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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낭만주의, 요즘 시대에도 통할까?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운명이라는 말을 믿어 신해철이라는 싱어송라이터의 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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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나처럼 90년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세대에게 신해철의 낭만주의가 꽤 강렬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신해철 신곡 「A.D.D.a」가 발표되었다. 2008년, 넥스트(N.EX.T)가 발표한 <666 Trilogy Part I>이후 6년만이다. 이 곡은 곧 발표될 여섯 번째 솔로앨범 <Reboot Myself>의 첫 번째 공개곡이기도 하다. 반응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양가적이다. 호응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적응하기 어렵다거나 귀에 잘 들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나는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개한민국>을 들었을 때의 ‘충격과 공포’를 잊을 만큼 괜찮았다. 오랜만에 옛날 생각도 나고 그랬다. 아닌 게 아니라 올 초부터 뜬금없이 신해철의 초기 앨범들을 틈틈이 다시 듣고 있던 중이라 오랜만의 신곡이 놀랍진 않았다.

 

신해철  신해철  신해철

 

낭만적인 감수성이 존재하는 신해철 음악


「A.D.D.a」는 원 맨 아카펠라 형식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1천개 이상의 트랙을 겹겹이 쌓아 올려 제작했다고 한다. 어쩌면 장난처럼, 혹은 대수롭지 않게 들리는 소리‘들’이 사실은 강박적으로 녹음과 재녹음을 반복한 다음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결과라는 뜻이다. 원 맨 아카펠라는 아니지만 미국의 5인조 아카펠라 그룹 펜타토닉스(Pentatonix)도 이런 식으로 음악을 만든다. 목소리만으로 일반 음악에 필적하는 입체감과 질감을 표현하는 식인데 「A.D.D.a」의 경우엔 배경으로 깔리는 베이스 라인과 리드 보컬과 코러스의 겹겹이 쌓인 구조가 전자음악의 그것처럼 복잡하고 리드미컬하게 펼쳐진다. 수없이 반복되는 작업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노래가 환기하는 건 역설적으로 신해철이라는 싱어송라이터의 포지션이다. 그는 무한궤도와 솔로 시절 이후 윤상과 함께 결성했던 프로젝트 노땐스, 넥스트, 크롬(Chrome), 비트겐슈타인 등을 거치는 동안에 꾸준히 ‘다른 음악’을 찾아다녔지만 그 중심에는 세계에 대한 낭만적인 감수성이 확실하게 존재했다. 이 낭만성이야말로 신해철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인데, 90년대의 감수성이라고 해도 좋을 지점을 자극하는 것 같다.

 

「A.D.D.a」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학교를 갔어도 졸업이 업이 안 돼 / 군대를 갔어도 취직이 직이 안 돼 / 장가를 갔어도 글쎄 어째 애가 안 생겨 / 애아범이 돼도 철이 들질 않아 전혀.” 그 뒤로는 ‘철들지 않는다’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는데 “그냥 그대로 그대로 그대로 대로 대로 대로 대로 / 이 똑같은 세상을 어떡하든 버티는 나 / I'm just what I am” 같은 가사가 쭉 이어지는 것이다.

 

신해철  신해철  신해철

 

신해철의 이런 낭만주의는 90년대를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서태지와 비교될 만하다. 솔로 시절과 넥스트의 음악을 다시 들어보면 소위 ‘중2병’같은 감각의 노랫말이 단번에 와 닿는데 이 점이야말로 신해철의 특징이자 서태지와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지점이란 얘기다. 요컨대 서태지의 음악은 ‘시대적 명령’에 가까운 화두를 던지는 노래들이었다면 신해철은 대책 없는 낭만주의를 선보였다. 서태지 노래의 화자에 주로 ‘우리’가 많이 등장한 반면 신해철은 언제나 ‘나’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것을 개인주의와 소비주의가 주도권을 행사한 ‘90년대’라는 시대적 조건에 발맞춘 ‘낭만적 개인의 탄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서태지가 사회와 제도에 집중했다면, 신해철은 꿈이나 사랑, 운명 같은 형이상학적인, 비현실적인, 낭만적인 개념들에 대해 노래했다. 음악적으로도 넥스트/신해철은 단지 프로그레시브 록의 접목이 아니라 이런 서사와 분위기를 압도적인 ‘스펙터클’로 제시하려는 욕망이 있었음이 중요할 것 같다. 이것은 아직까지 신해철의 음악적 방향을 결정하는 키워드다. 「A.D.D.a」의 강박적인 접근방식 또한 이런 스펙터클과 밀접하다.

 

중요한 건, 나처럼 90년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세대에게 신해철의 낭만주의가 꽤 강렬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신해철의 노랫말은 주로 ‘꿈을 포기하지 않겠어’, ‘난 결코 철들지 않겠어’, ‘세상과 싸워나가겠어...’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 시절에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형성된 세계관이 아직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쩌면 은연중에 그렇게 살려고 애써왔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A.D.D.a」를 들어보니 신해철은 40대 중반에도 여전히 그렇게 살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다.

 

새삼 이 곡이 실리게 될 새 앨범의 제목은 <Reboot Myself>다. <Myself>는 신해철이 1991년 발표한 2집 앨범의 제목이었다. 이 앨범은 한국 최초로 미디로 만들어진 앨범이기도 했다. 그 점에서 <Reboot Myself>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하나는 ‘미디’라는 혁신적인 악기를 사용했던 것처럼 아카펠라와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의미고, 다른 하나는 본격적으로 ‘혼자 모든 작업을 해낸’ 솔로 2집의 초심을 다시 가다듬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이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을 돌아보는 것. 요컨대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운명이라는 말을 믿어”, 맙소사. 이 낭만주의가 90년대 세대들과 만나는 지점에 대해 더 살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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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차우진

음악웹진 <weiv> 편집장. 『청춘의 사운드』를 썼다. 대체로 음악평론가로 불리지만, 사실은 지구멸망과 부동산에 더 관심이 많은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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