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홍준호의 싱글 필름 크리티끄
<우드 잡> 왜 나무를 베느냐 물으신다면 그냥 웃지요
너와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을 존중한다는 것
이 작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오랜 세월에 걸쳐 임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총체적으로 보자면 ‘기술자들’, 혹은 ‘장인’들에 대한 존경을 담았다. 분위기를 달리 했으면서도 자기 작품의 재미를 놓치지 않은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역량이 경이롭다.
언젠가 지인을 만나서 함께 국밥을 퍼먹다 "일본에는 미이케 다카시, 소노 시온 뿐만 아니라 나카시마 테츠야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있어서 다행인거 같아. 비슷해 보이면서도 극단으로 다른 사람들이 영화계를 이끌어 가잖아."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지인은 마치 몇 사람 더 언급해야 하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날 못마땅하게 쳐다 봤다. 몇 초간 잠시 의문이 들었는데, 그제야 그가 좋아하는 가와세 나오미, 야구치 시노부 감독을 빼먹었음을 깨달았다. 나 역시 두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다만 두 감독의 근작들 몇 편을 당시 챙겨보지 못했던 점이 나로 하여금 망각하게 만든 것이다. 세상에.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간사하구나 싶었다.
새 리뷰의 첫 타자는 그렇게 정해졌다. 반성하는 의미로 야구치 시노부 거 해야겠구먼. 작년에 영화제에서 공개된 <우드 잡>이 극장 개봉을 한다지? 찾아봤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이 작품이 극장 개봉 대신 IPTV / VOD 직행 개봉으로 바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IPTV 공개를 생각하고 수입했다던데, 원작자와 감독만 해도 한국에 고정 팬층이 있기에 솔직히 의문이었다. 야구치 시노부다. <워터보이즈>, <스윙 걸즈> 등을 만든 감독이란 말이다. 게다가 소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을 원작으로 삼았는데, 작가는 바로 우리에게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으로 유명한 미우라 시온이다. <우드 잡>은 세로로 긴 구도인 1.85:1 비스타비전 화면비로 촬영됐다. 울창한 숲과 산의 모습을 유려하게 잡아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끝내 극장의 화면으로 볼 수 없는 점을 아쉬워하게 된다.
그 아쉬움 뒤로 밀어놓고, <우드 잡>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작품은 한국에도 분명 존재하지만, 입에 올리는 게 이상할 정도로 낯선 '임업'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삼림을 조성하거나 유지하고, 나무를 깎아서 파는 일이다. 거기에 뛰어드는 건 역시 그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히라노 (쇼메타니 쇼타) 다. 인생의 목표도 없던 그가 임업 연수에 덜컥 지원한 계기는, 집어든 전단지 속 모델인 이시이 (나가사와 마사미) 가 예뻐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임업 일은 굉장히 험난하다. 평생을 도시에서만 산 히라노는 ‘상남자’ 벌목꾼인 이다 (이토 히데아키) 와, 험난하고 울창한 삼림으로부터 좌충우돌 배워가며, 그렇게 점점 성장해간다.
작품을 보다 좀 놀란 것은 쇼메타니 쇼타의 연기였다. 그는 소노 시온 감독과 주로 작업을 했었으며, 우울하거나 퇴폐적인 느낌의 청춘을 대표했었다. 그런데 <우드 잡>에서는 야구치 시노부 감독이 만든 활력 넘치는 청춘의 세계에 감쪽같이 스며든다. 대체적으로 설렁설렁 어리벙벙한 느낌으로 바뀌는데, 그 모습 또한 매력적이다. 이 감독과 몇 작품 더 해도 좋을 듯 하다.
역시.. 현장이지 말입니다
<우드 잡>은 한 청년의 성장기와 더불어 그가 하고 있는 일의 전문성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작품은 지루하지 않게끔 심어놓은 여러 사건들을 모두 히라노가 배우는 임업 일에서부터 끌고 온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임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는지, 일의 철학은 어떤지, 그리고 그 일의 종사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관객에게 드러나며 나름의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작품이 하고 싶은 말은, 임업이 돈과 연관될 때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히라노가 당장 산에 질 좋은 나무들이 많은데 그것만 베어 팔아도 순식간에 부자가 되지 않겠냐고 질문 하는 시퀀스가 있다. 임업회사 사람들은 그저 웃을 뿐이다. 그들은 땅을 가꾸는 게 농사라면, 임업일은 나무를 가꾸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잘라다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잔가지를 솎아주며 나무를 관리하고, 삼림 자체를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농사와 차이가 있다면 임업은 결과를 보려거든 최소 몇십년, 혹은 자기 이후 세대까지 두고 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작품은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전작들에서 잘 볼 수 없었던 특징을 가지는데, 그것은 바로 태고적 시간대와 죽음의 정서다. 그래서 어떤 때는 현실감을 파괴하는 몽환적인 시퀀스가 등장하기도 하고, 후반부는 아예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산의 신’ 축제를 치루는 이야기에 할애해 버린다. 이는 도시, 혹은 동네보다 숲과 자연이 소재이며, ‘다음 세대로 이어진 후에야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임업의 특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결과를 두 눈으로 볼 수 없을 가능성이 큰 그 일을, 이들은 왜 하고 있을까? 이 의문을 가지는 순간 <우드 잡>은 단순히 웃고 떠드는 것을 넘어, 소위 세상에서 그렇게 떠들어 대는 ‘힐링’ 그 이상의 것들이 보이는 작품으로 거듭난다. 작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오랜 세월에 걸쳐 임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총체적으로 보자면 ‘기술자들’. 혹은 ‘장인’들에 대한 존경을 담고 있다. 아무리 일본영화가 과거 전성기를 회복할 수 없다고 해도 여전히 흥미로운 이유는, 너무나 다양한 소재들로부터 재미의 요소를 찾아내서다. 그리고 그 와중에 분위기를 달리 했으면서도 자기 작품의 재미를 놓치지 않은 감독의 역량 역시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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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전혀 유명하지 않은)파워블로거, 대학졸업생, 딴지일보 필진, 채널 예스에서 글 쓰는 사람. 혼자 작품을 보러 다니길 좋아하고 또 그런 처지라서 코너 이름을 저렇게 붙였다. 굳이 ‘리뷰’ 라고 쓰면 될 걸 뭐하러 ‘크리티끄’ 라고 했냐 물으신다면, 저리 해놓으면 좀 고상하게 보여서 사람들이 더 읽어주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거 보시는 분들 글 마음에 드시면 청탁하세요. 열과 성을 다해 써서 바칠께요. * http://sega32x.blog.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