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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가면의 맨 얼굴 <나를 찾아줘>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뫼비우스의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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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기대와 실망 사이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모여서 언젠가는 인생이 된다고.

먼저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나는 현재 한 기관의 관대와 호의 덕에 해외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수혜자로 선정되어 베를린에 와 있다. 오늘로 도착한지 겨우 1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마감을 목숨처럼 여기는 문필업자답게 공항에 발을 디디자마자 “보 이스트 아인 키노?(Wo ist ein Kino; 극장이 어디요?!)”하며 소리를 질렀다, 면 거짓말이고 눈빛으로 애절하게 물었다(실은, 이렇게 질러봐야 돌아오는 대답을 알아 들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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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은 다가오고 영화를 봐야겠다는 일념에 불타고 있었기에, 나는 지난 주말 베를린 시내에서 가장 크다는 영화관을 찾아갔다. 서울의 명동에 해당하는 ‘알렉산더 광장’이라는 곳에 당도하여 영화관에 내 발자국을 찍으니, 스스로 뿌듯함에 젖어 ‘거. 나도 며칠만 더 있으면 베를리너 다 되겠군’하는 자부심에 젖을 찰나, 이곳에서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독일어로 더빙돼 있다는 비보를 접했다(내가 아는 독일어는 ‘당신을 사랑합니다’와 ‘극장이 어디요?’가 전부). 영화관 방문 실패담을 지인들에게 들려주니, 한 은인이 영어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을 알려주었다.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한때는 베를린 장벽이 한 도시를 두 국가로 분단시켰던 ‘포츠다머 광장’(이곳에는 아직도 약간의 장벽이 남아 있다)의 한 극장에 방문하여 <Gone Girl; 나를 찾아줘>를 보았다. 자, 그럼 이번 주 영사기 시작. 


영화 <나를 찾아줘>에서 남편인 ‘닉(밴 애플렉)’도 나처럼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데, 물론 그가 겪는 우여곡절은 영화적이다(영화니 당연하다). 아내가 실종된 것도 애 타는데, 이 아내가 자신으로부터 살해됐을지 모른다는 의심까지 받는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닌, 전 미국인으로부터. 미디어는 실종된 아내의 사진 옆에서 엉겁결에 짓게 된 그의 미소를 연일 대서특필하고, 그의 행동거지는 물론 사생활까지 심판하듯 보도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실재로 그에게 아내를 살해할 만한 동기가 있었느냐 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아내는 유명인사라는 점이다. 그의 아내 ‘에이미’는 어린 시절부터 유명한 동화 시리즈의 실제 주인공으로서 전 미국인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여기서부터 ‘친숙함’이 하나의 변인으로 작동하는데, 간단히 말해 대중과 미디어는 아내인 ‘에이미’에겐 친밀감을 느끼는 반면, 남편인 ‘닉’에게는 낯설음을 느낀다. 비록 자신이 지은 미소와 다른 여자와 찍은 사진의 의도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자, 이 칼럼이 항상 그래왔듯, 나머지 이야기는 극장에서 확인하시길. 막장의 정서가 섞인 미국 스릴러의 묘미를 맛보게 될 것이다. 


