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썸싱이 된다는 것
지난 1월 17일, 홍대 인근의 작은 레스토랑 ‘호우’.
『그냥 눈물이 나』 의 저자 이애경이 그녀를 흠모하는 독자들과 만났다. 작가의 두 번째 에세이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출간을 기념해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완벽에 가까웠던 그 순간에 <채널예스>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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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썸싱이 된다는 건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는 게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잘 견뎌 내는 방법을 알아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쁜 순간에
도리어 담담해지는 경험도 이때쯤 찾아온다.
지금 힘들다고 영원히 힘든 것도 아니고
모두 다 스쳐 지나간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나이로 접어들기 시작한 거니까.
서른 썸싱,
생각보다 멋지진 않지만
생각보다 나쁘지도 않다.
(p.111 「서른 썸싱, 나쁘지만은 않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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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된다고 해서 삶에 변화가 생긴다든지, 원했던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드는 건 드문 일인 것 같아요. 그건 서른하나나 서른둘, 또는 마흔이나 쉰이 되더라도 다 똑같을 거라고 생각됐어요. 그렇다면 서른은 뭘까, 싶더라고요. 이 불안정하고 방향도 없는 시기를 배에 비유하자면 키는 잡고 있지만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거죠. 폭풍이 오면 이걸 타고 넘어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는 거예요. 이 문제는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해서 해결되거나 산수처럼 풀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썼던 글이 「서른 썸싱, 나쁘지만은 않은걸」 이에요.”
서른 썸싱. 작가는 서른에 관한 것들을 이 하나의 단어 안에 담아냈노라고 말했다. 서른 즈음에 우리가 빠져드는 것들 혹은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들, 이따금씩 느끼는 감각들과 깨닫게 되는 이치들, 그 모두가 ‘서른 썸싱’이라는 표현 안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냥 눈물이 나』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이 두 권의 에세이는 ‘서른 썸싱’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될 것이다. 서른의 문턱을 넘으며 작가가 앓듯이 느꼈던 감정들과 그 끝에서 바라보게 된 삶에 대해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언니처럼 또 때로는 친구처럼, 속삭이듯 건네는 그 말들은 독자들의 지친 어깨를 가만히 어루만져준다. 그래서 그녀의 에세이는 언제나 응원과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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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이 마음에 품고 있는 질문에 대해 사전처럼 설명도 해 주고 예문을 달아 주고 싶었다. 나도 그랬고, 나의 친구들도, 나의 언니들도 모두 경험한 것들을 진지하면서도 가볍게. 내가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얻은 것처럼 그렇게 그녀들에게 위로를 나누어 주고 싶었다. (에필로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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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나세요
서른의 길목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크게 심호흡하고 용기를 내야 한다. 엄습해오는 두려움과 초조함을 떨쳐내야 하고 ‘나를 믿고 가보자’고 굳게 마음먹어야 한다. 도대체 그 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주저하며 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것일까.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나이가 중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한 살 더 먹는 것인데 우리가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하잖아요. 30대가 되면 인생이 정리되어 있어야 될 것 같고, 뭔가 이루고 있어야 될 것 같은 생각들을 많이 하시죠.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대충 아무렇게나 사는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나은 삶이 될지, 지금 잘 나아가고 있는 건지, 질문을 던지는 거죠. 그 자체가 깨어있다고 생각이 돼요. 앞으로 전진하거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기회인 거예요. 서른이 되었을 때, 방향을 잘 잡고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기에 와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서른을 잘 살아내는 방법을 듣기 위해 작가를 찾아온 이들은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이었다. 서른을 앞둔 여성들과 그 나이 또래의 딸을 둔 부모님, 그리고 서른을 갓 넘긴 여자 친구를 둔 연인까지. 그들은 하나 같이 이애경 작가에게 서른이라는 나이가 주는 부담감에 대해 토로했다. ‘아직 어리니까’라는 이유로 실수가 용인 되는 일은 없을 나이. 그래서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감은 더 강해지고, 모든 결과를 달게 감내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무거진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의문이 드는 것은 변함없다. 과연 옳은 선택일까, 최선의 선택일까. 그 대답이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먹는다고 해서 확고해질 리는 없다. 여전히 흔들리는 이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나 100% 옳은 선택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옳지 않은 혹은 원하지 않은 방향의 선택들을 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잘못된 선택의 경험도 쌓아야 다음에 그런 일들이 벌어졌을 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기잖아요. 항상 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나셨으면 좋겠어요.”
흔들림이 더 고마운 나이가 서른 아닐까요?
아직도 우리는 흔들리고, 옳지 않은 선택을 하고, 그로 인해 아파하고 후회한다. 그래도 나이 드는 일은 서글픈 일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삶과 세상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좋고 기쁜 일이 있으면 호들갑을 떨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감정의 기복이 잔잔해지는 것 같아요. 에너지를 모두 쏟아내면서 기뻐하기보다는 조금 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그 대신 사소한 것에 더 많이 기뻐하는 것 같아요. ‘길을 걷다가 돌 틈 사이에 피어난 들꽃을 보면 인사를 건네 보자’고 생각해 볼 때, 그리고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에게 연락이 올 때 기쁘죠.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든지 미워하는 사람이든지, 저의 삶을 구성해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자체가 감사해요. 서른 썸싱이 된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지나간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흔들리는 게 더 고마운 나이가 아닐까 생각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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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장단에
휘둘리지 않는 것.
때로는 내 감정의 장단에도
쉽게 놀아나지 않는 것.
아플 것 같은 길은 피해 가고
폭풍이 올 것 같을 때는
기다렸다가 갈 줄 아는
지혜 혹은 현명한 선택.
어른이 될수록 좋은 것.
(p.152 「어른이 될수록 좋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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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애경은 가수 조용필과 윤하, 유리상자의 노랫말을 쓴 작사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에 담긴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는 잔잔한 리듬이 느껴진다. 입 속에 맴도는 그 음악과 함께 작가의 말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서 위로와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의 말처럼 서른이라는 나이가 ‘생각보다 멋지진 않지만 생각보다 나쁘지도 않다’는 안도감이 드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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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이애경 저 | 허밍버드
서른 썸싱(something)이 된다는 건,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는 게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잘 견뎌 내는 방법을 알아 가게 된다’는 것. 그 방법을 더듬어 가는 위로와 격려의 글들을 담았다. 여성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온 전작 『그냥 눈물이 나』 에서 선보인 짙은 감성과 깊은 공감에 한층 성숙된 언어와 시선이 포개어졌다. 잔잔하고 따스한 사진이 어우러진 이야기들은 작사가가 써 내려간 글답게 마치 노랫말을 읽는 듯 뛰어난 리듬감과 감수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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