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랐다. 한 가수를 무대에서 진득하게 보는 것조차 힘든 지금의 가요 시장에서 6년여 만에 발표한 그의 음반은 발매 한 달여 만에 1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더니, 7년 만에 라이브 무대가 마련된 올림픽홀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게 인파로 가득 찼다. 그룹 토이, 뮤지션 유희열의 존재감이 이 정도로 대단했구나!
‘라디오 천국’에 이어 ‘반갑습니다’라는 말을 건넨 유희열은 6집에 실린 ‘나는 달’을 직접 불렀고, 팬들은 이내 ‘유희열’을 연호한다. “잘 지냈죠? 다들 여전해요.”라는 그의 인사말에 아득한 함성이 터져 나온다. “2001년에 마지막으로 공연을 했으니까 7년 만이네요. 누군가는 대통령이 3번 바뀌었다고도 하고, 월드컵이 2번이나 치러졌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그때는 탱탱한 젊은이였는데, 뭐 여러분도 많이 힘드셨나 봐요(^^).”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유희열의 입담은 여전하다. “제가 노래를 하면 다 웃더라고요. 돈 주고 이런 노래를 어디에서 듣겠어요. 어떤 가수들은 노래할 때 객석에서 따라 부르면 싫어하던데, 저는 들으면서 ‘아, 원래 음정이 이거구나.’ 생각해요. 크게 부르셔도 좋아요.”라며 객석에 큰 웃음을 선사한 유희열은 ‘내가 남자친구라면’ 등을 역시나 다소 불안한 음정으로, 그러나 기분 좋게 불렀다.
이번 토이 콘서트는 몇 가지 큰 특징이 있었다. 먼저 화려하고 세련되게 꾸며진 무대 위에는 왼쪽으로 밴드가, 오른쪽에는 흰색 그랜드 피아노와 키보드가 놓여 있다. 또한 모든 멤버들이 흰색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 입어 마치 클래식 연주회에 와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독특했던 점은 수많은 스타 가수들이 무대에 올라 토이의 노래를 불렀다는 점이다. 홀로 공연을 마련해도 올림픽홀은 거뜬히 채울 그들이 노래 한두 곡을 부르고는 별다른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그대로 퇴장했다. 처음 공연을 취재할 때 기획사 측에서는 자축하는 집안 잔치 같은 공연이라 외부로 알려지는 걸 꺼린다고 했는데, 그야말로 토이의 귀향을 축하하는 음악과 연주, 팬과 유희열이 있는, 편안하면서도 질 높은 공연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토이의 노래를 불렀던 가수들의 무대가 이어진다. 첫 게스트는 매력적인 음색의 조원선. 여느 무대에서와는 달리 파란색 드레스에 화려하게 꾸민 그녀는 6집에 실린 ‘Bon Voyage’와 5집 수록곡 ‘기다립니다’를 열창했다. 조원선과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아서 애틋한 마음이 있다는 말에 팬들의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온다. 이어서 토이를 대표하는 객원가수들의 무대가 차례로 이어진다. ‘바램’의 변재원, ‘크리스마스 카드’의 김형중, ‘여전히 아름다운지’ ‘거짓말 같은 시간’의 김연우가 연이어 노래를 선사하자 객석은 이내 터질 듯한 반가움을 드러내며 추억의 그 시절로 여행을 떠난다.
밴드 소개 뒤, 유희열과 동갑내기 친구라는 김민규(델리스파이스, 스위트피)가 무대에 올랐다. 때로는 적절한 소개도 없고, 무대에 오른 가수마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기에 객석에서는 게스트가 누군지 알아맞히는 것도 큰 재미다. 김민규가 ‘안녕 스무 살’로 무대를 바짝 긴장케 한 뒤, 다시 나긋나긋하고 다소 느끼한 노래가 흐른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앗, 이것은 ‘환생’. 어느덧 무대에는 노래만큼이나 능글맞은 윤종신이 올라와 있다. 이른바 오늘의 ‘토크 게스트’다.
