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홍준호의 싱글 필름 크리티끄
<버드맨> 뱁새가 가랑이를 찢어가며 다시 황새가 되다
심장이 드럼소리처럼 뛴다
리건의 선택을 옹호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지금의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지만, 동시에 매혹적으로 사람들에게 환호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를 것 같긴 하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신작 <버드맨>을 보면서 한동안은 의아해 했다. 작품은 히어로인 ‘버드맨’ 을 연기해서 잘 나갔던 배우인 리건 톰슨 (마이클 키튼) 이 퇴물이 된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리건은, 영화 속에서 얘기하자면 1992년을 정점으로 넘어가면서 완전히 잊혀진 배우가 되어버린다. 그는 연극계를 진출하여 다시 재기를 노리려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버팀목이 되어야 할 그의 가정은 불안하기 그지 없고, 심지어 그를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영화배우인 그가 다시 영화계로 돌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연극을 이용하고 있다며 생각하고 있다. 작품은 리건의 고군분투로 나머지 이야기를 채워나간다.
리건 / 버드맨을 연기한 마이클 키튼은 오래 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연작에서 브루스 웨인 / 배트맨을 연기한 바 있다. <버드맨>에서 언급하는 1992년에, 마이클 키튼은 팀 버튼 감독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배트맨 2>를 찍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 이후의 마이클 키튼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그는 잊혀졌다. 그래서 이 작품은 흔히 '퇴물배우' 마이클 키튼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극적인 재기’ 라며 관객과 평단에게 받아들여지곤 했다. 그가 <씬 시티>, <레슬러> 등으로 화려하게 재기한 미키 루크 같은 배우와 같은 역경을 거쳤다고 여겨진 셈이다. 하지만 마이클 키튼이 정말 미키 루크와 같다고 볼 수 있나? 키튼은 90년대 후반까지도 여러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고, 2014년까지 필모그래피의 큰 공백 없이 조연으로 꾸준히 얼굴을 비췄다. 그는 어느 순간 무난한 작품 속에서 딱히 모나지 않는 연기를 하며 필모그래피를 채워 왔다. 그가 관객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면 아마 그만큼 주목 할만한 작품에 출연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미키 루크처럼 어떤 극적인 인생을 살았던 게 아니거나. 그래서 그는 내게 ‘성실하게 연기해 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중간해진 배우’ 로 보였다. <버드맨>이 흥미롭게 다가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리건 톰슨이란 캐릭터는 연기가 고플법한 배우들에게 좋은 역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이클 키튼이 이 캐릭터를 마치 정말 절박할 정도로 재기에 욕심이 있는 ‘퇴물 배우’ 가 된 것처럼 연기한다. 그것도 잘 말이다. 이 작품에서 보여준 그의 호연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어떤 역이든 모나지 않는 선에서 그럭저럭 연기하여 성실히 버텨온 한 배우가, 이러다 잊혀지지 않겠냐는 불안감을 안던 차에 작품 제의를 받았고, 이 놀라운 명연을 해냈다고 말이다. 그래서 작품은 거의 그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물론 간간히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곁들여지는 편이며, 이 중에서 마약 에 중독된 리건의 딸인 샘 (엠마 스톤) 과 잘난 척하는 연극배우 마이크 (에드워드 노튼)의 티격태격하는 사랑이야기가 그나마 비중 있게 끼어드는 편이다. <버드맨>의 장르를 굳이 ‘블랙 코미디’ 라고 한다면, 실제로 히어로 장르에 출연한 위의 배우들이 이 작품에 출연했다는 점. 그렇게 작품 속 인물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현실에서의 입장을 생각하게 만들며 때로는 조롱을, 때로는 연민을 가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비롯될지도 모르겠다.
<배트맨 2>에 출연한 마이클 키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 출연한 엠마 스톤,
그리고 <인크레더블 헐크>에 출연한 에드워드 노튼. 마블과 DC의 대통합.
