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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되지 않을 권리를 노래하는 응원가 <파티51>

영화 <파티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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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문화의 성장기와 그 결과로 예술가들이 배제되는 수순은 참 아이러니하다.

홍대 문화의 성장기와 그 결과로 예술가들이 배제되는 수순은 참 아이러니하다. 홍대는 근처의 미술대학과 인디 뮤지션이 모이자 자연스럽게 젊은이들의 거리가 되었다. 최초에 홍대 클럽은 독립 뮤지션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예술가들이 만들어 놓은 상권의 가치가 높아지자, 역설적으로 자본이 모이고 임대료가 높아지고,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대안공간과 예술가들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공간에 머무르지 못하고 변두리로 밀려난다. 홍대의 문화를 일궜던 예술가들이 자본의 논리에 밀려, 설 자리(혹은 살 자리)를 잃어버리는 과정, 그 개발의 전제는 소멸이다. 다큐 영화 <파티 51>은 이런 소멸의 과정에 맞서 싸워 스스로를 생존시켜 자립하고 성장하는 인디 뮤지션 혹은 자립음악가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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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두리반이라는 칼국수 집이 있던 건물이 철거되는 순간을 포착하면서 시작된다. 한받은 기타를 치고, 박다함은 철거현장 주변을 서성거린다. 하헌진은 “오늘은 있었는데 내일은 없잖아요”라고 말하며, 자신들이 노래하던 공간이 사라지는 소멸의 순간을 묵도한다. ‘두리반’을 중심으로 한 점거의 과정은 아주 흥미롭다. 홍대입구역 부근에 위치한 칼국수 집 두리반은 안종려 사장과 소설가 유채림 부부가 운영했던 아주 작은 가게였다. 공항철도 건설을 위해 건물 자체를 철거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부가 받을 수 있었던 보상금은 이사비용 300만원이 전부였다. 강제철거라는 벼랑에 선 부부는 두리반을 지키기 위해 농성을 시작한다. 부부가 철거에 맞서 싸우는 동안 한받, 밤섬해적단, 박다함, 회기동 단편선, 하헌진 등의 음악가들이 이들을 찾아온다. 거처를 잃을 위기에 놓인 부부와 노래할 곳이 없는 홍대 인디 뮤지션들은 유대감을 형성하면서 두리반을 거점으로 모여 자연스럽게 음악을 공유하고 ‘두리반’은 농성의 공간에서 창작의 공간이 된다.

 

정용택 감독은 <파티 51>을 통해 두리반에 모여든 음악가와 주인 부부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아낸다. 두리반에 모인 음악가와 밴드들은 강제철거 위기 속에서 두리반에서 라이브 공연을 시작한다. 매주 공연이 이어지고, 악조건에도 이들의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2010년 5월 노동절 120주년을 맞아 두리반에 60개가 넘는 밴드가 몰려 뉴컬쳐파티 51 를 개최하면서 두리반은 절정을 맞이한다. <파티 51>은 이 공연의 열기와 두리반에 모여 활동한 인디 뮤지션들의 숨결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이렇게 말로만 듣던 두리반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진기하고 값진 경험이다. 그리고 그 긴 시간 긴 호흡의 이야기를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담아낸 정용택 감독은 그 화면 가득 따뜻한 온기를 품은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다시 첫 장면을 환기해보자, 다큐멘터리는 그들이 노래를 하고 지키려고 애썼던 두리반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인디 뮤지션의 협조와 주인 부부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두리반은 합리적 수준의 보상금을 받고, 인근에 다시 칼국수 집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투쟁의 공간이 아닌, 공연을 하고 관객과 만나는 소통의 공간으로서의 ‘두리반’은 사라진 셈이다. 두리반 투쟁은 보상이라는 목표를 이뤄냈지만, 역설적으로 뮤지션들은 노래할 공간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붕괴와 소멸이라는 첫 장면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 생존의 문제에 맞서 싸우는 칼국수집에 음악을 할 곳이 없는 인디 뮤지션이 모여 점거에 동참한 것은 홍대라는 인디 신에서 밀려난 음악가들이 스스로 자립할 곳을 찾아야 한다는 유대감, 그리고 나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손쉽게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현실 인식이 함께 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은 인디라는 수식어 대신 ‘자립음악가’라는 정의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면서, 생생하게 예술가의 성장 드라마를 직조해낸다. 그래서 그들은 건물이 사라지는 소멸의 순간에도 함께 사라지지 않고, 소멸되지 않을 권리를 향해 한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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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농성과 점거라는 소재가 무거워 보일 수도 있지만 <파티 51>은 부담감을 걷고 가뿐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니 선입견을 벗자.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연말, <파티 51>은 삶에 지친 관객들의 어깨를 토닥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무너진 두리반의 공간을 전제로 다시 농성장으로서의 두리반을 되짚어가면서 정용택 감독은 <파티 51>에 등장하는 자립음악가들은 오직 노래하는 공간이 주어지고, 노래를 할 수 있다면 살아갈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다고 증언하는 과정을 경쾌하고 긍정적인 화법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문화를 창조하면서 새롭게 숨 쉴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 믿어봄직한 낙관을 이야기한다. 아직 자립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혹은 여전히 생존에 가까운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이처럼 힘찬 응원가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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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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