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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폐쇄회로를 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연애의 출발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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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울타리 안에 잡동사니를 잔뜩 쌓아 두고 똑같은 모양이 반복되는 연애 말고, 그 사랑을 통해 울타리 안을 비울 수 있는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이에게도 열지 못하는 지갑이 아니라 사랑받았던 그 추억으로 세상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지갑을 열고, 배우고, 연습하는 시간이 열렬한 연애의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사랑은 마음의 폐쇄회로를 여는 유일한 열쇳말이라지 않는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방이 그렇게 중요해졌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명품백’ 열기가 여전히 대단하다. 예전에는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선물이 보석이었던 것 같은데 몇 년 전부터 가방이 되었다. 모든 여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일단 가방 한 개쯤은 선물받는 것 같다. 유행을 지켜보던 나도 슬쩍 내 연애사에 적용해 보았다.

“나 가방 사 줘!”
“응?”
“예쁜 가방 있던데 그거 사 줘.”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던진 말인데 나에게 관심을 한창 보이고 있는 남자들은 ‘웃겨!’ 하는 표정조차 짓지 않았다. 가방에 대해 물어보는 품이 두 번 더 말하면 사 줄 기세였다. 나야 명품을 쓰는 사람이 아니니까 대개 현실적으로 사 줄 만하다고 생각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묻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고백하건대, 실제로 받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처음부터 받을 생각 없이 나에게 어디까지 기울어졌나 알아보려고 물어본 말이었으니까.

반대로 남자가 그런 식으로 나를 떠본다고 해도 나 역시 진지하게 답해 줄 것이다. 조르지 않아도 뭐 사 줄 것이 없나 살피고 있는데, 사고 싶은 게 있다는 데야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 사랑은 지갑을 열게 하는 위대한 힘이 있다. 어디 쇼핑을 가면 나도 모르게 ‘이게 그 사람에게 어울릴까?’ 하며 내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것을 고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 지갑 열고 싶어라!


여자가 모과며, 복숭아며, 자두 같은 것들을 무심한 듯 굳이 마음 써서 던져 주니 남자는 보석을 갖다 바친다. 마음을 보여준 것이 고맙고 앞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겠다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연애의 출발은 선물인가 싶어 ‘풉!’ 웃음이 나왔다. 요즘 식으로 말한다면 이런 장면이겠지.

“너 아침 먹었어? 내 것 사다가 생각나서 네 것도 하나 샀는데.”

여자가 문득 샌드위치와 주스를 건넨다. 그녀를 맘에 두고 있던 남자의 마음이 빵 터진다. 이제 저녁 약속이 잡힐 것이며, 괜한 영화 약속이 잡힐 것이다. 그리고,

“이거.”
“뭐야?”
“별 건 아니고 그냥 어울릴 것 같아서.”
“어? 이거 비싼 건데?”
“아냐, 뭐 별로 비싼 건 아냐.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뭐 이런 상황. 그 비싼 건 상상에 맡기겠다. 언제 보아도 제3자에게는 웃음이 번지게 하는 풍경.

그러나 나는 이런 이유 때문에 잦은 연애를 싫어하기도 한다. 연애가 잦은 사람들이 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면 스스럼없이 ‘오빠에게 사달라고 해야지!’ 하고 눈도장을 찍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여전히 어색하다. 연애를 자주 할수록 사람이 넉넉해지는 것이 아니라 받아야 할 것을 세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기중심적으로 태어나는 존재인 인간이 자기를 확장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 사랑, 특히 남녀 간의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습관이 되면 원래 이기적인 인간을 더 이기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내 울타리 안에 잡동사니를 잔뜩 쌓아 두고 똑같은 모양이 반복되는 연애 말고, 그 사랑을 통해 울타리 안을 비울 수 있는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이에게도 열지 못하는 지갑이 아니라 사랑받았던 그 추억으로 세상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지갑을 열고, 배우고, 연습하는 시간이 열렬한 연애의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사랑은 마음의 폐쇄회로를 여는 유일한 열쇳말이라지 않는가.


[관련 기사]

-모난 것이 못난 건 아니잖아
-사람을 사랑하고 노래를 즐기며
-바나나가 뭐길래
-연애에도 분산투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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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랑 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 임자헌 저 | 행성:B잎새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이제는 거의 쓸 일이 없는 한문을 공부하고 사극에서나 볼 법한 옛글을 번역하는 저자는 소위 ‘문자 좀 쓰는 여자’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지극히 현대적이고 시크한 요즘 여자이다.이 책은 현대 여성들이라면 다 겪을 법한 소소한 일상의 사건사고에 저자 특유의 기발한 발상과 위트, 독특한 관찰력을 담고 거기에 고전을 살짝 토핑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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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자헌

의욕 넘치게 심리학과에 지원하여 합격했으나 막상 가 보니 원하던 학문이 아니어서 대학시절 내내 방황했다. 어쩌다 보니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연수원에 입학하여 깊은 고민 끝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렸다. 상임연구원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나름 ‘문자 좀 쓰는 여자’가 되었다. 《일성록》 1권을 공동번역하고 3권을 단독 번역했으며, 《정조실록》을 재번역 중이다.

맹랑 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

<임자헌> 저12,600원(10% + 5%)

“하루키보다 공자를, 커피보다 맹자를 사랑한 문자 좀 쓰는 언니의 촌철살인 일상 수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이제는 거의 쓸 일이 없는 한문을 공부하고 사극에서나 볼 법한 옛글을 번역하는 저자는 소위 ‘문자 좀 쓰는 여자’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지극히 현대적이고 시크한 요즘 여자이다.이 책은 현대 여성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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