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3월 대상 - 뭐라도 되겠지
내게 위로가 된 한마디
대단한 무엇도 아니지만, 사소한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고 약속하지 않는 희망이라니! 반드시 무엇이 되어야만 불안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 이 무딘 한 마디가 흠집을 냈다. (2021.03.03)
주말부부로 지내던 지난해, 집으로 오던 남편의 차가 빗길에 미끄러져 고속도로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응급실로 달려가 보니 거지꼴을 한 채 혼이 반쯤 빠져나간 남편이 있었다. 한적한 도로였기에 다행히 사람은 무사했으나 차는 폐차됐다. 아찔함에 눈을 감는 순간, 왈칵, 꼭꼭 닫아놨던 마음의 댐이 무너졌다.
그때의 나는 완전히 지쳐있었다. 결혼 전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경력을 쌓기 위해 홀로 버티며 탈진한 상태였다. 어쩌다 사고를 당해 입원이라도 하면 좀 쉴 수 있을까 생각하곤 했는데, 그 일이 정말 일어나고 만 것이다. 내가 아닌 남편에게. 오래 고민하지 않고 사직서를 썼다. 수일 만에 남편의 직장이 있는 도시로 이사하고 살림을 합쳤다.
드디어 직장을 떠났다는 시원함도 잠시, 불안이 마음을 뒤덮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금만 쉬고 다른 직장을 구하려던 계획은 코로나 시국과 함께 무기한 연기되었다. 재취업의 기회조차 없는 막막함, 충동적으로 도망쳐 버린 것 아닌가 하는 후회가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하루가 길었다. 괴로울 땐 잠이나 폭식으로 회피했다. 아침에 나가는 남편을 보고 다시 누웠다가 퇴근 시간에 몸을 일으키는 날들이 이어졌다. 쉴 자격이 있다고 위로하는 남편의 말에도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나는 자리에서 쉬이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한 계절을 보냈다.
그러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날, SNS에 누군가 공유한 ‘니트 컴퍼니’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포근한 윗도리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었다. 무업(無業)의 기간을 보내고 있는 청년들이 랜선으로 모인 ‘인터넷 백수 회사’였다. 그들은 계단 오르기, 만 보 걷기, 필사하기 같은 소소한 일과를 각자 정해서 하고 다른 사원들에게 인증한다. 그러면 칭찬과 격려의 말이 쏟아진다. 무력감, 고립감으로 정체된 삶이 아니라 성취감과 소속감으로 그들은 조금씩 함께 전진하고 있었다.
‘뭐야, 여기 내가 가야 하는 회사잖아?’ 마치 나를 위한 회사인 것 같아 반가웠다. 그런데 공동대표들의 인터뷰를 읽다 사훈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나는 그만 깔깔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거창한 격언도, 힘찬 응원도 아닌 고작 여섯 글자의 귀여운 사훈이 마음에 쏙 들어온 것이다. 사훈은 ‘뭐라도 되겠지’
대단한 무엇도 아니지만, 사소한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고 약속하지 않는 희망이라니! 반드시 무엇이 되어야만 불안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 이 무딘 한 마디가 흠집을 냈다. 맞다. 무엇이 된다 해도 인간은 늘 불안한 존재다. 불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이 잠시 힘을 잃은 느낌이었다. 왠지 뒤에 ‘아님 말고’가 생략된 것 같은, 이 공기보다도 가벼운 말이 나를 위로할 줄이야.
‘불안과 함께 뭐라도 해본다면 제자리걸음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전진은 못 해도 보는 방향이라도 바뀌겠지. 그럼 적어도 ‘조금 다른 곳을 보는 사람’이라도 되겠지, 아님 말고!’ 나는 지나친 희망으로 내 마음을 갉아먹지 않는 이 무해한 말에 기대어 보기로 했다.
나도 나름의 일과를 정했다. 아침에 이불 정리하기. 5분 스트레칭하기. 점심 챙겨 먹기. 오후에는 무엇이든지 읽고 쓰기. 되도록 저녁은 남편과 함께 먹기. 이 일과를 수행하며 기회를 기다리기.
그렇게 100일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역시 대단한 무엇이 되지는 못한 것 같다. 여전히 어딘가로 회피하고 싶은 날도 있다. 그러나 어떤 날은 이불을 반듯이 개어 놓는 것을 시작으로 모든 일과를 충실히 수행하는 날도 있다. 이렇게 산다고 뭐가 달라지나,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여섯 글자가 두둥실 떠올랐다. ‘뭐라도 되겠지!’ 그러면 일과를 잘 수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내 삶을 잘 가꾸어 나가고 싶다는 건강한 욕심일지도 몰랐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직의 기간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생활자로 살아가면서. 제자리만 걷는 삶일지라도 그거면 됐다고, ‘무엇이라도 될 수 있을지 모르는’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고, 그렇게 나를 토닥이며 재우는 하루가 저문다.
김령은 ‘ 이 일을 꼭 글로 써야지’ 하는 잔잔한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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