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버지를 졸랐다. 자동카메라가 갖고 싶었다. 소풍 갈 때, 아이들이 들고 오는 그것. 다른 것 필요 없었다. 셔터만 누르면 만사 오케이. 부러웠다. 집에 있는 수동카메라, 너무 구닥다리 같았다. 소풍 갈 때 들고 가기도 무거웠고, 시쳇말로 쪽팔렸다. 다른 애들, 콤팩트하고 예쁜 자동카메라 들고 오는데, 이게 뭐람. 징징거리거나 조르지 않는 아이였던 나는, 그것만큼은 아버지를 조르고 또 졸랐다.
아버지는 고심하는 듯했다. 그 오래된 수동카메라로 왜 고심하는지 몰랐지만, 나의 목적은 오로지 자동카메라. 그것만 있으면, 공부도 더 잘하고, 말도 잘 듣겠다는 ‘뻥’까지 치면서, 원했다. 아버지는 결단을 내렸다. 어느 날, 수동카메라는 자취를 감췄다. 대신 예쁘고 콤팩트한 자동카메라가 입양(?)됐다. 기뻤다. 이젠 나도 카메라를 들고 다닐 수 있다. 아니, 카메라 자랑질을 할 수 있게 됐다. 아들의 기뻐하는 모습에 아버지도 웃었지만, 그 웃음 뒤 한 자락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수동카메라를 팔아, 자동카메라를 산 아버지. 20여 년 고락을 함께한 카메라가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갔다. 그땐 몰랐다. 아버지에게 그 카메라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던 거고. 들었다고 그때의 난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안다. 그래서 후회한다. 그 수동카메라. 화폐적 가치를 떠나, 아버지에게 어떤 가치를 지닌 존재였는지 이제는 조금 안다. 아버지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안다. 내가 쫓아낸 셈이 됐던 그 카메라. 얼마나 울었을까. 얼마나 섭섭했을까. 미안하다.
#2. 어쨌든 자동카메라는 한동안 내 장난감이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사랑으로 시작한 관계가 아니었고, 카메라의 진화 속도는 너무 빨랐다. 더 비싸고 성능 좋은 카메라로 눈길이 돌아갔고, 내 변덕도 변했다. 그러다, 내 사랑했던 카메라가 생겼다. 10여 년을 함께했다. 내 모든 여행길과 발자취에 함께했다. 디지털카메라가 대세가 된 이후에도, 나는 디카에 마음을 주지 않았다. 내겐 그녀로 충분했다.
하지만 사랑이 그렇잖나. 한쪽만 건재하다고 지속되지 않는다. 마음만으로 모든 것을 덮을 순 없다. 그녀가 아팠다. 부러졌다. 작동을 멈췄다. 입원도 시켜봤지만, 완치되지 못했다. 더 이상 어쩌지 못했다. 그저 그녀가 남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상황까지 도달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지금 나는 조그만, 지금은 누구도 쓰지 않을 법한 아주 구닥다리 디카를 사용한다. 하나같이 놀라운 기능과 성능을 탑재한 카메라가 광고 등을 통해 쏟아지지만, 돈도 없고, 사용할 엄두도 안 난다. 누가 준다면 모를까. ^^;
카메라는 이제 현대인의 필수품이 됐다. ‘카메라질’은 만인의 취미가 되어가고 있다. 덕분에 이미지는 차고 넘친다. 그런 대세에 카메라와 사진은 다양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엄청난 화소와 놀랄 만한 기능을 탑재한 카메라가 판을 펼치는가 하면, 그 반대에선 필름카메라가 다시 부활하고 장난감 같은 카메라로 사진을 즐기는 부류도 있다.
여기 카메라와 사진으로 즐거움을 찾고 스타일을 만든 사람이 있다. 전문 사진작가도 아니고, 비싼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 아니다. 필름 카메라 수집하기를 좋아하고, 흑백사진 찍기를 즐기며 현상, 인화까지 손수 한다. 다양한 필름 카메라를 통해 다양한 삽질 경험을 겪었고, 노하우를 쌓았다. 필카를 친근한 장난감처럼, 사진 찍기를 고된 작업이 아닌 즐거운 놀이로 즐기는 사람이다. 그는, munge(박상희).
