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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정말 뜨거운 걸까, 뮤직드라마 <당신만이>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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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함께 산다는 건, 어떤 걸까. 미칠 듯이 보고 싶던 시기가 지나고 죽도록 미운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때도 우리는 사랑으로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궁금하다면 뮤직드라마 <당신만이>에서 힌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때는 015B의 노래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 오래된 사랑의 표본이라 생각했다. ‘두근거림’의 자리를 ‘의무감’이 ‘설렘’의 자리를 ‘싫증’이 차지한 노랫말을 들으며 내 것이 아닌 허탈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뜨거운 감정이 지나간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그러다 ‘오래된 연인들’이 내 이야기가 되자 용감무식한 반론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뜨겁고 설레는 감정이 사랑이 아닐지도 몰라, 그러니까 사랑이 식는다는 건 상대적 박탈감일 뿐이야, 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건대, 뮤직드라마 <당신만이>의 두 주인공 강봉식 이필례 부부라면 이 허무맹랑한 주장에 한 표를 던져줄 것도 같다.

 

당신만이.jpg

 

그렇게 아름다웠던 그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


데일 듯 뜨거운 어떤 감정이 사랑이라면, 이들도 사랑에 목을 내걸던 시절이 있었다. ‘손만 잡고 잘게!’라는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그 말이 거짓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듯 ‘정말이지?’ 하고 속아 넘어가 주던 때가 있었다. 「내 사랑 못난이」의 가사처럼 누가 뭐래도 내 애인이 가장 예뻐 보이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동화 속 왕자님과 공주님이 아닌 까닭에 ‘그렇게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따위의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실의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닥쳐왔기 때문이다. 


남편은 친구 녀석 보증을 잘못 선 것도 모자라 잘 다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 되는가 하면, 딸자식은 마뜩잖은 신랑감을 데려와 놓고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성화다. 「님과 함께」로 시작된 노래는 이미 오래 전에 「대화가 필요해」로 바뀌어버렸다. 돌아선 뒤통수만 쳐다봐도 얄밉고, 그러다가도 자신들이 운명 공동체로 엮여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머리를 맞대고 앉는, 이 때의 뜨거운 감정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걸까.


물론 이따금씩 바람 잦아드는 날도 있기는 했다. 그럴 때면 「결혼해 줄래」를 부르던 지난날처럼 몰캉하고 뜨끈한 듯한 무언가가 차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더 사랑할게’ 라든지 ‘내가 더 아껴줄게’ 라는, 이제는 말해도 믿지 않을 것 같은 말들 대신 ‘자기 웬만하면 내게 오지’ ‘우리 여기에서 둘이 멋진 밤을 함께 하지’ 라는 노골적인 유혹의 멘트를 던진다는 게 달라진 점이지만. 그렇게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사이 인생에도 노을 질 무렵이 찾아들었다. 


이제 아내는 휠체어에 몸을 의탁한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다. 그 뒤를 묵묵히 따르는 남편의 머리 위에도 곱게 서리가 내렸다. 그래도 투닥거림은 계속된다. 아내는 여전히 사랑한다는 고백이 듣고 싶고, 남편은 늘 그래왔듯 남사스럽다며 손을 내젓는다. 그러나 그는 끝내 아내의 요구를 들어주고야 만다. 떨어져 살아온 세월보다 함께 산 세월이 긴 그들이지만, 두 사람에게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제 둘의 대화에는 ‘당신이 없으면 못 살겠다’ ‘당신만 없으면 살겠다’와 같은 가벼운 투정들은 끼어들 틈이 없다. ‘나 없으면 당신 어떻게 할래’로 시작하는 애잔한 잔소리 앞에서 어떤 이야기인들 무게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나 없으면 당신 어떻게 할래


당신만이2.jpg


두 사람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노랫말을 대신해 인사를 나눈다.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가려’ 하느냐고 꾸짖는 듯하다가도 이내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라며 마지막 말을 전한다. 그들에게 그 마음은 사랑이었냐고 묻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물색없는 질문이 향하는 방향을 바꿔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로 한다. 두 사람 사이에서 사랑을 보았는지, 예상대로 그 감정이 뜨겁지만은 않은 것이었는지. 


대답하자면, 반은 틀리고 반은 맞는 이야기였다. 뜨겁고 설레는 감정만이 사랑은 아니라는 처음의 가설은. 그들이 가장 뜨거운 순간은 만날 때가 아니었다. 헤어짐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설렘이 익숙함에게 자리를 내어준 지 오래일 때,  사랑은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올랐다. 그러나 설렘과 같이 찾아왔던 뜨거움과는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쉽게 불씨가 일어 빠르게 타오르는 모습이 아닌, 뭉근한 온기를 간직한 모습이었다. 그러니 사랑이 식는다는 말도, 설렘이 사라지는 순간 사랑은 끝난 거라는 말도 모두 틀렸다. 그들 사이에 냉랭한 기운만이 감돌던 순간에도 그곳에 사랑은 있었다. 그렇게 사랑은 끊임없이 제 모습과 온도를 바꿔가며 곁을 지켜왔다.


뮤직드라마 <당신만이>는 꽃으로써의 사랑이 아닌 씨앗으로써의 사랑을 보여주었다. 절정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사랑이 아닌 절정에 이르기 위해 크기를 키워나가는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것이 정답일리 없다. 뜨거운 감정도, 차가운 감정도, 미적지근하거나 뭉근한 감정도 사랑이라는 말도 정답이 아니다. 새로운 상대를 만나 새롭게 시작하는 연애는 이전의 그것과 다르듯이, 두 사람의 연인 사이에는 그들만의 빛깔과 온도를 가진 사랑이 있게 마련이다. 그 모든 사랑의 모습이 <당신만이> 안에 담겨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지금 당신의 곁에 있는 사랑을 비춰볼 수는 있을 것이다. 사랑의 진짜 온도가 궁금하다면, 직접 공연을 통해 확인하시길 바란다. 뮤직드라마 <당신만이> 공연은 11월 2일까지 신도림 테크노마트 프라임아트홀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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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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