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지원을 읽고 쓰고 그리다
소설가 이제하가 만난 김지원
천품의 감성, 바다의 정한(情恨)
데뷔작이자 《여원》 당선작인 「늪 주변」을 두고 후에 김지원은 그 지나치게 정감스러운 스토리와 결구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그녀가 그 이후 무수히 천착해왔던 사랑의 본질이나 정한의 그 중심 뿌리가 거기 놓여 있었던 것이다.
1960년대 초두 홍대와 합정동 일대가 논밭과 야산으로 메워져 있던 때 서교동 최정희 선생님 댁을 드나들면서 김지원을 만났다. 동생 김채원도 그렇고 어디에 이런 자매가 있었나 싶게 감동을 받은 것은 그녀들에게서 스며오는 문학적 감수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나는 팔을 펴 하늘을 감싸고 하나는 초롱한 눈빛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아름답고 격조 높은 규수 작가의 기본적인 이미지가 원래 그런 것일지 모른다.
데뷔작이자 《여원》 당선작인 「늪 주변」을 두고 후에 김지원은 그 지나치게 정감스러운 스토리와 결구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그녀가 그 이후 무수히 천착해왔던 사랑의 본질이나 정한의 그 중심 뿌리가 거기 놓여 있었던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밀려드는 온갖 파고를 그런 감성으로 감당하고 수용하느라 가끔 어깨를 움찔거리던 그 독특한 제스처와 머릿결들이 지금도 눈에 밟힌다. 늘 남의 사정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서 불행의 기미를 느끼기만 하면 눈빛부터 따뜻하게 변하던 그녀는 어느 시간에 소설을 써왔던 것일까. 호기심 강한 체질이 이 좁은 나라에서는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갈증 때문에 뉴욕 같은 이방으로 그녀를 내몰았을지도 모르고 그런 낯선 풍습에 혼융된 감성은 각별한 아취마저 자아내고 있지만 그녀가 일생 파고든 정한의 근거는 늘 이 나라였다.
강대국 틈에 끼어 항시 질곡을 겪는 이 나라의 흙냄새와 시골길과 도시 변두리 외따로 떨어진 집의 퇴락한 뒤란. 거기 찾아온 옛 친구는 고졸한 의자에 외투를 걸쳐두고 잃어버린 사랑을 얘기하고, 주인은 아득한 눈빛이 되어 있다. 그런 장소 그런 길 위에 수놓이는 그녀의 정한은 마치 바다와도 같이 폭이 넓고 깊다.
그 뒤란에 함박눈이 쌓이는 계절에 그녀가 여태 써온 소설들의 정수를 만난다.
* 다음 주에 2화가 이어집니다.
이제하 작가 대한민국의 원로 작가. 1937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마산 고교를 거쳐 홍익대 조소과에서 입학했으나, 조각과에 입학했으나 곧 중퇴하고 1961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3학년에 다시 편입하였다. 「현대문학」, 「신태양」, 「한국일보」 등을 통해 시와 소설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소설집 『초식』『기차, 기선, 바다, 하늘』『용』『독충』등과 장편소설 『열망』『소녀 유자』『진눈깨비 결혼』, 『능라도에서 생긴 일』, 시집 『저 어둠 속 등빛들을 느끼듯이』『빈 들판』및 영화칼럼집, CD『이제하 노래모음』등이 있다. 이상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 편운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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