커피에 대한 관심과 즐거움 덕분에,
『커피홀릭’s 노트』를 냈던 그는, 최근 유쾌한 사진 놀이를 즐기는 방법을 공유하기 위해,
『포토홀릭’s 노트』(munge 지음|예담 펴냄)를 내놨다. 잘 찍은 사진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기본과 원칙을 거슬러, 별것 아닌 피사체도 예술 작품 부럽지 않은 창조성과 진귀함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사진 놀이를 담았다. 지난 5월 6일 저녁 서울 홍대 부근, 로모그래피 갤러리 스토어.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독자들이 모였다. 따뜻한 커피 한 잔까지 곁들인 카메라 이야기. 사진을 놓고 이야기꽃이 핀 현장, 당신도 초대한다.
사진 인생, 어쩌면 우연 혹은 운명?
munge가 사진을 처음 만난 건, 대학 시절이었다. 순전히 취미였다. SLR(일안 반사식 Single-Lens Reflex) 카메라가 그의 손에 쥐여졌다. 좋아했지만,
“12개월 내내 취미생활로 하자니 부지런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고,
“노력하는 만큼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시들해졌다. 그러다 다시 불이 붙은 건, ‘로모’ 덕분이었고, 뭣보다 예기치 않은 사건이 결정적 장면이 됐다. 외국 여행을 갔다가 이틀 만에 가방과 짐을 도난당했던 것! 누가 알았으랴. 이것이 다시금 시작된 사진 인생에 불을 붙일 줄이야.
그 가방, 다른 건 둘째 치고, 니콘 COOLPIX SQ 완소 카메라 미놀타 hi-matic F와 몇 롤의 필름. 소매치기야 물론 득템이었겠지만, munge로선 머리가 텅~ 빌 노릇. 이를 콱 깨물었다지만, 허전함을 메워야 했다.
“카메라가 없으니 20일 동안의 여행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멋있는 곳에 갈 때마다 사람들이 카메라를 터트리는데, 뻘쭘하게 있는 게 너무 심심했다. 카메라 사야겠다. 카메라 매장을 찾아 헤매다가 코닥 현상소에 진열된 카메라를 발견했다.”
빙고. 하지만, 카메라는 눈물 날 지경.
“일회용급 카메라로 누르기만 하는 아이였다. 무조건 플래시가 터지는 방식이고, 빛 조절도 못 하고, 오직 가격 때문에 선택했다. 여행 경비의 반 이상을 잃어버려서 무조건 싼 카메라를 찾았는데, 21유로(당시 2만5천 원)였다. 퀄리티는 생각하지 않고 카메라가 있어야겠다는 일념하에 사게 됐다. 사실 여행지에 가서, 이 카메라 꺼내는 게 너무 창피했다.(웃음)”
그러니까 완전 플라스틱 장난감 카메라. 어쩌랴. 유일한 방법이었다. 홀로 간 여행,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건 플라스틱 장난감 카메라. 손이 부끄러웠다. 사진 찍을 때마다 살짝 가려서 찍고, 찍고는 감췄다. 20일 여행을 달래주고 위로한 친구였지만, 그땐 그랬단다. 카메라는 그렇게 냉대(?)받았고, 궁상이 됐는데!
역시나 살다 보면, 병적인 유머센스가 툭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다.
“이런 궁상의 추억이 빛나는 재산이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렇다. 이 여행이 또 한 번 나에게 기회를 가져다준 것이다.”(p.18) 한국에 돌아왔으나 방치된 필름. 아마 울고 있었으리라. 2년가량 지났다. 25롤이 넘는 필름을 현상하자니 부담도 됐지만,
“당시 하는 일 별로 없었던 터”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랬다.
