곡에 달하는 가곡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연주되지 않는 곡들이 워낙 많지요.

 

여섯 살 때부터 작곡을 했던 ‘뮌헨의 신동’도 처음에는 이른바 ‘순수음악’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20대 초반까지 그가 작곡한 음악에서 가곡 외에는 ‘제목’을 단 음악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뮌헨 궁정악단의 호른 연주자로 이름이 높았던 아버지 프란츠의 영향이 컸겠지요. 슈트라우스는 아직 어렸고 아버지의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음악관이 당연히 교육의 지침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한데 거꾸로 보자면 이러한 시절은 슈트라우스의 음악 인생에서 오히려 득이 됐을 공산이 큽니다. 말하자면 고전적 이론과 작곡 기법에 충분히 숙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지난 칼럼에서도 짧게 언급했지만, 슈트라우스가 교향시에 눈을 뜬 것은 스물 한 살이었던 1885년 이후의 일입니다. 마이닝겐 궁정악단에서 당대의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의 부지휘자로 일하게 된 슈트라우스는 이 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알렉산더 리터에게 결정적인 가르침과 영향을 받게 되지요. “리터는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거기서 나는 음악적 발전을 위한 결정적인 자극을 경험했다. 나는 그동안 내가 받았던 교육을 통해 바그너의 작품, 특히 리스트의 작품에 대해 나쁜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터의 계속되는 가르침 덕택에 나는 바그너와 리스트의 음악에 눈을 떴다.”
 
그래서 슈트라우스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교향악의 계보가 다시 정리되기에 이릅니다. 그 역시 독일 교향악의 계보가 베토벤에서 브람스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여겨왔지만, 그래서 브람스에게 적잖은 경외감을 품고 있었지만, 새로운 음악적 멘토였던 바이올리니스트 리터는 슈트라우스의 그런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이제 그것은 베토벤에서 리스트로 이어지는 것, 그래서 슈트라우스는 이런 언급을 남깁니다. 베토벤의 모방자들, 특히 브람스의 소나타 형식은 텅 빈 집이다. 브람스와 브루크너는 불안하고 미완성적이다. 이제 내 교향악 작업은 리스트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슈트라우스는 그렇게 교향시의 세계로 들어섭니다. 이른바 ‘교향시 10년의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나이로 치자면 <돈 후안>을 작곡했던 24세(1888년)부터 <영웅의 생애>를 썼던 34세(1898년)까지입니다. 그래서 교향시는 40대 이후에 집중했던 오페라와 더불어 슈트라우스의 대표적 장르로 자리합니다. 물론 이 지점에서도 기억해야 할 전제가 하나 더 있지요. 슈트라우스는 왜 작은 규모의 실내악보다는 교향시나 오페라 같은 ‘큰 장르’에 집중했을까요? 그런 물음 앞에서 우리는 그가 말러와 더불어 당대의 지휘자였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마이닝겐 궁정악단에서 뷜로의 보조 지휘자로 일하며 빠르게 지휘를 습득한 그는 1886년 뮌헨 궁정오페라단의 지휘자로 취임합니다. 3년 뒤에는 바이마르 궁정극장의 부지휘자, 1897년에는 베를린 궁정오페라단 수석 지휘자, 55세였던 1919년에는 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지휘자 인생의 절정을 맞이합니다. 이렇게 슈트라우스는 당시 유럽을 대표하는 지휘자로 확고한 위치를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니 그에게 중요한 장르는 수많은 청중이 모여드는 콘서트홀이나 오페라극장에서 한 편의 장관을 빚어내는 음악이었겠지요.

 

오늘 듣는 <영웅의 생애 op.40>는 ‘교향시 10년’을 마무리하는 음악입니다.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는 문학이나 철학에서 표제를 빌려온 것이 많은데, 예컨대 <돈 주앙> <맥베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돈키호테> 등이 그렇습니다. 또 하나의 방식은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상념을 토대로 작곡했던 경우인데, <죽음과 변용> <영웅의 생애> 등이 거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요. 특히 <영웅의 생애>는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이 그랬던 것처럼 작곡가 본인의 ‘자전적 음악’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말하자면 스스로를 한 명의 영웅으로 음악 속에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간혹 이 곡을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과 연관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별로 적절한 해석 같지는 않습니다. 베토벤이 자신의 교향곡으로 찬미하고 갈망했던 것은 공화주의적 영웅이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스스로를 영웅과 등치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슈트라우스는 <영웅의 생애>에서 자신을 한 명의 영웅으로 인식하려는 태도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의 서두에서 슈트라우스의 가부장적 표정과 쏘아보는 눈빛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지요. 아울러 어린이 악대의 친구들 속에서 오른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나 여기 있어요!’라는 동작을 취했던 여섯 살 꼬마까지 슬쩍 거론했던 겁니다. 슈트라우스는 이 곡에서 자신을 적들에게 둘러싸여 고난 받는 영웅, 하지만 그 고난을 극복해가는 꿋꿋한 의지의 주인공으로 묘사합니다. 아울러 높은 이상과 고상한 품격을 지닌 인물로 그려냅니다. 앞에서 들었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마찬가지로, 슈트라우스의 관현악적 묘사력이 매우 정밀하게 펼쳐지는 음악입니다. 

