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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스끼다시’는 없다

‘스끼다시’를 기대하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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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발견한 신기하고 재미있으며, 때로는 씁쓸한 일본의 단면을 공개한다! 너무 기대는 마시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라 부끄럽다.

사실 지난 회 등장한 ‘선량한 꼬치구이 집’ 아저씨에 대해 할 말이 남았다. 그날은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가 참 좋았다. 그만큼 주문도 꽤 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인터넷에 올린다며 사진도 찍고 명함도 주고받았단 말이다. 두세 시간 동안 아저씨는 약 열 번 정도 화로에 꼬치를 구웠다. 불을 새로 붙일 때마다 내 시선도 거기에 고정됐다. 이쯤이면 무언가를 기대해도 되겠지, 하는 알량한 손님의 마음을 담아. 애석하게도 ‘서비스’는 없었다. 선량하다는 타이틀을 붙이고선, 이제 와 딴말하는 건 아니다. 땅 파서 장사하는 거 아니고, 소상인에게 공짜를 기대하는 건 비열한 소비자니까.

하긴, 얼마 전 작은 카페에서 쿠키를 동전만 하게 잘라 ‘서비스’라며 내왔을 때는 황송할 정도였다. 점원은 이 과자는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했다. 그 크기에 비해 무척이나 오랫동안. ‘잘 들었어요. 여기 있는 모든 음식과 커피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만드는지 꼭 알아둘게요.’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뭐라도 더 시켜야 할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배도 부른데 롤케이크를 추가하긴 했다.) 과연 ‘가깝고도 먼 나라’의 정서다.




쉽게 진정되지 않는 일도 종종 있다

커피숍은 좋다. 음악이 있고, 천장이 높으며, 통유리로 된 창이 났다면 더더욱 사랑한다. 커피 한 잔으로 온전한 내 자리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전세 낼 수 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오후 세 시가 넘으면 동네 유일한 ‘별다방’이 가장 붐비는 시간이었다. 짐은 바닥에 내려놔야 할 정도로 빈자리가 없었다. 이른 낮부터 구석 자리를 잡고 앉아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직원 한 명이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정중하게 말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학생은 짐을 싸며 나갈 채비를 했다.

“지금 기다리시는 손님이 많습니다. 적절한 시간 동안만 이용 부탁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꽤 소심한 나는 한동안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을 접었다. 라떼 한 잔에 얼마가 적절한 시간인지를 계산하는 방정식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케이크도 시키면 30분 정도 추가가 되려나?


새로운 규칙에 쿨하게 오케이!

집에서 뭘 하려면 자꾸 늘어지기에 십상이었다. 얼마 뒤 용기를 내 다른 카페에 도전했다. 아침마다 삼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직접 커피를 볶는 곳이다. 거리에서 바라본 그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무표정. 입꼬리가 올라가거나 쳐지지 않았고, 상념에 잠기지도 않아 보였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지, 특별한 주름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얇은 은테 안경을 썼고 체구는 작으며 군살 없이 다부진 편이다. 그런 사람이 볶아 내리는 커피라면 보통 이상의 맛은 될 것 같았다. 예리한 감각으로 예민하게 맛을 냈을 테니까.

문을 열고 입장했다. 바리스타는 1층에, 좌석은 2층인 꽤 규모 있는 카페였다. 일전의 ‘별다방 혼란’을 잊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메뉴엔 이 카페에서만 선보이는 블렌드도 대여섯 가지는 됐다.


오후 1시 57분, 주문하고 노트북을 켰다. 마침 콘센트가 앞에 있어서 충전기도 꼽았다. 물론 예상했던 대로 와이파이 같은 건 없다. ‘공짜 좋아하지 말자.’ 대머리가 되지 않기 위해 나를 교육했다. 오후 2시 5분, 주문한 ‘마루야마 블렌드’가 나왔다. 역시, 맛이 좋았다. 오후 2시 57분 예민한 남자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조심스레 나에게 다가왔다.

“손님, 콘센트 사용 제한 시간은 1시간입니다. 양해 부탁 드립니다.”

타 문화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고 배웠다. 세계시민 의식을 지닌 사람이 되기 위해 그 말만 되내었다. 표정 관리가 됐는지는 모르겠다. 콘센트를 뽑고 1층의 상황을 짐작해 봤다. 과연 예민한 바리스타는 정확히 한 시간을 어떻게 알아챈 걸까.

그는 1층에서 커피를 볶고, 물을 끓이고, 커피콩을 갈아 커피를 내렸을 것이다. 콘센트에 누군가 코드를 밀어 넣으면, ‘띠딕’하고 경보가 울릴지도. 그럼 한 시간짜리 타이머를 설정할 것이다. 예민한 남자의 서랍엔 수십 개의 타이머가 일렬종대로 정리되어 있을 법하다. 어쩌면 그는 매일 그 타이머를 수건으로 닦으며 소중히 다룰 것이다.