여하튼, 이 칼럼의 속성에 맞게 영화를 보며 ‘만약 내가 유명인 아내와 살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상상을 품게 되었다. 상상은 자유인지라 가능한 한, 접촉 가능성이 없는 먼 직군의 여성들로 상상의 나래짓을 펼쳐보려 했으나, 어쩌다 보니 후보군은 내가 몸 담고 있는 작가 군과 뮤지션 군(아, 이건 정말이지 쑥스럽군)으로 양분되었다. 우선, 유명 작가와 결혼을 했다고 상상을 해보자. 둘의 책이 세상에 발표되었다. 내 책은 언제나 그렇듯 출간과 동시에 (마치 월급 통장처럼) 서점을 잠시 스쳐지나 출판사의 창고로 가기 마련이고, 아내의 책은 서점의 천장을 뚫을 듯이 높다랗게 전시되어 독자들의 애정을 듬뿍 받는다. 마치 8월에 내리는 장맛비처럼. 나는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최 작가, 다음부터 초판은 500부만 찍자고. 아, 우리도 잉크값은 건져야지’라는 소리를 듣고, 아내는 전국을 순회하며 사인회를 펼치고, 귀찮다는 표정의 사진과 함께 주요 일간지 1면에 인터뷰도 실린다. 마침 할 일이 없는 나는 아내에게 배송된 팬 레터와 선물들을 정리하다,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기분 전환을 하려 카드로 비디오 게임기를 사려는데, 마침 내 카드는 정지를 당한 터다. 하여, 어쩔 수 없이 아내 카드를 쓰는데, 마침 TV와 인터뷰를 하던 아내에게 카드 사용 메시지가 전송돼 아내는 “남편이 내 카드로 비디오 게임기를 샀네요. 하하하”라는 농담을 하고, 그 농담이 공중파 채널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의 산간지역까지 착실히 전파된다. 며칠 뒤 나는 아내 카드로 비디오 게임기나 사는 한심한 작가로 인식되고, ‘그래도 힘을 내서 살아야지’라는 마음으로 미소를 지으면 이 역시 ‘이 와중에도 웃고 다니는 한심하고 무능력한 남편’으로 또 한 번 전국적으로 소개된다. 말하자면, 이 영화가 이런 식인 것이다. 오늘은 어째 영화와 약간이나마 맞아 떨어지는 헛소리를 하게 되어 몸이 찌뿌둥하니, 한 김에 더 동떨어진 이야기를 덧붙여보자. 


자, 이번에 나의 아내는 유명 뮤지션이다. 신보를 발표함과 동시에 각종 음원차트에 그녀의 곡제목들이 스스로 경쟁하듯 줄을 서고, 여름이면 각종 페스티발에서 그녀를 모셔 가기에 바쁘다. 반대로 (아, 여기서 잠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실제로 그러해서) 나는 한달에 저작권료가 316원 들어오는 무명 뮤지션이다(이를 증명하기 위해 이번 달 나의 저작권료 입금 사진을 첨부한다). 때는 2019년 여름. 그녀는 페스티벌을 다니느라 바쁘고, 나는 그녀의 악보와 악기, 그리고 무대의상을 챙기기 바쁘다. 당연한 말인 것 같지만, 인기까지 많은 터라, 구애를 하는 남성들을 어쩐지 내 몸으로 직접 막아야 한다. 여름의 페스티벌을 가본 이들은 알겠지만,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근육질의 남자들이 “저 자식이야! 저 한심한 치가 우리 뮤즈에게 기생한다고! 저 316원 짜리!”하며 달려든다. 이 와중에 나는 그녀의 악기와 악보, 그리고 무대의상을 들고 있기 때문에 빨리 도망가지도 못하고, 그러다 장마철의 진흙탕에 넘어져 온 몸이 보령 머드 축제에 참가한 이처럼 시멘트 빛으로 변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악기와 악보, 그리고 무대 의상은 챙겨야 하기에 양 팔만은 공중을 향해 뻗치고 있다. 말하자면, 이런 생활을 여름마다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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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다시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비디오 게임을 사려고 하면, 나의 카드는 정지 상태이고, 마침 유명 뮤지션의 아내는 공중파 TV와 인터뷰 중이었으니, 결국 산간지역의 방방곡곡까지, 나의 소비행태는 또 한 번 전파되고…. 결국, 이런 식으로 한 무명 작가이자 무명 뮤지션의 불행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된다. 


<나를 찾아줘>의 ‘닉’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일상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기대와 실망 사이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모여서 언젠가는 인생이 된다고. 


이 영화는 그런 영화일 것이고, 어찌보면 닮건 닮지 않았건 영화 속 배우들의 얼굴은 우리들의 또 다른 반영(反影)일지도 모를 것이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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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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