“유희열 씨와 알게 된 지 13년이 됐어요. 그때는 정말 말이 아니었는데, 저와 함께하면서 많이 진화됐죠. 2년 전쯤에 ‘나와 함께 개그계로 가자’고 설득했는데, 말을 듣지 않더라고요. 사실 개그맨으로서는 타고난 외모잖아요. 첫날 공연에서는 유희열 씨가 눈물을 흘렸다고 하던데, 여러분 속지 마세요. 저 사람 아직도 연기학원 다니고 있습니다. 유희열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해요.” 이들의 입담은 실로 경지에 이른 듯하다. 끝내 윤종신은 흰 정장을 차려입은 멤버들을 두고 ‘남자 간호사들 같다’고 했고, 무대 위 유희열은 아줌마처럼 박수를 쳐가며 웃었다.
분위기를 한껏 띄운 윤종신은 자신의 많은 히트곡 가운데 ‘한 식물의 탄생과 아픔을 그린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다름 아닌 ‘팥빙수’. 1층은 물론이고 2, 3층 관객들도 일어나 신명나게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란. 많은 공연을 다녀봤지만 관객들이 이렇게 웃긴 노래에 이렇게도 열정적으로 달리는 모습은 처음이다(^^).
다음 게스트는 유희열이 친히 ‘정열’도 아니고 ‘정력’적인 가수라고 소개했다. 어쩌면 그 말에 바로 떠오르는 가수가 있는가? 그렇다, 바로 적군 이적이다. ‘말해줘 넌 잘하고 있다고, 너 혼자만 외로운 건 아니라고, 잡아줘 흔들리지 않도록, 내 목소리 공허한 울림 아니길 바래.’라는 가사가 특히 가슴에 와 닿는 토이 5집에 실린 ‘모두 어디로 간 걸까?’를 노래하며 팬들의 가슴에 파고든 이적은 자신의 노래 ‘하늘을 달리다’로 무대를 정력적으로 휘저었다.
계속되는 달리는 무대! 김형중이 ‘좋은 사람’을, 토이 6집의 새로운 객원가수 이지형이 ‘뜨거운 안녕’을 화려한 액션까지 곁들여 무대를 뜨겁게 달궜다. 다시 성시경이 등장해 유희열이 딸을 위해 만든 ‘딸에게 보내는 노래’와 ‘소박했던, 행복했던’을 선사했고, 이어 토이의 모든 객원가수들이 무대에 올라 ‘그럴 때마다’와 ‘스케치북’을 노래했다. 개구쟁이 같지만 대선배들 사이에서 약간은 어색해하는 이지형, 불러왔던 노래와는 달리 터프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변재원, 한때 여대 축제를 주름잡았던 달콤한 목소리의 김형중, 그리고 존경스러운 성량과 가창력의 김연우. 뭐랄까, 그들이 불렀던 그 옛날 토이의 노래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시리고 따뜻한 추억에 목이 메었다.
2번의 앙코르 무대에서는 ‘A Night In Seoul'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해피엔드’ 등이 불렸고, 유희열은 팬들에게, 또 팬들은 토이에게 서로 ‘고맙다’는 말은 건넸다. 또 하나, 4월이면 라디오를 통해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소식도 선물했다.
가끔은 노래라는 것이 예전만큼 절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감정이 그때만큼 절실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토이의 이번 콘서트는 티켓 예매가 시작되면서 바로 매진돼, 20여만 원에 달하는 암표까지 나왔다. 덕분에 당초 이틀로 예정됐던 공연은 하루가 연장됐다. 토이를 향한 팬들의 이 같은 열정은 유희열과 그의 음악이 가요계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입증하는 동시에, 무뎌져가는, 그날의 소중한 감정을 되살리고 싶은 우리 모두가 지닌 간절함의 발로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