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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메시지가 이토록 반가운 세상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하는 인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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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죽음에 관한 영화다. 물론, 영화 속에선 누구도 죽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기본전제가 바로 ‘인간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고 여긴다.

언젠가는 가장 뻔한 문장으로 글을 시작해보고 싶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30년이 됐건, 100년이 됐건, 우린 모두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그렇기에 삶의 하루치 경험이 쌓였다는 건, 달리말해 죽음에 하루치만큼 다가섰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나도 1분 어치 죽었다. 즉, 내 삶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유통기한이 있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고, 가장 싱싱하게 유통될 수 있는 유한성을 지닌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달리 말하면, 누구에게나 청춘은 있고, 그 청춘은 누구에게나 지나간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육체적으로 청춘이 지났다. 심리적으로는 이제 청춘의 끝자락에 다다라 있다. 그렇기에 예전에 비해 시간에 대해 더욱 가치를 두고, 소중히 아껴 쓰려 한다. 삶에서 가장 귀한 자원은 ‘통장 잔고’도, ‘필력’도, ‘음란증을 겪는 여성독자에게 받은 립스틱 자국의 냅킨’도 아니라는 걸 이젠 알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장 소중한 자원은 바로 시간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자기계발서를 서둘러 펼쳐 ‘자, 이제라도 뭔가를 해봐야지!’ 라고 작정하는 건 아니다.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늦잠을 자더라도, 오후 햇살을 받으며 게으름을 피우더라도, 도로에 갇혀 차 속에서 음악만 듣더라도,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하고자 한다. 즉, 이율배반적일지 모르겠지만 ‘가장 성실하게 게을러지자’ 라는 나름의 모토를 지니고 있다. 나는 설명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므로 이정도만 해두겠다. 어디선가 소수의 독자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교조적인 작가 양반 물러가라!’라고 외치는 게 들릴 것 같아서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죽음에 관한 영화다. 물론, 영화 속에선 누구도 죽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기본전제가 바로 ‘인간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고 여긴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은 모두 시한부 인생이다. 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누구에게나 죽을 때는 정해져 있는 것이다. 단지 오늘을 사는 인간의 입장에서 죽음의 때가 가까울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멀 수도 있다. 그건 중요치 않다. 우리는 어차피 그 때를 알 수 없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삶을 충만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그 뿐이다. 실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영화의 주인공인 벤 스틸러는 한 평생 코미디 연기를 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배우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연출까지 맡은 이 작품에서는 한없이 진지하다. 아니, 진중하다. 소심하고 한심하지만, 진중한 연기를 선보인다. 그건 결국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벤 스틸러 역시, 자신의 나이가 (한국 기준으로) 50세라는 것을 건강하게 깨닫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아니면 말고). 달리말해, 삶에서 자신이 직접 연출하고 연기할 작품 수가 많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 것 같다(역시, 아니면 말고. 제가 벤 스틸러는 아니잖아요. 전화번호도 몰라요). 그렇기에 그는 한심하고 소심해보일지라도 ‘월터 미티’와 같은 역할을 맡고, 연출하고, 제작까지 한 것 같다.

월터는 우리가 아는 저명한 잡지 ‘라이프 지’에서 근무한다. 사진으로 20세기의 역사를 말해온 이 잡지에서 그가 맡은 일은 ‘네거티브 필름’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라이프지는 시대의 변화로 인해 결국 종이잡지에서 온라인 잡지로 바뀌게 되고, 대망의 마지막 종이잡지의 표지사진을 정하게 된다. 하지만 ‘월터 미티’는 그 마지막 표지사진의 필름을 잃어버렸다. 이제 한 평생 뉴욕 밖이라고는 피닉스 밖에 가본 적 없는 월터가 필름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이 뻔하고, 전혀 웃기지 않는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고백컨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누가 아프거나, 죽거나, 불의한 일을 당한 것도 없는 이 이야기가 선사하는 그 정수가 바로 삶의 본질이라고 느꼈다. 영화에서 월터는 그린란드로, 아이슬란드로, 히말라야로 떠난다. 오랫동안 타지 않았던 스케이트보드를 다시 타게 되고, 만취한 조종사의 헬기도 타게 되고, (놀랍게도) 상어와도 싸우게 된다(실제로 가방으로 상어를 때린다). 그 와중에 필름을 찾지 못해 해고를 당하게 되지만, 이번에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필름을 찾아 히말라야로 떠난다. 물론 필름을 찾게 되고, 대망의 마지막 호에 자신이 찾은 필름의 사진이 실리게 된다. 하지만 그는 복직되지 않는다. 아니 복직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다시 이력서를 쓰는 월터를 보여주며 끝난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 시한부 인생이지만, 그래도 삶은 살아가야 하는 것이기에. 이 단순하고 뻔한 메시지를 보면서 나는 그것이 너무나 반가워 그만 동공이 젖을 뻔했다. 이 뻔한 메시지가 얼마나 귀중한 세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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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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