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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콜드 블러드』 와 트루먼 커포티

이 책은 커포티에게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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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커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를 오랜만에 다시 뒤적이면서 나는 복잡한 심경에 휩싸였다. 한 작가에게 어떤 작품은 엄청난 영광인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독이기도 하다. 명실상부한 그의 최고작 『인 콜드 블러드』 는 논픽션의 걸작이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나는 커포티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가 되었고 이 작품을 다 썼으므로 전부 다 그만둘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연보 하나를 읽고 있다. 이렇게 시작하는 글이다.

1924년 9월 30일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음. 어린 시절에 가정이 불안정하여 친척집에 맡겨져 자랐음. 아버지는 사기죄로 수감되었고 부모 이혼 후 그의 양육권을 놓고 큰 다툼이 벌어졌음. 결국 뉴욕으로 가서 어머니와 어머니가 재혼한 쿠바 출신 사업가와 같이 살게 됨. 커포티라는 성은 새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음.

이 소년은 미국의 작가 트루먼 커포티다. 트루먼 커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를 오랜만에 다시 뒤적이면서 나는 복잡한 심경에 휩싸였다. 한 작가에게 어떤 작품은 엄청난 영광인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독이기도 하다. 명실상부한 그의 최고작 『인 콜드 블러드』 는 논픽션의 걸작이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나는 커포티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가 되었고 이 작품을 다 썼으므로 전부 다 그만둘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커포티에게 무엇이었을까?

『인 콜드 블러드』 라는 제목을, 집필 전에 붙였는지 완성 후에 붙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냉혈한. 차가운 피. 그것은 범죄나 범인이 아니라,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실화를 바라보는 작가 자신의 눈을 의미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서늘한 제목은, 커포티에게는 일종의 각오이자 선언이었을 것이다. 세계를 바라보는 끔찍하도록 차가운 시선을 견지하겠다는. 그는 끝까지 그 명제에 충실하고자 하였으나 중간중간 그렇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제목을 부정하지 않는 결과로 작품을 마무리했다.

사건의 시작은, 1959년 미국 캔자스시티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일가족 4명이 살해당한 채 발견되는 데서부터다. 범인은 곧 잡힌다. 단돈 50달러를 강탈해간 떠돌이들의 짓이다. 커포티는 그것을 신문 기사를 통해 읽었다. 멀리 떨어진 뉴욕에서였다. 무심코 신문을 뒤적이다가 갑자기 어딘가에 영혼이 붙들려버리는 그 감각에 대해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신문을 통해 이 참혹한 기사를 접한 커포티의 머릿속에서도 믿을 수 없도록 환하고 믿을 수 없도록 컴컴한 번개가 계속 번쩍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캔자스로 부랴부랴 달려가는 동안 그 모순적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 사건의 무엇이 커포티를 그렇게 매혹시켰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어쩌면 작가로서 그는 당시 변화를 갈망하는 시기였을 지도 모른다. 언제나 약삭빠른 야심가라는 평판을 전혀 새로운 작품 세계를 통해 불식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새롭게 진화했다는 평판을 듣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인간이라도, 아니 예술가라면 인정 욕구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

그 후 6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났다. 커포티는 피해자들과 범인들에 대해 끈질긴 취재를 했다. 저널리즘의 방법론과 소설의 작법을 동시에 한 작품 안에 적용한 것이다. 조각조각 흩어진 수만 가지 사실들이 커포티의 펜 끝에서 재구성되었다. 『인 콜드 블러드』 는 최초의 논픽션 소설이며 사건의 피해자, 목격자, 범인, 수사관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했고, 이들 각각의 목소리들을 숨 막힐 정도로 완벽하게 엮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나의 작은 사건으로 미국 사회, 더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 전체를 조망하는 엄청난 작품을 썼다는 찬사가 작가에게 쏟아졌다. 충격적인 사건의 표면을 넘어 인간 내면의 진실을 깊숙이 탐구했다는 경탄도 커포티의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커포티와 함께 기억되는 이름이 범인 중 하나인 페리 스미스이다. 스미스는 커포티와 우정을 넘어서는 특별한 관계에 있다는 소문을 얻기도 했다. 커포티는 아마도 페리 스미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하나는 저명한 작가가 되었고 다른 아이는 전대미문의 범죄자이자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가 되었다. 실제로 커포티는 ‘우리는 같은 집에서 태어난 형제 같다. 나는 앞문으로, 그는 뒷문으로 나온…….’ 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예민하고 우울하며 예술적인 성향의 스미스에게 커포티가 느꼈던 건 애정일 수도, 연민일 수도 있다. 커포티는 감옥에서 곡기를 끊은 페리에게 음식을 떠먹여주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페리 스미스의 사형이 연기되면서 상황이 조금씩 바뀐다.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준비해온 그 책은, 필연적으로 그가 죽어야만 끝날 수 있었던 것이다. 커포티는 불안해진다. 스미스에게 각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의 죽음을 바라야 하는 딜레마에 놓인다. 사형이 임박하자 자신에게 간절한 도움을 청하는 스미스의 손을 커포티는 선뜻 잡지 못한다. 스미스에게 미안하다는 답장도 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찾아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사형은 집행되었고 스미스는 죽었다. 바라던 것 이상의 부와 명성은 커포티의 것이 되었다.

커포티의 연보는 이렇게 끝난다.
1965년 『인 콜드 블러드』 의 눈부신 성공 뒤 커포티는 신간을 발표하지 못했음. 오랜 세월 알코올과 약물로 고생한 끝에 1984년 8월 25일 세상을 떠났음.
『인 콜드 블러드』 의 성공 그리고 스미스의 죽음을 겪은 뒤에 그가 아무 것도 제대로 쓰지 못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동인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왔다고만 확신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서지기 쉽고 복잡한 한 인간의 내면이 점점 폐허로 변해갔다면, 많이 가질수록 더 공허해지기만 했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곰곰 되짚어보게 된다.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건 날카로운 단도로 자기 영혼을 조금씩 저미어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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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이현(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

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커포티> 저/<박현주> 역13,320원(10% + 5%)

‘논픽션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기념비적 소설이다. 커포티라는 치밀한 필터를 통해 재구성된 실제 범죄. 그 숙명적 사건에서 길어낸 인간의 절망과 구원에 관한 비극적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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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포티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캐서린 키너>8,100원(53%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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