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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에 필요한 마스터

완전한 창조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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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제 악역이 죽을 시간이잖아’라고 느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죽어버리면, 그것대로의 묘미가 있다. 드라마에서도 ‘슬슬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질 때가 됐잖아’라고 여길 때, 숨겨진 재벌 할아버지가 나타나면 가끔은 반갑기도 하다.

오늘은 영화 <마스터>를 마스터하고 왔습니다. 헤헤. 아저씨 농담으로 시작하니, 기분이 좋네요. 그건 그렇고,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의 ‘영사기’를 돌려보겠습니다. 자, 칼럼의 품격을 위해 존대는 이만 접고, 시작.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는 내가 좋아할 만한 모든 요소를 갖춘 작품이다. 1950년의 전후 미국이라는 배경,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 65mm 카메라로 재현해낸 과거지향적인 색감, 게다가 초반부터 강력하게 다가오는 몽환적인 음악, 이것만으로도 메마른 도시남자인 나는 영화 시작 20분 만에 호감으로 촉촉이 젖었다. 게다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과 ‘에이미 애덤스’에 ‘로라 던’이라니. 이 배우들이 과거에 감독한테 책잡힌 게 있진 않을까 의심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째서 이 모두를 한 스크린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마스터메인포스터_웹용.jpg


일단,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하 ‘필립’). 우선, 그는 모두가 식스 팩과 이두ㆍ삼두근을 추구하는 획일적인 할리우드에서, 배우의 몸에 관한 패러다임을 바꾼 위인이다. 여타 배우들 신체 구석구석에 붙어있을 모든 근육을 배로 끌어 모은 듯한 그의 몸매는 가히 신선한 바람이다. 이 때문에 그의 등장만으로도 영화는 보통 영화가 아니라는 위력을 풍긴다.

    

다음은, 에이미 애덤스. 그녀는 누가 보더라도 전통적 관점의 여배우다. 이미 그녀는 <프로포즈 데이; 원제 Leap Year>에서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입증했다. 청초하고 귀여웠던 그녀가 나보다 두 살 많은 누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날, 나는 알 수 없는 정신적 공황에 빠졌고, 그 후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어쨌든 그건 내 사정이고, 전통적 관점에서 보자면 배우로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는 필립이 영화에 신선함을 제공한다면, 그녀는 ‘익숙함이 주는 안도’를 선사한다.  


그리고 로라 던. 아직도 그녀가 <광란의 사랑; 원제 Wild At Heart>에서 뿜어냈던 묘한 매력을 잊지 못한다. 


게다가, 호아킨 피닉스. 더 이상은 말이 필요 없다. 리버 피닉스의 동생이기도 한 그는 정말이지 배우가 안 됐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의 안쓰러운 재능을 가졌다. 이 영화, 즉 <마스터>가 ‘마스터피스’가 될 자격과 요건은 이토록 충분했다.

 

그러나, 나는 <마스터>를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에 ‘마스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바로 새롭지 못함 때문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모든 예술이 반드시 새로워야 하는가? 물론, 그럴 필요는 없다. 익숙함을 차용해, 오히려 익숙함이 주는 재미를 구사하는 장르영화는 새롭지 않아도 된다. 007은 당연히 미녀 스파이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위기일발의 순간에도 농담을 구사한다. 익숙함은 편안한 재미를 준다. 반면,  새로워야 한다는 중압감을 비웃듯, 익숙함을 뻔뻔하게 전면으로 내세우는 B급 영화나 소설 역시 새로울 필요가 없다. ‘어, 이제 악역이 죽을 시간이잖아’라고 느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죽어버리면, 그것대로의 묘미가 있다. 드라마에서도 ‘슬슬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질 때가 됐잖아’라고 여길 때, 숨겨진 재벌 할아버지가 나타나면 가끔은 반갑기도 하다. 문제는 이렇게 해야 재미있는 것이 있고, 이렇게 하면 의의조차 사라지는 작품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견일 뿐이지만, 나는 <마스터>가 후자에 속한다고 본다. 호감에 촉촉이 젖어 본 20분이 지나자,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모두 드러났음을 느꼈다. 끊임없이 ‘종교’와 ‘술’과 ‘여자’를 오가며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해 말하던 이 영화는 기나긴 동어반복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야기를 구성하는 사람으로서 예술영화에 기대하는 바는 비록 뻔한 주제를 다루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에이 설마 이렇게 전개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전개해버리고, ‘에이 설마 이런 대사를 쓰진 않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대사가 나와 버리면 도무지 머리를 쓰고 싶지 않아진다. 내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굳이 극장에 앉아 있는 건 아니다. 지적 통찰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 마저도 담보하지 못한 작품은 갈 길을 잃어버린다. 


나는 에이미 애덤스가 누나라는 사실을 접한 날처럼, 한동안 허탈한 기분에 글을 쓰지 못했다. 이상한 기분에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물론 이 감정은 식상함과 창조성에 대한 기준 차이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사흘을 보낸 후, 나는 겨우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다행히도 내가 영화 <마스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마스터’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온전한 새로움, 기존의 상식과 틀을 깨는 움직임을 접했다. 어느덧 몸에 소름이 돋은 나는 이들에게서 헤어날 수 없었다. 그들은 바로 다섯 요정 ‘크레용팝’이었다! 이들의 안무영상 <빠빠빠>는 충격 그 자체였다. 마치 알에서 태어난 인간처럼 기존의 모든 것을 거부한 완벽한 새로움이었다. 

 

결국, 나는 이날 과음을 했고, 그간 써둔 익숙하기 그지없는 내 소설을 모두 지워버렸다. 삭제버튼의 커서가 빠르게 움직였고, 그 자취가 남긴 것은 하얀 모니터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완전히 새로워져야 한다. 크레용 팝처럼.’



내일부터 소설을 새로 쓸 것이다.  


추신: 노파심에 말씀드리자면, ‘일베’는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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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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