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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비백산, 아이가 처음 아팠다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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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모색하는 일은 아마도, 아이를 향해 기울어진 상태를 받아들이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2019. 0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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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기 전,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다 내려놓고 그저 옆에 눕고 싶다. 쌕쌕거리는 숨소리와 꼼지락거리는 손가락, 달콤한 아기냄새에 폭 빠지고 싶다. 빈 손에 조용히 손가락 하나를 밀어 넣어보면 아이는 무의식 중에 살며시 감싸쥔다. 따뜻하고 보드랍다. 이 친밀한 감각을 오래 느끼고 싶다.

 

문을 나서면 출근모드로 즉각 전환된다. 예상 도착 시간을 가늠해보고 오늘 할 일들을 떠올려 본다. 어제 읽던 책을 이어 읽으며 걷는다. 모드 전환은 대개 수월하고 자연스러워서 첫 모퉁이를 돌기 전에 완전히 책에 빠진다. 동네 골목엔 아직 차들이 빼곡하게 서 있다. 부산해지기 직전의 고요가 싱그러워 이른 출근도 전혀 불만스럽지 않다. 아이와 있을 땐 곁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지만 정작 떨어지면 나름의 만족감을 느낀다.

 

그래도 예외는 있으니. 아이가 아픈 날은 정말 발걸음이 무겁다. 마음이 계속 아이를 향한다. 하루가 여느 날 같지 않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이가 처음 아팠던 날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아픈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기분은 고군분투할 아이와 아내를 배신하는 것만 같았다. 계획했던 일들도 결코 계획대로 처리되지 않고 종일 엉망이었다.

 

이제 내 하루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나의 계획이 아니라 아이의 컨디션이겠구나 생각했다. 아이가 아프니 일상은 비상이 되었다. 큰 병에 걸린 것도 아니니 호들갑이긴 한데, 그 호들갑스런 상태가 내 마음의 정확한 상태였다. 나는 평소 같을 수 없었다.

 

많은 아기들처럼 지안이도 첫 돌까지는 아프지 않았다. 14개월이 되었을 때 처음 열감기에 걸렸다. 아이를 안았을 때 평소보다 따뜻하단 느낌이 들어 열을 재보니 38.5도였다. 고열이라면 고열.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다들 한 번씩 한다는 돌치레가 찾아왔네 하는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도 평범한 열감기라고, 편도가 부어 열이 더 나는 거라고 간단히 설명하며 약을 처방했다. 경과를 보기 위해 하루치 약만 처방 받았다.

 

약은 잘 듣지 않았다. 해열제가 포함되었으니 열이 떨어지긴 했지만 정상 체온까지 떨어지진 않았고 두 시간 뒤면 다시 올랐다. 일주일 정도는 열이 가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본 터라, 과연 그렇구나 싶었다. 다음날 다시 병원에 갔다.

 

이번엔 다른 종류의 해열제가 추가 되었다.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두 종의 해열제를 교차로 먹이라 했다. 두 시간 간격을 꼭 지키면서. 간격이 더 짧으면 간에 무리가 간다고 했다. 하루에 복용할 수 있는 해열제 용량도 정해져 있으니 허용치 이상은 먹이지 말라는 설명도 들었다. 우리는 그대로 이행했고 아이는 체온의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점점 지쳐갔다. 여전히 열은 잡히지 않았다.

 

급기야 40도를 넘어섰다. 40.5라는 숫자를 체온계에서 처음 봤다. 한 종의 해열제는 지안이의 열을 거의 낮춰주지 못했다. 다음 해열제를 먹이려면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열이 40도에 가까운 아이를 두 시간 동안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물수건으로라도 몸을 닦아주려 했지만 아이는 완강히 거부했다.

 

다른 한 종의 해열제는 지안이의 체온을 너무 낮은 곳까지 끌어내렸다. 저체온을 불렀다. 열이 오를수록 지안이는 축 처졌고, 내릴수록 힘겨운 울음을 터뜨렸다. 한 시간을 꼬박 울곤 했다. 비명 같은 울음이었다. 울음의 곁에서 무력하게 바라보는 게, 아이의 고통이 내게 체감되지 않는다는 것이 힘들었다. 나 역시 고통스러웠지만 아이의 고통과는 다른 것이었다.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아내는 다른 여러 병원에 지안이를 데려가 봤지만 진단과 처방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열과 저체온 사이에서 아내와 나는 갈팡질팡 전전긍긍 했다. 결국 사흘째 밤엔 체온이 너무 떨어져 응급실로 달려가야 했다. 체온계의 숫자는 34.7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행히 대학병원 두 곳이 집 근처에 있다. 택시를 잡아 타고 소아응급실을 갖춘 병원으로 향했다. 10분 만에 잘 도착했고, 접수 과정도 길지 않았다. 보호자는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아내가 지안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대기하는 곳에서 안절부절 서 있는데 응급실의 자동문이 열렸다 닫힐 때마다 지안이의 울음이 커졌다 작아졌다.