“Bang! 사진은 한마디로 의외였다. 싸구려 플라스틱 카메라로 찍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색감과 풍부한 느낌으로 가득한 사진들이란.”(p.21)
“비싼 카메라보다, 로모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가졌을 때보다 의도하지 않게 잘 나왔다. 굳이 분석을 하자면, 이유 중 하나는 외국이라는 점도 있지만, 부담 없이 찍었던 부분이 있었다. 비싸고 큰 카메라로 찍으면 의식하게 되고, 대상자도 움츠리게 되는데, 워낙 부끄러운 카메라이다 보니 몰래카메라 같은 식으로 찍었다.(웃음) 누르는 행위 외에는 의식을 않고 찍어서 편한 사진이 나왔다.”
말하자면, ‘사진이 다시 내게로 왔다’로 표현할 수 있을까. munge의 새로운 사진 인생은 토이카메라와 함께 열렸다. 토이카메라에 꽂혔다. 로모보다 더 깊이 빠졌다. 1만 원, 2만 원 카메라에 연연하게 된 사연. 책은 그런 아이템이 쌓이고 쌓였다. 홀릭이 따로 있나.
“플라스틱 코닥 카메라와의 우연한 만남. 그 우연으로 인해, 카메라의 세계에 제대로 들어온 것이다.”(p.21)
포토홀릭의 메시지
살짝 눈치챘겠지만, munge는 편하고 즐거운 취미 생활을 즐기는 호사가(?)다. 거기엔 이 조건, 반드시 붙는다. 값싼! 그렇다고 싼 티(?) 나게 보지 말지어다. 돈 처발라도 싼 티 철철 흐르는 뻘짓, 우린 잘 알잖나. 그러니, munge의 콘셉트를 말하자면, ‘돈 적게 들이고도 작고 우아한 사치 부리기 혹은 뽀대 내기’. 그의 앞선 작품인
『커피홀릭’s 노트』도 마찬가지였다. 비싼 돈 들이지 않고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콘셉트. 그는 싸구려 도구로 좋은 커피를 마시는 방법을 알려줬다.
그렇다면,
『포토홀릭’s 노트』는? munge는 말한다.
“사진 경력이 점점 길어질수록 비싼 카메라에 뽀대 나는 가방을 들고 다니게 된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건 이후, 그전보다 훨씬 더 반응이 좋은 사진을 찍게 됐다. 그래서 공감하고 싶었다. 비싼 브랜드 카메라보다 이베이에서 중고 카메라를 사는 사람도 많은데, 같은 회사의 같은 기종에서도 몇몇 기종만 고가로 팔리는 것 많다. 특별히 인기 많은 카메라를 선호하는데, 사실 한 끗 차이다. 네임 밸류 때문에 비싸지고, 카메라도 좋은 기종이 계속 나오지만, 반대로 가는 콘셉트를 가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질문이 나왔다. 사진을 통해서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뭘 말하고 싶은지. 학교 선배를 통해 취미로 시작한 사진. 사진이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고민도 했지만,
“뭔가를 담을 만큼 성숙하거나 실력도 안 됐다. 그런 면에서 겉치레적인 사진을 많이 찍었다.(웃음) 사진 이전에 주제나 소재에 대해서 고민과 연구가 쌓였을 때, 가능하다고 봤다. 로모를 처음 접하면서 그런 부분을 버리면서 편해졌고, 토이카메라 통해서는 노출, 앵글을 버리면서 더 편하게 찍었다. 어디까지나 취미로 찍기 때문에, 사진이 재밌어졌다.”
사진을 통해서 메시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는 스스로 즐거워할 줄 아는 포토그래퍼.
