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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

부모는 사회의 전령인 동시에 아이의 보호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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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부모 자신의 삶을 잘 세워간다는 것이 단순히 습관이나 버릇을 바르게 하고 아이에게 따뜻한 부모가 되는 것을 초과한다는 점이다. 아이는 부모를 통과해 결국 세상으로 나아간다. (2017.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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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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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만 20개월을 앞두고 있다. 아이와의 관계에 자신감이 제법 쌓였지만 어떻게 길러야 할 지는 갈수록 어렵다. 틈틈이 육아서를 읽으며 도움을 얻으려 했다. 훈육의 원칙이나 상황대처에 대한 팁을 꽤 얻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나누고픈 가치관이랄까, 부모로서 아이에게 어떤 롤모델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어려웠다. 내 시선을 빼앗은 책은 다소 뜬금없다. 박노자의 『러시아 혁명사 강의』다.

 

“어린 시절 트로츠키는 소작료를 내지 못한 소작농을 질책하는 아버지를 목격합니다. 아버지는 고소를 하겠다고 협박했고, 농민은 아버지 앞에서 떨고 있었지요. 이를 목격한 트로츠키는, 자신에게 따뜻했던 아버지가 소작농에게는 얼마나 가혹한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그날 이후 아버지가 왜 그렇게 가혹한 사람인지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고, 결국 트로츠키는 아버지가 가혹한 게 아니라 체제가 아버지를 가혹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체제의 논리를 이해하게 된 것이지요.” - 박노자, 『러시아 혁명사 강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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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육아서들이 부모의 역할을 강조한다. 실제로 아이를 키우면서 강렬하게 느끼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의식하지 못하던 습관이나 말버릇까지 카피한다. 편안하게 느껴야 할 사람과 경계해야 할 사람을 부모로부터 직감한다.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나를 돌아보는 것과 거의 동의어다. 이런 사실에 강박을 느껴 아이의 행동 하나 하나에 대해 자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부모 자신의 삶을 잘 세워가야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트로츠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부모 자신의 삶을 잘 세워간다는 것이 단순히 습관이나 버릇을 바르게 하고 아이에게 따뜻한 부모가 되는 것을 초과한다는 점이다. 아이는 부모를 통과해 결국 세상으로 나아간다. 아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부모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깊은 연관을 맺는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고민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성찰해보는 데까지 다다라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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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의 아버지는 가족에겐 따뜻했지만 소작농에겐 가혹했다. 이런 태도를 이중인격이라 볼 수도 있지만 트로츠키는 체제의 논리로 이해했다. ‘논리’로 이해했다는 것은 가족에게 따뜻한 것과 소작농에게 가혹한 것이 논리적이라는 뜻이다. 가족에게 더 윤택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 누군가의 몫을 더 가져오거나 누군가를 더 약자의 위치에 붙박아 둬야 하는 체제에서는 두 가지가 부자연스럽지 않다는 이야기다.

 

내게 월급을 주는 사람에게는 대들기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지불하는 입장일 때는 쉽게 대든다. 식당의 서비스에 대하여, 쇼핑몰 고객센터의 느린 응대에 대하여 우리는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윤리가 이런 태도를 보정하는 역할을 하고, 몇몇 사람들은 윤리적 태도를 고수해내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잘 되지 않는다. 돈에 삶이 달린 체제에서는 자연스런 흐름이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를 일부러 아이에게 가르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에게 묻어있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그것으로부터 배운다. 막연하게나마 조금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감을 잡는다.

 

부모의 역할 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회의 규범을 아이에게 성공적으로 전수하는 것이다. 아이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부모란 바로 이 지점에서 진정으로 성찰적이어야 할 것 같다. 이 세상에서 만들어지는 자연스런 태도들을 내 아이에게 그대로 전수해도 되는 것인지.

 

아이들은 이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사람들인 동시에, 세상을 조금 더 낫게 바꿔가야 할 사람들이다. 좋은 부모란 사회의 규범을 아이에게 전달하는 ‘사회의 전령’이면서, 아이의 입장에서 사회를 최대한 보정해서 수용해야 하는 ‘아이의 보호막’이라는 모순된 역할을 잘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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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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