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에서 주인공 송변호사는 끊임없이 국밥을 먹는다. 세법 변호사로 성공해 넓은 사무실을 가지고 있고, 집도 옮겼다. 요트까지 장만했다. 그런데, 고시생 시절 국밥 값을 못 치르고 도망간 게 미안한지, 변호사가 된 후에도 같은 집에서 계속 국밥을 먹는다. 오죽하면 함께 일하는 박 사무장(오달수 분)이 “아! 이제 국밥 좀 그만 먹자”고 성화를 낸다. 점심시간에 송변호사가 국밥집 문을 열려고 하면 은근슬쩍 도망가려고까지 한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떠올렸다. 사실 누구에게나 이런 ‘돼지국밥’은 있다고.
4년 전 이맘쯤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이유야 복잡했지만, 단순히 정리하면 내가 일할 수 없는 부서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아침 낯선 언어들로 가득 찬 서류뭉치를 석 달 동안 바라보다, 그것이 운명이 알려준 힌트라고 결론지었다. 할 수 없는 일을 붙잡고 매일 아침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느니, 지금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거나, ‘할 수 없을지 모를지라도 생에서 한 번쯤은 하고팠던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어느 날 문득 사직서를 썼고, 나조차 실감할 수 없을 만큼 퇴사는 일사천리에 처리되었다. 그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게 남겨진 것은 석 달 치의 급여에 해당하는 퇴직금과 ‘노트북 한 대’뿐이었다. 당시 내게 석 달 치의 급여라는 것은 경제적 이익을 거둘 수 없는 동안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피신처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생활이라는 비에 젖고, 바람에 깎이고, 태풍에 날리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역시 내게 남은 것은 둔탁한 디자인의 검은 노트북 한 대 뿐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 검은 노트북을 쓰고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내 노트북을 보면 묻곤 한다. ‘무겁지 않냐’, ‘아직도 이걸 쓰냐?’, ‘잔 고장이 많지 않냐.’ 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언어로 표현하진 않지만 그 질문을 한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역시 글쟁이로 사는 건 녹록치 않군’ 하는 눈빛을 짓는다. 어째서 내가 그들의 마음까지 알 수 있냐고 묻는다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주저하거나, 하고 싶은 말을 잔뜩 담은 눈동자를 마주할 때 본인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같은 게 있다. 그것은 직면하지 않고서는 과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감성적 세계의 이해범주에 속한다. 묻지도 않은 것에 대해 일부러 나서서 답할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그저 묵묵히 글을 썼지만, 사실 그 눈빛은 틀린 것이었다.
물론 그 눈빛의 추정이 맞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내게 그 시간은 지나갔다. 다행히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새 노트북쯤은 살 수 있다. 꽤나 예전부터 바꿀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이면 이고 다니느라 땀에 젖고, 8분이면 닳아버리는 배터리 탓에 매번 어댑터를 들고 다녀야 하고, 그 때문에 남들처럼 전기코드 위치에 상관없이 아무 테이블이나 앉아서 작업할 수 없는 불편을 감수하는 이유는 이것이 내게 일종의 ‘돼지국밥’이기 때문이다.
늦깎이 사회 초년생이 되어 월급으로 산 첫 귀중품이 바로 이 검은 노트북이다. 당시 나는 취재 업무를 새로 맡게 되어 노트북을 샀다. 물론, 회사의 물품이 있었지만, 나는 온전한 내 것으로, 즉 내 손가락을 온전히 받아주는 말 그대로 ‘나만의 노트북’을 원했다. 그 후로 나는 이 노트북과 함께 에티오피아와 케냐, 네팔, 볼리비아, 베트남, 인도, 보스니아, 일본, 태국 등지를 다녔다. 이 노트북과 함께 비행한 거리만 5만 킬로미터가 넘는다. 지구 둘레가 4만 킬로미터 남짓하니, 둘이서 지구 한 바퀴를 훌쩍 넘는 거리를 함께 다닌 셈이다. 무더운 국가에서 취재를 하고 난 후, 글을 쓰다보면 자판에 땀이 떨어지기도 했고,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 나라에서는 발을 동동 구르는 심정으로 이 노트북이 살아나길 기다렸다. 세계 각국의 사진들과 그곳에서의 경험을 담은 원고들이 이 노트북 안에 저장되었고, 지워졌다. 그것들은 책으로 나오기도 했고, 내 선택에 의해 영원히 지워지기도 했다. 결국 남은 것은 이 노트북 밖에 없다. 소설가로서의 데뷔작도, 수상작도, 실패작도 모두 이 노트북 하나로 썼다. 그리고 지금 이 글도 이 노트북으로 쓰고 있다.
사실 나는 어제
<변호인>에 관한 다른 원고를 써 놓았다. 지금도 내게는 하나의 또 다른 완성본이 있다. 그런데 오늘 퇴고를 하려고 노트북을 켜는데, 켜지지 않았다. 나는 생명을 다한 나의 노트북과 두 시간 넘게 씨름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이 태국의 시골이라, 나는 아무런 방책이 없다며 단념했다. 나를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그 먼 거리를 다니며 고생해주었으니, 내가 오히려 미안한 심정이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은퇴식이 있듯이, 이 노트북에 바치는 헌사만큼은 이 노트북으로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의 등을 밀어 회사를 그만 두게 하고, 나의 손가락을 움직여 소설을 쓰게 만들었던 그 알 수 없는 힘,-만약 당신이 이 표현을 다시 한 번 허락해준다면, ‘운명’이라고 하고 싶다-즉, 그 운명이 잠시 노트북을 살아나게 했다. 정확히는 마침 옆 테이블에 앉은 손님이 내가 쓰는 컴퓨터를 판매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품을 기꺼이 빌려주었다. 나는 그가 빌려준 부품으로 언제 다시 깊은 잠에 빠질지 모르는 이 노트북에 고별사를 바치기로 했다. ‘돼지국밥’을 먹고 도망갔던 고시생이 변호사가 되어 국밥집 아들의 억울함을 위해 변호하듯, 무겁고 검은 노트북을 들고 다니던 습작생이 너로 인해 원하는 글을 맘껏 쓸 수 있었다고. 그러니까, 너는 나의 ‘돼지국밥’이었다고. 이제 다시 깨어나지 않아도, 나는 너와 함께 하는 시간동안 내 생의 색깔이 바뀌었다고. 그러니까, 정말 고마웠다고. 정말 수고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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