“내가 바라본 강변 등이 카메라마다 다른데, 새로운 시선의 사진이 나왔을 때 환호하게 된다. 눈으로 봤을 땐 평면적인 장면이었는데, 어떤 카메라는 광각으로 왜곡하거나 망원으로 새로운 카메라의 눈이 생기기도 했다. 우연히 나온 다른 시선에 재미를 느끼고 있고, 그런 부분이 사진이 담고 있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메시지는 아니지만, 내 시선과 카메라 시선이 접목되면서 새로운 시선을 만드는 거. 실제로 사진이 나왔을 때 나를 응시하는 표정이 우연히 담기는 것과 같은 사진이 요즘에 추구하는 사진이다. 아직은 내가 즐기는 사진을 찍고 있다.”
감히 사진의 혁명이라 말하다
작고 가볍고 저렴한 플라스틱 재질의 필름 카메라. 장난감으로 착각할 만큼 깜찍한 외형에 “사진이 제대로 찍히기는 하겠어!”하며 우습게 보기 일쑤지만, 그랬다가는 큰코다치는 수가 있다. 기대하지도 못한 우연의 힘이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꾸며줄 테니까. 자, 그럼 이제부터 사랑스러운 토이 카메라를 소개합니다. 제 친구와 인사하실래요?(p.139)
처음 로모를 만난 munge, SLR에 안녕을 고했다.
“혁명이었다. 사용법이 간단하고 거리감을 유지하지 않으면 초점을 맞추기 어렵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편하고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는 게 내겐 혁명이었다. 겉멋 부리면서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것, 가방이 클수록 뿌듯하고 그랬는데, 조그만 카메라로 아무렇게나 찍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물론 아무것도 제어할 수 없다는 게 사진을 찍는 데 꽤 불편하다고 말한다. 로모는 그래서 중간 단계. 토이카메라는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카메라 특성에 맞춰 어떻게 찍는가에 대한 노하우도 이젠 생겼다. 부담감을 벗어 던진다면 토이카메라로 어떤 것이든 충분히 찍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
여기서 잠깐. 로모의 탄생 비화.
“낡고 허름한 카메라 숍에서나 판매되었던 이 남루한 카메라는 10년이 지난 1991년 체코로 여행을 온 오스트리아 학생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다. 학생들은 재미삼아 산 몇 대의 카메라로 프라하의 아름다운 거리를 담았다. 실험정신 강한 젊은이들은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체코는 물론, 다리 사이로, 허벅지에 올린 채로, 하늘 높이 번쩍 들어 찍는 등 다양한 연출을 시도했고 그 필름들은 빈으로 돌아가 대형 슈퍼마켓의 현상소에 맡긴다. 그리고 누구도 기대하지 못했던 사진들과 마주하게 된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체코의 모습이 사진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pp.50~51)
그가 로모를 처음 쓴 것은, 2001년.
“필름카메라(필카)에 혁명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 DSLR이나 디지털카메라가 나오면서 필카가 귀찮고 부담스러워지고, 필카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안 찍게 됐다. 대세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시대가 됐을 때, 로모로 인해 필카 붐이 일어났다. 디지털이 대세인 시대에서 취미로 필카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 로모다. 사진이 작가주의에서 리얼리티를 추구하게 됐다면, 로모 이후로는 사진 전공 학생이나 작가도 편안함이 어우러진 센스 있고 감각적인 사진의 흐름에 동참하게 됐다. 선호점이 변했다고 할까. 그런 면에서 로모가 큰 획을 그은 부분이 있다.”
로모의 가장 고무적인 현상은 퇴화되어 가던 필름 카메라의 새로운 부활이었다.(p.54)
사진이 찍히는 사람도 큰 카메라보다 부담이 덜한 것이 로모나 토이. munge도 그랬다. 로모를 사용할 때는 모드만 맞추고 나서 그냥 갑자기 들이대고 찰칵. 놀란 표정도 많이 찍히고 재미있는 사진이 많이 나왔다. 토이는 가까운 대상을 찍기보다 우연의 순간을 즐겼다. 몰래카메라처럼 몸에 붙이고 걸어가면서 찍고, 편한 자세에서 찰칵. 카메라를 통해 조절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저 누르는 것이 모든 것. 자연스러운 사진이 그렇게 나왔다.