이 작품을 만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스타일은 사실 여태껏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의 전작들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힘을 주며 '내가 정말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감독은 분명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시험과 고난의 순간들을 안기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들에게 가야 할 압박을 관객인 내가 받은 것이다. 거기서 이 감독은 굳이 크게 자극적인 묘사를 하지 않아도 관객에게 인물의 심리와 작품의 정서를 '체험' 시키는 강점이 있다고 봤다. 반면 단점 역시 수난 앞에 선 주인공들의 심정을 관객에게 어떻게든 주입시키듯 '체험' 하려 만드는 데서 나온다고 느꼈다.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고난은 이냐리투 감독 혼자서 다 짊어진 것처럼 보였다. <버드맨> 역시 거의 대부분을 불안감에 떨고 신경질적으로 연극공연을 준비해 나가는 리건의 심리만을, 시청각적으로 구현하고 관객과 나누려는데 집중한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 솜씨가 부담스럽다기 보다는 유려해서 더 위력적이다.
이미 <칠드런 오브 맨>, <그래비티> 등으로 꾸준히 롱테이크를 실험 중인 엠마뉴엘 루베츠키 촬영감독은 <버드맨> 에서도 경이로운 모습을 보인다. 작품은 119분 동안 고작 컷을 열 여섯 번만 나눈다. 나머지는 모두 컴퓨터 그래픽을 포함한 롱 테이크다. 그래서 <버드맨>은 며칠 간의 이야기인데 하루 안에 모든 상황이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관객은 작품의 흐름과 카메라워크 속에서 리건이 연극에 대한 불안감을 시작 직전까지 단 한 순간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속에서 불현듯 리건의 불안과 홀가분함을 시각화한 듯한 초현실적인 시퀀스들이 튀어나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상영시간 대부분 관객의 귀에 울려 퍼지는 드럼 스코어는 또 어떤가? 잊을만하면 끊임없이 울리는 이 스코어는 마치 리건의 심장박동처럼 들린다. 주변 사람들마저 비웃고, 가족마저 반대하며,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끊임없는 드럼소리는 긴장하는 그의 심장소리다. 그래서인지 결말부에 이르면 긴장감 같은 드럼소리가 어째 힘찬 심장박동 같다는 기묘한 감흥에 휩싸인다. 연극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그의 선택 때문이다. 진정한 배우로 인정받고 싶은 그에게 주변 사람들과 세상이 요구한 건 어찌 보면 결국 예술을 빙자한 자기파괴다. 사실 요구한 사람들도 함부로 시도할 수 없는 행위다. 그런데 리건은 그 위험한 순간 앞에서 가장 천박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대중을 사로잡고 평단을 굴복시킨다. <버드맨>은 이렇게 괴상한 이야기를 상당히 유려한 방식으로 이해시키며, 다소 충격적일 듯한 그의 선택도 묘한 체념의 톤으로서 납득시키고 있다. 이냐리투 감독은 이야기한다. 별 수 없지요. 여러분도 이런 클라이맥스를 원하지 않았나요? 뭔가를 살려내려면 죽여야 하는 법이에요, 어떤 방식으로든. 작품의 결말은 어딘지 모르게 많이 씁쓸하지만, 기운 내라는 다독거림도 느껴진다. 리건의 선택을 옹호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지금의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지만, 동시에 매혹적으로 사람들에게 환호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를 것 같긴 하다. 이냐리투 감독의 화법이 처음 내게 긍정적인 감흥으로 다가온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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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전혀 유명하지 않은)파워블로거, 대학졸업생, 딴지일보 필진, 채널 예스에서 글 쓰는 사람. 혼자 작품을 보러 다니길 좋아하고 또 그런 처지라서 코너 이름을 저렇게 붙였다. 굳이 ‘리뷰’ 라고 쓰면 될 걸 뭐하러 ‘크리티끄’ 라고 했냐 물으신다면, 저리 해놓으면 좀 고상하게 보여서 사람들이 더 읽어주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거 보시는 분들 글 마음에 드시면 청탁하세요. 열과 성을 다해 써서 바칠께요. * http://sega32x.blog.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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