 

연주시간은 40여분인데, 모두 6부로 이뤄져 있지요. ‘영웅’이라는 제목의 1부에서 저음의 현악기와 호른이 영웅을 표상하는 주제 선율을 제시합니다. 기운이 넘치는 대범한 인물, 동시에 플루트와 바이올린, 오보에 등이 섬세하고 기품 있는 영웅상을 묘사합니다. 2부 ‘영웅의 적’은 플루트가 재잘대는 느낌으로 연주되면서 시작하지요. 이어서 금관이 꽥꽥 소리를 지릅니다. 영웅을 적대시하고 공격하는 인물들, 말하자면 슈트라우스에 대한 비판자들을 묘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웅의 주제가 단조의 저음 현악기로 연주되면서 영웅은 잠시 낙담에 빠집니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들고 씩씩하게 전진하는 악상이 펼쳐집니다.

 

3부 ‘영웅의 동반자’는 독주 바이올린으로 문을 열지요. 슈트라우스의 아내 파울리네의 아름다움과 우아함, 아울러 변덕스러움, 그것을 바라보는 영웅의 사랑스러운 시선 같은 것들을 묘사합니다. 간혹 방해꾼들이 끼어들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을 무너뜨리진 못하지요. 4부 ‘전장에서의 영웅’은 멀리서 들려오는 트럼펫 소리로 막을 올립니다. 전쟁의 시작이지요. 이어서 트럼펫의 팡파르가 영웅의 기상나팔처럼 울려 퍼지고 거기에 아내의 격려가 섞이기도 합니다. 영웅과 적들의 전투를 화려하고 율동감 있는 관현악으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지요. 물론 영웅이 이겼음을 암시하는 승리의 음악으로 끝납니다.

 

5부 ‘영웅의 업적’은 가장 과시적이고 어찌 보면 유아적입니다. 슈트라우스 본인이 작곡했던 여러 음악의 주제를 차례로 등장시키면서, 영웅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발상은 좀 유치하지만 음악은 화려합니다. 귀 기울여 들으면 슈트라우스의 여러 음악들이 계속 귓전을 파고듭니다. <돈 후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과 변용> <돈 키호테> <맥베스> 등의 교향시뿐 아니라, 오페라 <군트람>과 가곡의 선율들도 섞여 있습니다. 마지막 6부 ‘물러남과 완성’은 이제 세상의 떠들썩함에서 물러난 영웅의 휴식을 묘사합니다. 템포는 느리고, 음악의 전체적 분위기는 목가적이고 서정적입니다.

 

 

 

 

▶루돌프 켐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1972년/Warner Classics

 

루돌프 켐페(1910~1976)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지휘자다. 그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이끌고 슈트라우스의 관현악 작품 전곡을 녹음했다. 그중에서도 <영웅의 생애>는 필청반이다. 섬세하고 견실한 연주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현악과 목관에서는 어떤 향기마저 풍겨 나오는 듯하다. 두 장의 CD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틸 오일엔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돈 주앙> <영웅의 생애> 등을 수록했다. 지난해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새로 발매된 <슈트라우스 관현악 작품집>은    9장의 CD로 이뤄져 가격 부담이 있지만, 눈 딱 감고 구입해도 후회하지 않을 만한 전집이다.

 

 

 

 

 

 

 

카라얀.jpg▶카라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985년/DG

카라얀은 1950년대와 1970년대에도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고 <영웅의 생애>를 녹음했다. 1959년 녹음은 뛰어난 연주로 손꼽히지만 국내 매장에서 구입이 용이하지 않다. 아울러 음질이라는 측면을 따지자면 1985년 녹음을 선택하는 것이 안전해 보인다. 음향적 손질이 과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카라얀이 지휘하는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탄탄한 연주력과 더불어 빼놓고 갈 수 없는 음반이다. 일사 분란하고 유려한 현악기, 힘 있고 정제된 관악기의 사운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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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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