“무방비 상태로 걸려든 사람들의 표정 등이 만족스럽더라.”
munge의 취향
디지털카메라의 장점 혹은 특성 중 하나는 필름 생각하지 않고 누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필카는 그리하기 힘들다. 필름 자체가 돈이기 때문. 물론 필카 사용자도 유형이 있다. 필름을 마구 누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필름 생각해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 사람도 있다. munge는 후자에 가깝다.
“마구 누르는 정도는 아닌데, 필름 값이 많이 나가서 조심스럽다.”
자신이 셔터를 누른 사진, 한번 들여다보라. 어떤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자신도 알지 못했는데, 그런 부분 있다.
“암암리에 좋아하는 앵글이나 피사체가 있는 것 같다. 필름을 모아보면 비슷한 대상과 구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앵글은 좋아하니까 찍어야지 하는 게 아니고, 그런 앵글을 보면 눌러대는 그런 것이 있다. 나는 골목을 보면 미친 듯이 찍어댄다. 그런 장면이 있는 것 같다. 익숙함이나 기호. 어떻게 하면 잘 찍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다른 사람의 사진을 많이 보라고 하는데, 나도 그렇게 느낀다. 나도 그런 구도를 많이 본 거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을 봤을 때, 멋있다고 느끼는 게 그런 사진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의 취향은 말하자면 이렇다. 흑백사진. 20~40년대의 사진. 그때의 감성에 대한 끌림. 길거리나 건물보다 사람들의 행위나 시선이 잘 담긴 사진. 아울러, 사진을 찍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재미. 뭣보다 칭찬을 받으면 기분 둥둥.
“단순하게 보여주는 것으론 효과적이지 않아서 미니앨범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출판사에 그런 미니앨범을 보여줘서 계약서를 쓰게 된 거고.(웃음)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을 폴딩 방식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사진도 멋있고 그럴싸하다. 우와~ 하는 탄성이 나온다. 그렇게 자랑을 한다.(웃음)” 그러니까 그에게 사진은, 자기만족과 더불어 남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즐거움. 즉, 타인과의 소통.
munge가 말하는 모토.
“돈을 들이지 말고 놀자.” 사실 흑백필름은 컬러필름보다 비싸다. 브랜드 제품이 그렇다. 흑백필름을 쓰는 그가 택한 방법은 그리하여, 중국산. 필름 값도 아까운데, 거대 브랜드의 비싼 제품을 쓸 순 없는 노릇. 중국산 흑백필름의 질이 많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란다. 취미 생활에 필름의 퀄리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럴싸한 사진을 뽑아내는 노하우도 쌓았지 않는가. 남은 건, 이제 칭찬.
토이카메라, 자랑질하라
이날, 소장하고 있는 카메라들을 데리고 온 munge. 자랑질이다. 그들을 ‘아이’라고 표현한다. 애정이 묻어난다. 다만, 완소카메라였던 ‘미놀타 Hi-matic F’를 여행 가서 잃어버린 탓에, 그 이후론 특정 카메라에 정착하지 못한 상태란다. 이 아이, 저 아이 방황(?)하면서 새로운 완소를 찾고 있다.
그는 이제 카메라 기종에 현혹되지 않는다. 토이면 어떠리.
“사진을 처음 접할 때, 카메라 기종에 현혹되기 쉽다. 나도 맨 처음에 현혹됐던 것이 카메라 가게의 진열장에 전시돼 있던 폴딩 카메라였다.” 마침 그도 한 아이(폴딩 카메라)를 데리고 왔다.
“러시아산인데, 카피 제품이다. 중형 필름을 넣는 중형 카메라이고.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에 만들어졌는데, 기능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제품이 많질 않다. 아무리 맞춰도 무조건 초점이 안 맞게 돼 있다.(웃음) 편하게 찍을 수 있고, 자랑용 카메라이다.”
그의 첫 로망이 폴딩 카메라였다면, 이안 리플렉스 카메라도 한때 로망이었다.