오후 4시 57분, 남자가 다시 곁으로 왔다.

“메뉴판에 안내해 드린 대로, 테이블 이용은 세 시간입니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타이머를 사용하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래도 그는 창밖으로 보이는 날씨와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재즈 음악을 선곡한다. 혀끝에 닿은 커피 맛은 로스터를 닮아 날카롭다. 이제 ‘콘센트 한 시간, 테이블 세 시간’ 규칙도 숙지했고 동의한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 단골이 되고 싶다. 이 정도 마음 가짐이라면, 일본 생활에 쿨하게 ‘오케이’ 도장을 찍을 수 있겠다.




‘스끼다시’를 기대하지 않는 삶

횟집에 가면 주인공보다 ‘스끼다시’를 더 기대하는 게 보통의 한국인이다. 느낌대로 어원은 일본이다. 붙여 나온다는 뜻의 ‘츠키다시(突き出し)’는 주로 관서 지방에서 쓰는 말이다. 본 요리가 나오기 전에 가볍게 나오는 전채 정도가 뜻이 맞겠다. 관동 지역에서는 ‘오토오시(お通し)’라고 부른다. 단무지 한 조각 구경하기 힘든 일본 식당에선 깜짝 선물 같은 존재다. 식당마다 종류도 다르고, 매일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양배추에 간장 소스, 두부에 가츠오부시, 채소 샐러드 등이 등장한다. 성인 여자가 한 손으로 쥐면 꼭 들어올 정도의 크기다. 코스 요리를 시켰는데 ‘스키다시’를 생각하고 오토오시를 받으면 안 된다. 그 아담한 크기에 뜬금없이 고국의 횟집이 그리워질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공짜에 너무 열광하며 살아온 것 같아 후회된다.


전세 커피숍과 화려한 스끼다시가 없다고 삶이 피폐해지진 않는다. 나는 삼 개월 차 신입 이방인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왠지 모든 걸 다 안다고 오해한다. ‘치사하게 이까짓 거.’ 하면서 도망가고 싶기도, 문득 부아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그래도 사람은, 사회는, 문화는 각자 보이지 않는 규칙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 그 규칙엔 오래된 이유가 있다. 지금 느끼는 씁쓸한 첫맛도, 오래 씹다 보면 달아질 거라 믿는다.

‘생활 여행’을 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요샛말로 ‘먹방’만 찍고 있다. 생각해보면 전에도 지금도 내 생활은 온통 먹는 일에 집중돼있다. 먹고 사는 일에 어찌 이리 바쁜지…… 한 해가 넘어갔고 나이 앞자리도 바뀌었다. 21세기 초부터 오랫동안 이날을 상상했다. 뭇 여성들과 함께 동경했던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가 이런 말을 남겼다. ‘20대엔 즐기고, 30대엔 지혜로워지고, 40대엔 술을 사면 되는 거지!’ 십 년 전에 생각했던 지혜로운 삼십 대의 모습은커녕, 온통 먹고 사는 일로만 시야가 좁아진다. 좀 더 지혜롭게 먹고 살기 위해 고심할 때다. 그래야 술을 살 수 있을 테니.


*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

일본에선 1950년대부터 칼리타(Kalita), 하리오(Hario), 고노(Kono) 등의 회사를 중심으로 핸드드립 커피 도구를 개발했다. 카페는 물론 가정에서도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즐기는 게 보편적이다. 삿포로에서 맛볼 수 있는 핸드드립 카페 두 군데를 추천한다. 여러 곳이 있지만, 필자가 직접 다녀온 곳에 한정했다.

-RITARU COFFEE : 1층은 로스팅과 바리스타 공간, 좌석은 2층에 있다. 한가한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커피는 물론 음식과 디저트도 맛으로 유명하다. <주소: 北海道札幌市中央( )北3( )西26丁目3-8 / 지하철 니시28초메 역에서 도보 3분>

-MORI HIKO(森彦) : 정성을 들인 로스팅과 커피 맛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토토로가 살 것 같은 작은 목조 민가를 개조한 카페다. 오래된 소품과 나무를 주로 한 인테리어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작은 골목에 있어 지도가 꼭 필요하다. <주소: 北海道札幌市中央( )南二( )西26-2-18 / 지하철 마루야마공원 역에서 도보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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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송인희

홋카이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삿포로에서 살고 있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 일상을 여행한다.
먹고 마시는 것과 사소한 순간을 좋아하며, 종종 글자를 읽고 쓴다.
song_soo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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