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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뺑덕』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마담 뺑덕』, 영화와는 또 다른 질척한 욕망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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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뺑덕』은 인간의 질척한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최근에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는데 백가흠의 장편소설 『마담 뺑덕』은 그 영화에 바탕을 두면서도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 시나리오를 소설로 바꾸는 기존의 작품과 달리 소설 그 자체로서의 미덕을 지닌 백가흠만의 『마담 뺑덕』이 탄생한 것이다. 물론 내용은 영화와 동일하다.

삶은 욕망하는 것


얼마 간 지독하게 아팠다. 병원에도 가보고 한의원에도 가봤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의사는 면역력이 떨어졌다 이야기하고 한의사는 기가 빠져나갔다는 진단을 내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둘 다 같은 말이었다. 어쨌든 버틸 힘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꽤 무리를 했다. 쉴 새 없이 달려오느라 몸이 상하는 건 염두에 둘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덜컥 브레이크가 걸렸다. 벌려놓은 일은 많은데 수습하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버틸 힘이 사라졌으니 그럴 수밖에.


잘 먹고 잘 쉬시오.
의사와 한의사 둘 다 비슷한 이야기를 했고 나는 모처럼 침대에 드러누워 이토록 스스로를 밀어붙인 이유가 무얼까 생각하게 되었다. 못 지킨 마감 때문에 명치가 욱신거리긴 했지만(그 마감에는 이 칼럼도 포함되었다) 그딴 것들은 다 잊고 요 몇 달 간의 내 인생을 되짚어 보았다. 그랬더니 딱 한 단어가 떠올랐다.

욕망.

내가 쉼 없이 일을 했던 이유는 욕망 때문이었다. 삶을 버텨내고자 했던 욕망이 아이러니하게도 내 몸 안의 버틸 힘을 가져가 버렸다. 나는 성공의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첫 장편소설을 출간하고 나서 내내 그런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바로 지금이다 싶었다. 들떠 있었고, 그런 만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책이 제법 팔린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더 열심히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이 시기를 놓치면 영영 돌이키기 힘들 것 같았고, 그래서 닥치는 대로 썼다. 무려 6년 만에 나온 첫 장편이었다. 단편을 써 가며 근근이 작가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던 내게 이름 석 자가 당당히 박힌 나만의 책이 나온 것은 너무나 기뻐 차라리 두려운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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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공을 욕망했다. 도대체 글을 써서 성공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성공하고 싶었다. 어쩌면 성공의 실체가 모호하기에 욕망은 더 강렬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데뷔작이라는 언론의 찬사, 베스트셀러, 판권 계약, 후속 작품,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그리고 기타 등등. 여배우의 민낯처럼 차마 드러내기 부끄러운 욕망이 내 안에서 꿈틀대고 있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그런 것들이 성공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하는 가운데에서도 나는 그것들을 욕망했고, 거기에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참! 그러고 보니 바로 그 시점에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다이어트도 내 욕망의 지분을 제법 차지하고 있었다. 몸무게가 줄어갈수록 살을 빼고 싶다는 욕망은 훨씬 더 강력해졌는데, 그게 꼭 성공을 목 말라하며 더 많은 일을 벌이던 당시의(그래봐야 몇 달 전) 내 상황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욕망했던 일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당분간도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쯤 아프기 시작했다. 살은 빠졌지만 대신에 늙어 보이게 됐다. 슬프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첫 장편이 출간되고 지금까지 근 석 달 동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활기 넘친 시기였다는 사실이다. 결과가 안 좋긴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혔던 시간들이 인생의 활력소가 되었음에는 틀림없다. 그것도 꽤 짜릿한 활력소.
빠져나간 기를 보충하고 떨어진 면역력을 놓이느라 잘 먹고 잘 쉬는 요즘, 나는 삶이란 곧 욕망 그 자체가 아닌 가 생각하게 되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더 이상 욕망을 품지 않게 된 최근의 내 삶이 편안할지언정 무지 심심한 걸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욕망에 눈멀다, 집착에 눈뜨다


『마담 뺑덕』은 인간의 질척한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최근에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는데 백가흠의 장편소설 『마담 뺑덕』은 그 영화에 바탕을 두면서도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 시나리오를 소설로 바꾸는 기존의 작품과 달리 소설 그 자체로서의 미덕을 지닌 백가흠만의 『마담 뺑덕』이 탄생한 것이다. 물론 내용은 영화와 동일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효(孝)’의 아이콘인 심청은 조연의 자리로 물러나고 심 봉사와 뺑덕어멈이 전면에 등장해 욕망의 난장을 벌인다.


