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지 못한 사랑, 뮤지컬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고백하지 못한 사랑을 위하여
뮤지컬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에는 끝내 전하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가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면서도 무엇도 바라지 않는 그 사랑은 분명 우리가 꿈꾸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사랑은 동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반달이처럼 사랑해본 적 있나요?
영화 <건축학개론>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고 말한다면, 뮤지컬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는 “우리 모두는 고백하지 못한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제작된 공연을 보면서 다 큰 어른들조차 어김없이 눈물을 쏟고 마는 것은, 그 기억 때문이 아닐까. 끝내 고백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만 담아두었던 사랑의 기억. 어쩌면 그것은 바람일지도 모른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카피를 보면서 ‘혹시 나도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을까’라는 생각에 설레었던 것처럼, 뮤지컬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의 이야기는 ‘나에게도 반달이 같은 누군가가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바람을 품게 한다. 그렇게 관객들은 자신의 지난 사랑을 반달이에게 투영하는 동시에, 반달이의 사랑을 받는 백설공주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달콤한 상상에 빠진다.
어린 아이들의 눈에 비친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는 신나는 모험담일 것이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일 것이며, 말이 아닌 몸짓으로도 마음을 전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새로운 자극제일 것이다. 물론 성인 관객에게도 반달이의 사랑 이야기는 더없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다만, 동화와 현실은 서로 다른 세계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을 뿐. 이러한 자각은 예상치 못한 성찰로 이어진다. ‘나는 반달이와 같은 사랑을 해본 적 있었던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것이다.
현실 세계의 반달이는 어디로 갔을까. 고백조차 하지 못했던 지난 사랑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영화 <건축학개론>의 승민처럼 ‘조련질에 능숙했던 그녀’로 상대를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 사람으로 인해 한때 사랑이었던 것이 이제는 상처로만 남았다고 회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식처럼 첫사랑의 결혼식장에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한 곡의 노래로 작별을 고했을 수도 있다. 다소 거칠거나 어수룩한 이들의 방식은 반달이의 그것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반달이가 되지 못했을까. 반달이가 보여준 헌신적인 사랑이 우리에겐 그저 멀고 먼 이야기인 걸까.
사랑이란 나 아닌 그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반달이에게 사랑이란 철저하게 자신을 지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상대를 채워 넣는 것이다. 자신이 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는 것, 그것이 반달이가 백설공주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 마음 하나로 반달이는 거친 산을 오르고, 커다란 호수를 헤엄치고, 심지어는 키스로 그녀를 잠에서 깨울 왕자를 찾아 이웃나라로 떠난다. 그리고 결말은, 모두가 알다시피, 백설공주는 반달이가 아닌 이웃나라 왕자님과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그러나 반달이는 자신의 희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그것을 대가로 공주의 사랑을 갈구하지도 않는다.
나의 시선이 아닌 상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나의 마음이 아닌 상대의 마음으로 헤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상대를 향한 나의 배려와 희생이 무색해질 때 실망하거나 분노하지 않는 일은 더 어렵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는 시인의 말 앞에서 부끄러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상심리’라는 네 글자는 사랑과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말인 것 같지만, 많은 이들의 사랑은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한 만큼 아프고, 사랑한 만큼 미워하고, 사랑한 만큼 원망한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해 ‘마음이 짓밟혔다’거나 ‘마음이 외면당했다’고 아픔을 토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에서 반달이가 보여주는 사랑은, 누구나 꿈꾸지만 누구나 가 닿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아닌 그를 위해, 그의 곁을 나 아닌 다른 이가 지키더라도,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사랑할 수 있을까. 쉽게 단언할 수 없는 질문 앞에서 떠오르는 것은 지나간 사랑뿐만이 아니다. 지금 내 앞에 찾아온 사랑, 그리고 앞으로 찾아올 사랑 앞에서 우리는 반달이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의 대답이 궁금하다면, 뮤지컬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를 거울삼아 자신의 사랑을 비춰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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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