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살인마가 현실에 나타났다 – 뮤지컬 <더 픽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과 마주한 두 남자의 이야기
뮤지컬 <더 픽션>은 거짓과 진실, 선과 악, 픽션과 논픽션의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을 향해 묻는다. ‘우리는 소설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가’ (2018. 03. 16)
소설 속 살인마, 현실에 등장하다
1932년의 뉴욕, 작가 그레이 헌트가 세상을 떠난다. 그가 신문에 연재 중이던 소설 ‘그림자 없는 남자’ 역시 막을 내린다. 어쩌면, 사건의 선후 관계는 뒤바뀐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의 마지막 회에서 작가의 죽음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림자 없는 남자’의 연재를 담당했던 신문기자 와이트 히스만은 그레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 생각한다. 절망에 빠진 와이트의 앞에 형사 휴 대커가 나타난다. 그는 그레이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며 소설 ‘그림자 없는 남자’가 목격자라 말한다.
2년 전, 그레이와 와이트는 처음 만났다. 어린 시절 그레이의 소설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와이트는 작가를 찾아와 연재를 제안한다. 이미 10년 전 출간되었으나 빛을 보지 못한 소설 ‘그림자 없는 남자’를 신문에 싣고 싶다는 것. 두 사람은 작가와 편집자로서 함께 소설을 다듬어 나간다. 연재가 시작되자 열띤 반응이 이어졌다. 소설의 주인공, 범죄자를 죽이는 살인마 ‘블랙’이 대중의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뒤이어 ‘그림자 없는 남자’에 대한 작품성 논란이 일었고 급기야 연재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상한 점은, 그때부터 연쇄 살인이 시작됐다는 사실이었다. 범죄의 대상과 방법이 소설 속 ‘블랙’과 일치했다. 자연스레 ‘그림자 없는 남자’가 화제로 떠올랐고, 그레이와 와이트는 연재를 재개한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일지 모른다고, 와이트는 생각했다. 계속해서 모방 범죄가 이어지자 그레이는 불안함을 느낀다.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비집고 들어온다. 사건을 수사하던 휴 형사는 현장에 떨어진 신분증에 주목한다. 피해자의 것이 아닌 누군가의 신분증. 그 역시 소설 ‘그림자 없는 남자’, 그레이와 와이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어디까지 픽션이고 어디부터 논픽션인가
‘소설 속 살인마가 현실에 나타났다’는 설정에서 시작되는 뮤지컬 <더 픽션> 은 거짓과 진실, 선과 악, 픽션과 논픽션의 흐릿한 경계를 더듬는 작품이다.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창의인재동반사업의 일환으로 마련한 창작지원프로젝트 ‘데뷔를 대비하라’를 통해 첫 선을 보였다. 이후 ‘제11회 DIMF(대구국제뮤직페스티벌)’에서 창작지원작으로 선정됐고, 2년 동안 꾸준히 작품 개발을 이어왔다. 지난해에는 46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상상 스테이지 챌린지’의 선정작으로 결정됐다. ‘상상 스테이지 챌린지’는 상상마당의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며 KT&G가 시작한 창작극 지원 사업이다.
오랜 개발 과정을 거치며 완성도를 높인 <더 픽션> 의 본 공연은 지난 9일.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시작됐다. 작품의 초기 단계부터 함께 했던 배우 김태훈과 강찬은 각각 그레이 헌트, 와이트 히스만 역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새로운 배우들도 대거 합류했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1446>, <라흐마니노프>의 박유덕과 연극 <밀레니엄 소년단>, 뮤지컬 <배니싱>의 주민진이 그레이를 연기한다.
와이트 역에는 유승현과 박정원이 캐스팅됐다. 유승현은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 <빈센트 반 고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통해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다. 박정원은 뮤지컬 <1446>, <찌질의 역사>를 통해 관객과 만난 바 있다. 이번 작품에서 스토리텔러로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인물인 형사 휴 대커는 박준과 임준혁이 맡아 연기한다.
하나의 소설을 사랑했던 두 남자, 그레이와 와이트. 그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은 관객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가. 어디까지 픽션이고 어디부터 논픽션인가. 이에 대한 <더 픽션> 의 대답은 공연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은 4월 21일까지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상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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