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모독> 왜 관객에게 욕을 하면 안 된단 말인가!
<관객모독>
연극 <관객모독>이 새로운 시즌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연극에 대한 통념을 깨부수고 부조리한 사회와 그 안의 관객을 향해 거침없이 욕을 뱉는, 파격적이고 통쾌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별히 이번 시즌에서는 배우 양동근과 윤제문, 정치인 노회찬과 정봉주 등 특별한 게스트가 함께한다.
연극 <관객모독>, 관객의 권력을 깨부수다
무대를 비추던 조명이 꺼지고 연극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 완벽한 어둠 속에 놓인 관객은 ‘보여지지 않을 권리’를 획득한다. 객석에 앉은 그 누구도 나를 관찰하지 못할 것이며, 무대 위에 등장할 배우는 나의 존재를 미처 몰랐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시작할 것이다. 한결 편안해진 표정과 자세로 무대를 주시하는 관객은 무언의 지시를 내린다. ‘자, 이제 한 번 시작해 보라고!’ 그러나 배우들은 어둠에 몸을 숨긴 채 무차별적인 ‘언어 공습’을 시작한다. 쏟아지듯 퍼부어지는 말들 속에서 간간이 욕지거리도 들려온다. 관객의 존재는 일찌감치 발각되었고 더 이상 우월적인 지위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당혹감과 생소함에 사로잡히고서야 관객은 깨닫는다. 마침내 <관객모독>의 막이 올랐다는 것을.
지난 달 15일, 연극 <관객모독>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됐다. 페터 한트케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1978년 국내에서 초연된 이후 줄곧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객석을 향해 욕을 하고 물을 퍼붓는다더라’라는 이야기가 퍼져 나가면서 극장으로 향하는 발길을 멈칫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관객을 모독하는 그 의도와 방식에 대한 궁금증은 더 강렬했다. ‘욕 세례와 물벼락을 뒤집어 쓸 각오’까지 하면서 많은 이들이 <관객모독>과 만난 이유다. 작품은 연극에 대한 보편적인 기대를 철저하게 빗나가면서 ‘파격적인 형식과 신랄한 모독’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켜왔다.
극장 안에서 권력을 쥔 자들은 무대 위가 아닌 객석에 위치한다. “바라보임을 당한다는 시선의 비대칭성, 불균형성이 그대로 도덕적 우열의 관계, 혹은 힘의 강약의 관계로 이어진다”는 (『시선은 권력이다』) 말에 기대지 않더라도, 시선과 권력의 상관관계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다. 극장이라는 공간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보여지는 행위와 지켜보는 행위 사이에는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그러나 연극 <관객모독>은 이 공고한 관계에 균열을 가하면서 무대 안과 밖의 권력을 동일한 선상에 놓는다. 무대의 조명은 어둡게 객석의 조명은 밝게 설정함으로써 배우들이 관객을 관찰하는 순간을 연출하기도 하고, 극의 흐름 속으로 직접 관객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우리는 어떠한 인물도 연기하지 않고 다른 시간을 연기하지도 않는다”는 대사가 보여주듯, 작품 속에는 별도의 사건이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배우와 관객이 자극과 반응을 주고받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한 편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관객모독>에서는 배우와 관계의 입장이라기보다 화자와 청자의 사이가 맞는 것 같다”는 배우 안병균의 말처럼 <관객모독>에서는 모두가 주체일 뿐 객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광들아,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들아”
‘언어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실험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만큼 <관객모독>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말들로 관객을 압도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연극에서 언어가 맡아왔던 전통적인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체계적인 언어를 통해서만 이야기가 구성되고 전달된다는 통념에 도전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의도적으로 띄어 읽기를 변형시키기도 하고-‘연극만이’를 ‘연/극만이’로 ‘있습니다’를 ‘있습/니다’로 말하는 식이다-마치 랩을 하듯 쉼 없이 대사를 읊기도 하며, 말을 더듬기도 한다. 돌림노래를 하는 것처럼 겹쳐 말하는 방식으로 모든 배우가 동시에 이야기하는가 하면, 외국어와 수화라는 새로운 언어를 말하기도 한다. <관객모독>의 배우들은 “이것은 연극이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스토리와 언어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연극을 만들어냈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언어를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는가, 라는 작가의 질문은 극중극을 통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네 명의 배우들은 각자의 배역과 스토리에 충실한 연기를 보여주지만 그들의 입을 통해 말하여지는 대사는 극의 흐름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연극과 시간, 연극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가운데 눈앞에서는 통속극의 서사가 펼쳐진다. 그럼에도 극의 내용을 따라가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이 의아한 경험을 통해 관객들은 연극에서 언어의 역할이 결정적이거나 필수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눈뜨게 된다.
아울러 <관객모독>의 극중극은 무대에 오른 이야기가 작품이 의도하는 바와 배치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더 연극적으로!’를 외치며 불쑥 등장하는 무대감독이 배우들을 향해 새로운 지시를 내리고, 스토리는 끝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더욱 더 극적이고 흥미로운 방식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무대감독은 관객의 요구를 대변한다. 극이 진행되는 도중에 관객에게 어떤 전개를 원하는지 묻고 그 즉시 이야기를 바꿈으로써 이러한 사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무대감독의 난입(!)은 정해진 길을 벗어나 표류하는 작품, 그 과정에 개입하는 관객의 영향을 보여주기 위함인데 <관객모독>의 새로운 시즌에서는 스페셜 게스트가 그 역할을 맡았다. 배우 양동근과 송승환, 정치인 노회찬, 코미디언 전유성이 출연을 마쳤고 배우 윤제문과 정치인 정봉주가 관객들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관객이 가지는 우월한 지위에 대한 부정, 보여지는 자와 지켜보는 자의 권력 관계를 전복시키려는 시도로 시작된 이들의 ‘모독’은 언어와 스토리의 역할, 작품의 향방과 관객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객석을 향해 욕을 하고 물을 뿌리는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전쟁광들아, 짐승 같은 인간들아, 공산당 떼거리들아,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들아”라고 외치는 그들의 말은 관객을 향한 것인지, 세상을 향한 것인지, 세상 속의 우리를 향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극장 안의 모두가 뚜렷하게 인지하게 되는 한 가지가 있다. 누구도 이들의 ‘모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관객모독>을 관람한 이들이 불쾌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느끼면서 ‘혼란스러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권위와 편견, 그 위에서 탄생한 부조리한 세상과 모순투성이의 우리를 향해 속 시원하게 일갈하고 싶다면 <관객모독>과 만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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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