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울을 국토의 남쪽으로 옮기는 수도 이전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통해 수도 이전을 막았습니다. 그때 살해 협박을 받기도 하고, 균형발전을 저해했다고 ‘오적(五賊)’의 한사람으로 몰리기도 하였습니다. 시민운동을 하면서는 시민단체의 권력화, 초법화(超法化) 현상을 경계하면서 시민운동도 법의 테두리 내에서 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 결과 개혁을 반대하는 수구 보수 세력으로, 때로는 시민운동의 분열 세력으로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그동안 헌법소원을 통해 정치권의 담합 입법과 검찰권의 남용 등에 제동을 걸었으며, 국민의 일상생활에 불편을 주거나 시대역행적인 법률과 제도를 폐지하고 고쳤습니다(부모 사망 시 자식들이 모르는 빚을 갚도록 강제하는 상속법, 제대 군인 가산점 제도, 재외동포차별법 등). 모두 제 돈을 써가면서 때로는 욕을 먹기도 하고, 때로는 제가 직접 소송 당사자가 되기도 하면서 우리 사회의 흐름을 바꾸는 데 물꼬를 텄습니다.
또한 시민운동가, 법조인, 공직자로서 우리 사회의 정치 사회적인 현안에 대해 앞날의 계산에 연연하지 않고 헌법의 원칙과 상식에 입각한 명확한 견해를 표명하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양쪽 모두로부터 불이익을 받기도 하고 ‘쓴소리꾼’으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을 하면서도 저는 그 과정에 대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밝힌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저에 대한 부당한 비판과 왜곡된 사실에 대해서도 대응한 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소신과 신념에 따라 제가 좋아서 그렇게 했던 것이지 제가 해온 것을 정치적, 정략적으로 이용하여 무엇을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일찍이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제대로 평가받고 대접받지 못한 지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기회주의와 편승(便乘)주의가 정의와 공정함을 압도하고 있는 현실이 도가 지나친 상황에서 더 이상의 침묵은 미덕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미련하게 뚜벅뚜벅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비주류가 경쟁력이 되고, 아웃사이더가 그 능력을 인정받으며, 정당한 패배자가 재기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구축되기를 희망하며 이 대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 사회를 달구었던 사건의 중심에 섰거나 그 단초를 제공했던 사람으로서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여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의무감도 한몫 거들었습니다.
이 대담집을 펴내면서 일관되게 견지하고자 했던 제 생각의 틀을 형성해 준 역사적 인물과 그의 생각이 있습니다. 바로 위대한 역사서이자 문학서인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과, 그가 《사기》를 집필하면서 견지했던 ‘불허미 불은악(不虛美 不隱惡)’의 정신입니다. 거짓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고 악을 숨기지 않는다는 뜻의 이 말은 비판은 하되 공(功)은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인간 지혜의 원천인 《사기》는 젊은 시절부터 오늘까지 제 곁을 떠나지 않은 책입니다.
사마천은 절대군주(중국 한나라 무제) 앞에서 바른말을 한 죄로 궁형(거세형)을 당하면서도 《사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집념 하나로 죽음보다 더한 치욕과 수모를 극복하면서 그의 삶의 결정체를 인류에게 남겼습니다. 저는 대담을 하면서 사마천이 천착했던 《사기》 집필의 정신을 떠올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대담 중에 언급된 사례와 관련 인사들 부분은 그분들에게는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정확한 사실관계에 근거하였음을 밝힙니다.
아울러 본서의 집필 방식은 대담 내용을 대화체 형식으로 가능한 한 그대로 살렸으며 문필 상의 윤색을 피했습니다. 때문에 제 얘기가 격정적이거나 간혹 중복된 언급도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사회에는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말을 떠들어대고 있다. 진실이 담긴 말은 듣는 사람의 가슴에 스며들어 오래 기억된다”고 인디언 수우족의 추장은 말했습니다. 또한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아이디어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정작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으면서 말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들을 떠올릴 때마다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저 자신을 곧추세우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습니다. 현금(現今)의 우리 사회는 미사여구로 포장된 말의 홍수 속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정작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언행불일치의 지도층과 지식인, 정치인들이 국민의 착시현상 속에 득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들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것을 저는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의 미래는 밝습니다. 아직도 페어플레이가 펼쳐질 무대는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간 주로 진보, 좌파 성향의 인사나 소외계층의 인물들을 인터뷰하다가 파격적(?)으로 이번 대담에 나서준 지승호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더불어 대담 내용을 멋진 책으로 만들어 준 도서출판 미래를소유한사람들의 김상호 대표와 편집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013년 가을, 서초동 사무실에서
이석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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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연은 ‘헌법 정신’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그의 헌법소원은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때가 많았다. 앞서 언급했던 행정수도 이전 헌법소원은 물론 제대군인 가산점 제도에 대한 헌법소원,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헌법소원,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헌법소원 등은 특히 한국 사회 준거의 틀을 바꾸는데 기여한 공익소송들이었다. 이석연은 여전히 사회의 눈물을 담아내지 못하는 법을 알리고 이를 고쳐야 하는 일이야 말로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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