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2월 우수상 - 나의 두 번째 스무 살을 시작합니다
2021년 나에게 하는 약속
나는 특별한 2020년을 선물 받은 거라고 말이다. ‘진짜 스무 살은 지금부터야’, 나는 스스로와 약속했다. (2021.02.04)
딱 1년 전 이맘때쯤, 나는 대한민국의 고3의 신분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이 시험에 투자했건만 시험은 생각보다 단조롭게 흘러갔고 그렇게 나의 수험생활은 막을 내렸다. 후회나 미련은 없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기에 오늘부터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하리라 다짐했다.
수능이 끝난 이후 고3의 행동패턴은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 먼저 제일 첫 번째로 하는 행동은 밀린 영화나 드라마를 밤새도록 보는 거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평소 보고 싶었던 멜로드라마를 실컷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학업에 찌들었던 내 모든 연애세포들이 깨어나는 걸 느낀다. 두 주인공이 서로의 사랑을 속삭일 때는 정말이지 마음속으로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드라마, 영화를 섭렵하고 나면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간다. 지금까지 귤껍질과 함께 쌓아왔던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가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마냥 나의 상상력을 총동원해 아주 비현실적인 소설 한 편을 머릿속으로 쓰기 시작한다. 주 분야는 캠퍼스 라이프. 새내기가 될 나에게 이런 상상들은 대학생활에 대한 나의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린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교실에서는 저마다 들뜬 목소리로 자신들의 대학생 생활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운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1월 1일이 지나서 시작된다. 바로 풍류를 즐기는 것. 한 해의 마지막 날 11시 59분, 새해 1분 전, 나는 성인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나의 사진과 지문이 담긴 나의 첫 주민등록증을 손에 들고 새로운 해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1월 1일 00시 00분, 나와 친구들은 저마다 잔에 술을 한가득 채우고 다함께 외친다.
“얘들아, 20살 축하해!”
대부분의 19살들은 이러한 3단계 행동패턴을 거쳐 어른이 되었고, 대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20살은 ‘보편적’이지 않았다. 새해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꿈꿔오던 20살의 일상들은 정말 꿈으로만 남겨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벚꽃이 휘날리던 어느 봄날 푸릇푸릇한 잔디 위에 돗자리를 펴고 동기들끼리 앉아서 즐기는 맥주 한 잔도, 학교 도서관 책상 위에 놓인 캔 커피와 수줍은 쪽지 하나를 마주하는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두 달 후면 끝나겠지. 이런 것도 나중에 지나면 다 추억이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달이 세 달이 되었고, 육 개월이 되었고, 일 년이 되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취소되었고, 새내기의 로망 MT도 취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학교 수업은 온라인으로 전환되었으며, 대학교 축제 역시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나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았다. 나는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세상을 비난하기에 바빴다.
‘나의 20살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건가?’
‘아직 학교도 제대로 못 가봤고, 여행도 못 갔는데?’
‘왜 하필 더없이 소중한 시기에 이런 안 좋은 일들이 생기는 걸까?’
20살이 되면 하고 싶은 게 수도 없이 많았는데.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조심하게 되는 현실이 미웠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꿨다. 나쁜 쪽보다는 좋은 쪽을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매일 밤 침대에 누워 나 자신을 응원하고, 또 세상을 응원했다.
‘자유롭게 밖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야.’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져. 매순간 후회 없이 보내도록 노력해야지.’
‘지금 이 시간까지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의료진분들 정말 존경스러워.’
나는 생각한다. 2020년은 나의 스무 살을 알차고 후회 없이 보내기 위한 맛보기일 뿐이라고. 앞으로 내가 수많은 언덕을 오르고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하고 씩씩하게 이겨낼 수 있도록, 힘든 순간이 다가와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나는 특별한 2020년을 선물 받은 거라고 말이다. ‘진짜 스무 살은 지금부터야’, 나는 스스로와 약속했다. 2021년 새해를 맞이하며 이렇게 외칠 것이다.
“자, 이제 나의 두 번째 스무 살을 즐겨보자!”
정도겸 아직은 모든 게 낯설고 서툰, 새내기 어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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