잘 나가던 대학 교수인 학규는 여 제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이 들통 나 S읍으로 쫓기듯 내려간다. 교수로서의 앞날은 불투명해졌고 아내와의 사이도 틀어졌다. 그에게는 한적한 곳에서 소설을 써서 재기하겠다는 나름의 욕망이 있다. 학규는 죄의식이 거세된 인간으로 나온다. 그에게는 오직 욕망 밖에 없다. 


반면 S읍의 쇠락한 놀이공원에서 매표원으로 일하는 덕이는 욕망한다는 것 자체를 죄스러워하는 어린 여자이다. 그녀에게 허락된 욕망이란 기껏해야 밀린 월급을 받는 정도. 하지만 그런 덕이가 서울에서 내려온 잘 생기고 건강하며 똑똑하기까지 한 어른, 학규에게 욕망을 품기 시작한다. 


『마담 뺑덕』은 학규와 덕이의 욕망이 얽히기 시작하면서 용광로처럼 타오른다. 소설은 그 지점을 무심한 듯 풀어내지만 그 안에 깃든 뜨거움을 차갑고 덤덤한 텍스트만으로 감추기에는 역부족이다. 욕망이란 본디 탐하는 마음. 탐한다는 것은 갖지 못한 것, 혹은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하는 마음. 그러니 불꽃이 튈 수밖에. 만지면 델 만큼 뜨거울 수밖에.


끝내 눈이 멀고 만 학규와 잔인한 복수에 성공한 덕이, 그리고 그 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심청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안 나는 이들의 욕망이 삶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건 소설이건 『마담 뺑덕』은 ‘사랑’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춰 광고를 하고 있지만 실상 학규와 덕이의 욕망은 삶 그 자체에 있다.


학규가 어린 덕이에게 욕망을 품는 것은 내리막을 향하고 있는 자신의 삶을 추스르기 위함이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해 봐도 ‘나 아직 죽지 않았어!’를 외치고픈 중년의 욕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하여 학규의 욕망은 점점 손님이 줄어들지만 운행을 멈추지는 못하는 S읍의 놀이공원과 닮아 있다. 덕이는 살아남기 위해 학규를 사랑한다. 그를 욕망한다. 쭉 고생을 해 왔고 앞으로도 고생길이 훤한 이 어린 여자에게 학규는 새로운 삶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덕이는 학규를 욕망하고부터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마당 뺑덕』은 욕망하는 모든 이들, 따라서 가열하게 자신의 삶을 밀어내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비단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고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욕망을 품고 있고, 그리하여 존재함으로.
백가흠의 이 소설을 읽은 후 잠잠하던 내 욕망에 다시 불이 붙은 건 또 하나의 아이러니한 일이다. 자, 나도 이런 멋진 작품 한 번 써 보자. 대충 이런 욕망이 고개를 든 것이다. 당분간 내 삶은 또 흥미진진해 지리라. 욕망한다는 것, 탐한다는 것은 그만큼 짜릿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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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뺑덕백가흠 저 | 네오픽션
소설가 백가흠이 마흔을 함께 한 장편 소설 『마담뺑덕』.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우리나라 대표 고전 『심청전』을 ‘욕망의 아이콘으로 바꿔볼 수 없을까’ 하는 역발상에서 시작된 이번 소설은 영화 시나리오와 함께 작업된 새로운 시도의 소설임과 동시에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각기 다른 재미를 주어 더욱 더 매력적인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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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전건우

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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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백가흠이 짚어낸 학규와 덕이, 그리고 『심청전』 - 『심청전』, 광기 어린 욕망과 집착으로 다시 태어나다! 소설가 백가흠이 마흔을 함께 한 장편 소설 『마담뺑덕』.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우리나라 대표 고전 『심청전』을 ‘욕망의 아이콘으로 바꿔볼 수 없을까’ 하는 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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