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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의 가끔은 좋은 일도 있다]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

<월간 채널예스> 202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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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각자 살게 되고 엄마는 요리를 접었다. 만나면 주로 외식을 했다. 긴 시간을 그렇게 지내다 최근 들어 자신이 한 밥을 꼭 먹고 가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2021.03.03)


나는 요리를 잘한다. 이렇게 쓰면 에이, 뭐야 증거를 대봐요, 라고 누군가 말할지도 모르겠다. 제가 만드는 가자미 뫼니에르를 한번 먹어보고 말씀하세요. 아주 부드럽고 고소하고 특히 껍질 부분이 끝내준답니다? … 그런 수준은 전혀 아니고, 그냥 먹고 싶은 요리를 별 힘들이지 않고 만들 수 있고 그게 나와 친구들 입에 맛있을 정도다. 메뉴는 묵은지 김치찜 뭐 이런 것. 이 정도도 잘하는 거라고 넘어가 주세요. 

나의 이 별것 아니지만 생활에 유용한 능력은 큰 노력 없이 얻어졌는데 그것은 순전히 요리 명인 김달막 할머니와 그의 딸 구정숙 여사와 또 그의 딸로 태어난 덕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집안에서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중간은 하게 되는 그런 개념에 가깝다. 90세가 넘은 나의 할머니는 지금도 국수를 삶아 달라고 하면 아침부터 8가지 고명을 만들고 엄청난 육수를 우려 국수를 말아준다. 그걸 보고 자란 엄마는 4개의 고명과 적당한 육수로 타협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맛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어떻냐고? 잔치국수를 만들지 않는다. 너무 번거롭기 때문이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되는 동안 많은 생활에 변화가 있었지만, 오후 5시쯤에는 식탁에 앉아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를 보았던 것 같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했다. 재미있었다. 어떻게 저 재료가 저런 요리가 되지. 어떻게 저렇게 군더더기 없이 움직이면서 재료를 썰고 뭔가를 끓이고 굽고 무치고 양념하면서 한꺼번에 여러가지 요리를 만들어내지. 소리와 냄새도 흥미진진했다. 탁탁탁 썰고 지글지글 굽고 보글보글 끓이고 마무리는 압력솥의 치익 소리와 향기로운 밥 냄새. 매일 그 과정을 되풀이해야 하는 엄마는 괴로웠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속도 모르고 그저 좋아했다. 심지어 보고 배운 게 많아져서 나중에는 너무 오래 끓였다는 둥, 간이 싱겁다는 둥 온갖 잔소리를 해댔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엄마. 

어른이 되어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먹고 싶은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긴 준비 시간에 비해 식사 시간은 너무도 짧다는 허무함과, 고작 한두가지 요리에 이렇게 설거지거리가 많이 나오고 부엌이 엉망이 된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걸 엄마는 매 끼니 했다고? 식재료 재고 관리도 고난이도였다. 두부찌개를 하려고 재료를 갖춰 두면 갑자기 떡볶이를 시키고 싶어졌고,(그리고 두부는 굉장한 속도로 상해버렸고 치울 때의 냄새는 끔찍했으며) 양배추를 한 통 사서 조금 잘라 볶아 먹고 나면 한동안 양배추 요리는 생각하기 싫어졌다. 그러다 문득 냉장고를 열어보면 폐허였다. 엄마가 부리던 마법의 이면에 무엇이 있었는지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보통은 그냥 사 먹고, 근처에서 팔지 않는 메뉴만 가끔 만들어 먹는다. 철저하게 내가 내킬 때,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만든다. 요즘 자주 만드는 요리는 굴과 베이비 아스파라거스를 넣은 오일 파스타다. 굴이 제철인 데다 가격이 싸서 이번 겨울 자주 먹고 있다. 굴 맛을 진하게 느끼고 싶을 때는 맛이 안에 잘 갇히도록 적절한 온도에 구워서 파스타에 넣고, 면에 굴의 맛과 향이 잘 배길 바랄 때는 일부러 조금 낮은 온도에서 익혀 굴 즙이 빠져나오게 한다. 베이비 아스파라거스는 줄기가 연하고 맛이 가벼워서 좋아한다. 파스타 면은 익히는 시간이 8분짜리인 게 좋다. 하지만 시중에 있는 면은 대부분 9분의 약간 통통한 면이라 8분짜리 면이 보일 때마다 많이 사둔다. 한국인답게 다진 마늘은 처음부터 듬뿍 저온에서 익히고 마지막엔 연두를 살짝 두른다. 맛있으니 여러분도 해보셔요. 

가족들이 각자 살게 되고 엄마는 요리를 접었다. 만나면 주로 외식을 했다. 긴 시간을 그렇게 지내다 최근 들어 자신이 한 밥을 꼭 먹고 가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릴 때 좋아했던 메뉴를 만들어 놓고, 자신의 실력이 여전한 지, 무뎌지진 않았는지, 내가 맛있게 먹고 있는지 식탁 맞은편에 앉아 내 표정을 유심히 본다. 그리고 맛있다고 말을 하면 그제야 안심을 한다. 나는 어른이 되어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는 둥 글을 종종 쓰곤 하는데 사실은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엄마의 저런 마음 같은 것. 

나도 어리고 엄마도 어렸을 때다. 어느 햇살 좋던 오후, 엄마가 꽃게탕을 만들어주겠다고 살아있는 게를 사 왔다. 게를 손질하려고 하는데 게들이 너무 팔팔해서 도망을 갔다. 탈출한 게가 바닥에 내려가서 걸어 다녔다. 엄마는 많이 당황한 것 같았다. 식칼을 한 손에 들었다 내려놓았다가, 게를 잡으려고 하다 집게발이 무서워 피했다가, 그래도 엄마는 결국 해냈다. 끝내주는 꽃게탕을 끓여냈다. 경상도 스타일의, 된장 국물이 아주 구수하고 그 국물이 스며든 두부가 엄청나게 맛있고, 푹 익혀진 애호박이 끝내주던 꽃게탕. 입이 짧던 나는 그날은 밥을 싹 비웠다. 

타인을 위해 요리하는 인생에 대해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나의 요리와 엄마의 요리는 다른 행위인 것 같다. 그렇다고 엄마의 요리는 숭고하고, 나의 것은 어딘가 비어있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냥 그런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 당황한 어린 엄마와 급박하게 걸어다니던 꽃게와 부엌 창문 너머로 들어오던 늦은 오후의 햇살과 다시 없을 꽃게탕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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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오지은(작가,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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