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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의 빛 : 사랑으로 재어보면 어때요?
떠난 이가 남기고 간 사랑을 우리의 삶 속에서 살려내어 이어가는 것에 대하여
2019년 4월 8일, 한국의 소셜미디어는 살아 있었다면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었을 종현의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로 다시 한번 넘실거린다. (2019. 04. 08)
뮤지컬 <렌트>를 대표하는 곡 ‘Seasons of Love’는, 듣는 이를 향해 1년을 어떤 단위로 재면 좋겠냐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겐 ‘날짜’나 ‘개월’처럼 시간을 재는 분명한 단위가 있지만, 그때그때 느낀 환희와 절망은 그런 단위로 가늠할 수 없다는 걸 조나단 라슨은 잘 알고 있었다. 어떤 기쁨은 쏜살같이 지나가는 반면, 어떤 슬픔은 영원처럼 느껴지지 않던가. “그녀가 배운 진실로 잴까요, 아니면 그가 울었던 시간으로 잴까요. 그가 불사르고 돌아온 미련으로, 혹은 그녀가 죽은 방식으로 재면 좋을까요 (In truth that she learns, or in times that he cried. In bridges he burned, or the way that she dies)?” 무대 위에서 저마다의 상실과 고통을 노래하던 솔로이스트들은 입을 모아 합창한다. “사랑으로 재어보면 어때요(How about love? Measure in love)?” 떠나간 이들을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는 방법은, 그들이 이제 곁에 없다는 사실을 곱씹으며 비탄에 잠기는 대신, 그들과 나누었던 사랑을 오래 추억하는 것이다.
종현을 잃은 이들이 몇몇 언론들이 우려했던 ‘베르테르 효과’ 따위에 휘말리는 대신 그가 남기고 간 사랑을 오래 이어가려 노력하는 것 또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종현의 팬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 성소수자 이슈에 지지와 연대의 의사를 표했던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 기부금을 보냈다. 이틀 동안 전 세계 173명의 팬들이 종현의 이름으로 4,000달러 이상의 후원금을 보낸 것이다. 4개월 뒤 종현의 생일이 돌아오자, 다시 전 세계에서 150명이 넘는 팬들이 8,000달러 이상의 기부금을 ‘띵동’에 보냈다. 종현의 유작앨범 <POET/ARTIST>의 수익금은 예술계 종사자들의 심리상담 및 치유, 긴급 생계비 지원과 활동 지원을 목표로 설립된 재단 ‘빛이나’의 씨앗이 되었다. 남아있는 이들은 슬픔에 잠겨 무력해지는 게 아니라, 종현이 남긴 빛을 삶 속에서 이어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복잡다단했던 감정들을, 슬픔 대신 “사랑으로 재어” 온 나날들이었다.
2019년 4월 8일, 한국의 소셜미디어는 살아 있었다면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었을 종현의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로 다시 한번 넘실거린다. 물론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아픔이 저절로 사라지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해시태그로 ‘서른 번째 봄’이라 말한다 해도, 그가 서른을 맞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웃으며 종현의 생일을 축하하는 건, 그가 남기고 간 사랑과 뜻만큼은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살려내어 이어갈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리라. 그렇게 남은 이들이 그의 뜻을 이어갈 때, 그가 유작앨범의 타이틀 곡 ‘빛이나’에서 건넨 약속 “Always be with you” 또한 진실이 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조심스레 말해본다. 생일 축하해요, 종현씨.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