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잼(Pearl Jam) <Lightning Bolt>
지난
<Backspacer>는 정말 훌륭한 ‘펄 잼의’ 작품이었다. 긴장감 있게 몰아치는 빠른 속도와 흥에 겨워 뛰어다니는 밴드의 에너지는 지칠 줄을 몰랐고, 1990년 대 초 얼터너티브 신을 굵직하게 장식했던 예의 하드 록 사운드가 격하게 질주했다.
<Ten>과
<Vs.>,
<Vitalogy>와 같은 초창기의 디스코그래피에 진하게 배었던 향수와 동일한 느낌을 20여년이 지난 음반에서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4년 만의 신보를 보자.
<Lightning Bolt>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속력을 일단은 한 차례 줄인 형상이다. 스타일의 변신이라기보다는 자잘한 시도 정도로 보는 편이 합당한데, 밴드 고유의 질주 본능을 약간 억누른 탓에 사실 음반 전반에는, 특히 「Getaway」 에서 시작해 「My father's son」 에 이르는 초반의 세 하드 록 트랙을 지나면서부터는 연화(軟化)된 분위기가 적잖이 흐르고 있다.
원인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지목되어야 할 요소는 바로 작곡가로서 가지는 에디 베더의 비중이다. 어림잡아 1998년의 앨범
<Yield>서부터 상당한 양의 작곡 지분을 가져가고 있고 있는 에디 베더는 팝 사운드를 뽑아내는 데 있어 의외로(?) 탁월한 면모를 보이는 송 라이터다. 영화 OST 앨범인
<Into The Wild>와 우쿨렐레 음반
<Ukulele Songs>으로 이루어진 지난 솔로 커리어를 돌이켜보면 그의 색깔은 펄 잼이라는 밴드의 고유한 색과는 어느 정도 다른, 멜로디를 주조하는 데 있어 조금 더 부드럽게 접근하는 방향을 갖고 있다. 강렬했던 전작 가운데서도 귀를 멈추게 했던 「Just breathe」 와 「Unthought known」 이 그가 단독으로 남긴 결과물이었고 멜로딕한 록 넘버 「Gonna see my friend」 역시 그의 작품이었다.
그렇기에 생각해보면, 록 사운드 너머로 팝 컬러를 담고 있는 「Lightning bolt」 나 「Swallowed whole」, 솔로 우쿨렐레 음반에서 먼저 선보였던 「Sleeping by myself」 과 같은 트랙들은 사실 결코 어색하지 않다. 물론 펄 잼의 음반이기에 가장 멋진 트랙으로는 앨범의 포문을 여는 「Getaway」 와 「Mind your manners」, 「My father's son」 의 초반 세 곡을 꺼내들어야겠지만, 에디 베더의 자작곡들은 물론, 그의 스펙트럼이 은근히 비춰지는 마이크 맥크리디 작(作)의 「Siren」 이나 스톤 고사드와 제프 아멘트의 「Pendulum」 도 응당 고려하고 넘길 필요가 있다. 게다가 사실, 곡들 또한 충분히 좋다. 펄 잼의 사운드가 일부 가려져있다고 해서 이 노래들에, 그리고 앨범 전체에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 팝 사운드가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Lightning bolt」 나 느긋한 템포 속에서도 강하게 울림을 가져가는 「Siren」 과 같은 곡들은 도외로 두고 넘기기엔 실로 아쉬운 곡들이다.
결국 신보는 무게추를 어디에 두냐에 따라서 견해가 나뉠 작품이다. 전작
<Backspacer>를 기점으로 초기의 사운드를 기대했던 사람들이라면 불만이 잡힐 공산이 크다. 처음 서너 트랙 만에 강성의 맥락이 끊겨버리니 앨범에 쉽게 마음을 줄 수 있을까. 이와 반대로 긴 연대기에서 어느 정도 보이는 시도들에 관대한 사람들이라면
<Lightning Bolt>는 충분히 좋은 결과물로서 남을 수 있는 앨범이다. 그러나 그 어떠한 외형의 논의보다도 먼저 두어야 할 것은 20년간 이들이 지켜온 애티튜드다. 에디 베더의 스타일이 언뜻 드러나고 있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가져가고 있는 중점은 펄 잼의 로큰롤이다. 펄 잼이라는 이름을 걸었을 때만큼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활력적이고 힘 있게 사운드를 끌고 가는 이들이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그 어떤 색깔이 끼어든다 해도 펄 잼은 여전하다. 템포에 상관없이 깊은 울림을 가져가는 에디 베더의 보컬도 여전하고, 탄탄하게 사운드를 쌓아 올리는 스톤 고사드와 마이크 맥크리디의 기타 연주도, 쏟아질 듯한 제프 아멘트의 베이스 라인도 여전하다. 여기에 사회에 목소리를 던지려는 태도도, 자성의 메아리를 울리려는 자세도 그대로니
<Lightning Bolt>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는 그 밴드 펄 잼이 맞다. 그래서일까. 객관적이어야 할 시각 너머로 한 부분 맹점이 잡힌다. 얼터너티브 록이 일찌감치 소비성을 잃은 상황에서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들만의 문법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려 한다. 트렌드를 좇지 않는, 어떻게 보면 시대 반역적이라고도 할 수 있건만 밴드가 가진 거친 매력은 이 부분에 있지 않았던가. 이번 음반 역시 같은 흐름 위에 존재한다.
글/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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