“렌즈가 2개 달린 카메라인데, 역시 중형 필름을 끼운다. 사진이 찍히는 상과 유저가 바라보는 상은 미세한 차이가 있다. 거리도 차이가 난다. 실재 화면과 실제로 찍히는 게 다르다. 밑으로 보면 상이 맺히는데, 뷰파인더가 좌우 반대로 된다. 보통 사진을 잘 찍자에 현혹되기 이전에 좋은 카메라에 현혹되잖나.(웃음) 나 역시 카메라에 현혹돼서 마구 사들이긴 했는데, 이젠 싸게 재밌게 놀자가 모토라서…….”
로모 루비텔은 166U 카메라는 이안이플렉스(Twin Lens Reflex) 중형 카메라이다. 이안리플렉스 카메라는 렌즈가 두 개 장착되어 있어 아래에 있는 렌즈로 필름에 상을 담고 위에 있는 렌즈는 뷰파인더용이다. 뷰파인더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상은 촬영렌즈를 통해 필름에 담기는 상과는 두 렌즈의 거리만큼 미세한 차이가 생긴다.(p.66)
싸구려(?)에 집착한다고 munge의 사진 취미를 ‘싼 티’로 매도할 필요는 없다. 그는 전문 사진작가도 아니요, 상업적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아니다. 사진이 주는 즐거움과 재미에 매료된 이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통로. 토이카메라로 이것이 가능함을 알려준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렌즈 파인더 카메라를 좋아하는데, 반수동 방식이다. 약간의 수동성을 필요로 하면서 편하게 사용하고 싶다면 렌즈 파인더 카메라를 쓰면 된다. 더 쉽게 하고 싶다면 거리 정도만 측정하는 로모를 쓰고, 이것도 귀찮다면 토이카메라가 충분하다. 누르기만 해도 상이 맺히니까. 대신 실루엣은 없다. 야외에선 잘 나온다.”
물론, 1만 원짜리 카메라를 소개해도 이왕 제대로 찍고 싶다면 좋은 기종을 사는 사람, 많단다.
“처음부터 1만 원짜리로 사진을 찍었을 때, 사진이 재미있구나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토이카메라가 우연에 연연하는 만큼 (사진이) 잘 안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사진을 약간이라도 파악하고 있어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또 어떤 홀릭이? 다음 시리즈?
커피에 이어 사진이었다. 일러스트레이터 munge의 취향이, 관심이 책을 낳았다. 그 관심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즐기는 방법을 공유한 것이다. 그렇다고 쉬운 것은 아니었다.
『커피홀릭’s 노트』 때도 커피를 엄청 마시는 통에, 커피에 한동안 질려버린 경험.
“토이카메라는 사진에 대해 오랫동안 취미여서 꽤 안다고 생각했는데, 리서치를 하니까, 커피 때의 2배 공부를 하게 되더라. 책 한 권 낼 때마다 취미를 버려야 하는 아픔이 있다.(웃음)”
그는 노트 만들기도 좋아한다. 일러스트를 하니, 그린 그림을 표지로 해서 노트를 만든다. 그리곤 주변에 뿌린다. 역시나 칭찬에 화색이 도는 munge. 그렇다면 다음은, ‘노트홀릭's 노트’가 아니냐고? 아니. 다음 이야기는 매뉴얼이 아니다. 스토리텔링이다.
“1분 이상 똑같은 박자를 유지 못하는 드러머와 똑같은 요리를 만들 수 없는 요리사, 대상을 똑같이 그릴 수 없는 화가가 나오는 창작물을 준비 중이다. 아, 그전 6월에 일러스트에 관한 책이 우선 나올 거다.”
munge가 만드는 스토리텔링. 기대된다고? 당신 어쩌면, ‘munge holic's 노트’를 만들게 될지도 모를 일. 그의 세계가 펼쳐지는 공간은 이곳.
munge.co.kr 들어가면 혹시, 먼지munge가 되고 싶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