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형 < Duet >

이지형의 디스코그래피에는 두 사람이 걷고 있다. 한 명은 강렬한 움직임을 추구하는, 로커고 다른 한 명은 잔잔한 바람을 끌고 오는, 순수 포크 싱어다. 전자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정규음반에서, 후자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정규음반들 사이의 소품집들에서 모습을 보인다. 이번에 발매한 < Duet >은 소품집. 직전의 풀 렝스 음반 < 청춘마끼아또 >가 세 번째 정규 앨범이었으니 소품집이 나올 순서에 맞춰 나온 작품인 셈이다. 그간 선보인 소품집들의 특성을 닮아 신보 또한 듣기에 부담이 없다.

어쿠스틱 기타 위로 피아노와 스트링을 얹은 편안한 사운드에 과하지 않게 접근한 보컬, 여유로운 진행 구성, 언제고 공감을 이끌어내기 쉬운 사랑에 대한 텍스트가 단출하게 결합해 듣는 이들의 감성에 편안함을 더한다. 자유로운 관점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음반의 걸음은 가볍게 맞이할 만하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무게감 있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우선 아티스트의 안정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음반 단위로 보나 곡 단위로 보나 다양한 색채를 구현하려하고 있음에도 좀처럼 들쑥날쑥하지 않다. 이는 정규 음반들에서보다도 더욱 나은 모습이다. 어쿠스틱 사운드를 크게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Be fine」과 간주 부분에서 곡의 빈 공간을 적당히 채우고 빠지는 「Happy birthday to you」에서의 건반 파트, 코러스 라인에 이국적인 느낌를 더하는 「느낌적인 느낌」에서의 스트링, 밴조 연주는 전체의 맥락을 보장하면서도 다채로움을 선사하는 요소들이다.

「Duet」에서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키보드도 재미있기는 마찬가지. 이러한 장치들이 제 빛을 발할 수 있는 데에는 훌륭한 송라이팅의 힘이 크다. 무난하다 할지라도 작금의 국내 포크 신에서 아기자기하고 예쁜 멜로디보다 효과가 높은 흥행요인은 없다. 캐치한 코러스 라인이 돋보이는 「Be fine」 보컬 라인으로 두어 차례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Happy birthday to you」, 히트곡 「빰빰빰」을 그대로 빼다 박은 「느낌적인 느낌」은 대중성을 내재하고 있는 이지형 식 작곡법의 일환이다.

탄탄한 송라이팅과 모나지 않은 시도들이 맞물린 안정감은 음반의 수준을 더욱 끌어올린다. 해석에 무게감을 더하는 두 번째 지점이다. 정규음반 사이의 휴식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앨범의 완성도가 실로 높다. 사랑이라는 테마와 잔잔한 공기를 각기 다른 열두 곡에 공유시키기 쉽지 않음에도 아티스트는 이를 잘 수행하며 트랙 전후에 유기성을 부여했다. 한 음반에 한 이미지를 불어넣는 이지형의 특기가 잘 보인다. 곡 목록 중간에서 작품을 잘 이어가는 리드미컬한 곡 「수지」와 간편한 구성으로 음반을 잘 마무리하는 「삼포가는 길」도 이 지점에서 같이 언급해야겠다. 앞서 언급한 아티스트의 안정감과 마찬가지로 음반의 수준 역시 정규 음반들만큼이나 뛰어나다.

생각해보니, 소품이라는 말에는 '변변치 못한 물건'이라는 뜻이 담겨있지 않던가. 이 정의를 두고 앨범을 바라본다면 뭐랄까, 꽤나 역설적이다. 변변치 못한 물건들 모음이라며 음반을 내놓았으나, 선보인 물건들과 간추린 모음은 오히려 변변한 정도 이상에 위치해있다. 소품집이라는 말이 도리어 작품의 무게를 깎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정도로 < Duet >은 상당히 잘 만든 작품이다.

글/ 이수호 (howard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