 

대학병원의 진단과 처방도 다르지 않았다. 평범한 열감기였다. 실제 체온도 34.7도는 아닐 거라고 했다. 정말 그 체온이면 아이가 정신을 잃었을 거라고. 체온계의 체온과 중심 체온은 다를 수 있고, 어쩌면 우리가 잘못 쟀을 수도 있다고 했다. 어쨌든 해열제의 작용으로 체온이 많이 낮아진 건 사실이었고 아이가 많이 지친 것도 사실이었다. 열의 원인을 빨리 잡을 필요가 있어서 의사는 수액을 처방해주었다. 해열제의 반복에서 벗어나는 길이었다.

 

아이가 맞는 수액의 양은 어른이 맞는 양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다만 투약 속도가 훨씬 느렸다. 나라면 두 시간 정도 맞았을 수액을 일곱 시간 동안 맞았다. 병원에 도착한 게 밤 열 한 시. 수액을 맞기 시작한 건 밤 열 두 시였다.

 

수액은 당연히 침대에 누워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입원 환자가 아니라 병실을 배정받을 수 없었고, 응급실 침대는 이미 만석이었다. 응급실 옆 복도 양편의 길고 딱딱한 의자에 먼저 누워 있는 부모와 아이들이 있었다. 바늘을 꽂느라 한바탕 울어댄 지안이를 달래기 위해 나는 아기띠로 지안이를 안고 빈 의자로 향했다.

 

지안이는 훌쩍 거리며 어느새 잠이 든 상태였다. 의자에 눕히면 아이가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가져온 유모차를 평평하게 젖혀서 아이를 눕히려 했다. 하지만 눕히려 하면 깨고, 눕히려 하면 울었다. 아이는 아팠고 놀랐고 아빠에게 꼭 붙어 있으려 했다. 그렇게 아이를 안고 서 있다가 새벽 다섯 시에야 겨우 유모차에 눕혔다. 수액을 다 맞은 일곱 시까지 아내와 나도 복도 의자에 누워 눈을 좀 붙였고, 병원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왔다. 지안이는 집으로 오는 내내 잠을 잤고 숨소리는 안정되어 있었다. 이불을 펴서 아내와 아이를 눕히고, 나는 씻고 출근을 했다.

 

응급실에 다녀온 후 지안이는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삼일 지나서는 예전의 지안이로 거의 돌아왔다. 고통이 진하게 배어있던 울음이 확실히 사라졌다. 체온이 유지되고, 밥과 물도 잘 먹고, 무엇보다 다시 웃고, 원래 놀던 패턴대로 놀이를 즐겼다. 다만 얼굴과 몸에 열꽃이 피었고, 기침을 조금 하고, 통통했던 볼살이 사라졌다. 그래도 웃음은 여전히 밝고 예쁘고 귀여웠다. 한없이 예뻤다. 며칠 밤낮으로 고생해 수척해진 아내와 퇴근 후에만 고생해 그저 피로할 뿐인 내가, 그 웃음을 바라보며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고작 감기로 롤러코스터를 탄 우리는 영락없는 초보 부모였다. 아이 손과 발에 남아있는 주사바늘 자국들, 그 자국들을 보면 또 마음이 아려와 이미 쉴 새 없이 웃는 지안이를 더 웃게 해주려고 아내와 나는 웃기기 경쟁을 계속 이어갔다. 다 끝났는데도 마음이 덜 가라앉아 여전히 놀란 채로 며칠을 보내야 했다. 이 모든 게 우리의 경험이 부족해서였을 것이라고, 점차 이런 일에도 익숙하고 능숙해질 거야 서로 토닥였다.

 

아이는 이제 삼십 개월을 훌쩍 지났다. 자라면서 여러 차례 고열을 겪었다. 경험이 쌓이니 우리의 대응도 늘어서 이젠 처음 같지 않다. 하지만 첫 경험이 나름 호되었던 탓인지 콧물만 흘려도 늘 긴장이 된다. 열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경험은 익숙함과 능숙함을 가져다 주긴 했지만 평정은 가져다 주지 못했다. 아이는 앞으로도 몇 번이고 아플 테지만, 나는 더 능숙해지겠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결코 편안하지는 못할 것 같다. 경험이 더 더 쌓이면 다를 수 있을까. 글쎄, 부모란 결코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 같다고, 지금의 나는 느끼고 있다.

 

아이를 처음 낳고 나서는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백일이 지나면 돌이 지나면 육아에 적응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그럴 시간이 열릴 거라고 기대했다. ‘부모로서의 삶’과 ‘부모가 아닌 나의 삶’을 병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아이가 백일을 지나고 돌을 지나고 두 돌을 지나면서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부모로서의 삶’과 ‘부모 아닌 삶’의 병행에 대한 생각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생각도 자주 든다. ‘부모’라는 이름과 ‘나’라는 이름을 나란히 놓고, 아무리 둘의 균형을 평행하게 유지하려 해도, 결국엔 ‘부모’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어쩌면 이 둘의 균형은 조금 기울어진 상태를 일컫는 것 같다는 생각을.

 

내 삶을 모색하는 일은 아마도, 아이를 향해 기울어진 상태를 받아들이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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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성광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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