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신예희의 프리랜서 생존기
프리랜서의 혼자 보내는 시간에 대하여
혼자 놀 줄 아는 사람은 둘이서도 잘 논다.
어딘가에 기대지 않아도, 누군가를 붙잡지 않아도 나는 내 두 발로 서야 한다. 영차, 하고 코어와 다리 근육에 힘을 주지 않으면 혼자 설 수 없다. (2017.09.12)
혼자 있을 땐 아예 밥을 굶어버린다는 지인이 있다. 집에선 귀찮아서 굶고, 밖에 나가선 혼자 먹기 뭐해서 굶는단다. 식당은 물론이고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것조차 싫다고 한다. 그러니 혼자 여행을 갈 리가 없다. 평소엔 서로 연락이 뜸한 사이라 알아서 잘살고 있겠거니, 무슨 일 생기면 경찰에서 연락하겠거니, 라는 식으로 잊고 살지만, 휴가철이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전화가 온다. 나랑 어디 안 갈래, 몇 박 며칠인데 같이 안 갈래. 아마 내가 함께 여행 가고 싶은 사람 1순위는 아닐 것이다. 여기저기, 주변 사람들 옆구리를 찌르는 중이겠지.
뭐, 일단 거절이다. 며칠씩 함께 여행하며 부대낄 만큼 잘 맞는 사이도 아니고, 무엇보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쪽이 여러 가지로 편하다. 조금 미안한 마음에 '혼자 여행하는 것도 괜찮아. 나 그렇게 잘 다니잖아. 이참에 한 번 해봐'라고 권하지만, 역시나 고개를 도리도리. '혼자 가서 뭐해? 생각밖에 더하겠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구나, 나는 바로 그게 좋아서 혼자 여행을 가는 건데.
그의 말이 맞다. 혼자 있으면 한도 끝도 없이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게 싫다면 할 수 없지만, 나는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 전에 일단 내 머릿속에 든 이런저런 생각의 실마리를 주무르고 치대고 반죽해 형태를 잡아 노릇하게 구워야 한다(맛있겠다). 혼자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다.
애인이 있으면서 무슨 혼자 타령을 하느냐 싶겠지만, 글쎄요, 혼자 놀 줄 아는 사람은 둘이서도 잘 놉니다. 반대로 혼자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둘이 되었을 땐 어떨는지, 그것까진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애인과 따로 또 같이, 같이 또 따로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은 함께 스타벅스에 가서 각자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러다 이거 봤어? 하며 재미있는 문장이나 동영상을 서로 보여준다. 어떤 것은 내 마음에도 쏙 들고, 어떤 것은 그저 그렇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책이나 핸드폰으로 돌아간다.
어느 날은 입에 허연 백태가 끼도록 실컷 수다를 떨고, 또 어느 날은 말없이 함께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꽤 오래 만난 사이인데, 자주 안 봐서 사이가 좋은 게 아니겠냐는 생각을 한다. 주중엔 열심히 바쁘게 살다가 주말이 되면 반갑게 만난다. 때론 알아서 잘 살고 계슈, 하며 몇 주간 여행을 가기도 한다. 둘 사이에 여백이 많다. 바람이 쉥쉥 통한다. 여백을 견디지 못하는 관계는, 말이 없으면 뻘쭘해지는 관계는 어쩌면 그만큼 거리가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친구 사이뿐 아니라 가족끼리도 그럴지 모른다.
어린이집을 거쳐 유치원에 입학했고, 초중고등학교를 마친 후엔 당연하다는 듯 대학생이 되었다. 속에 든 건 그대로인 채 소속만 계속 바뀐 것이다. 우리 모두 같은 길을 가는구나, 라는 생각에 안심한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선 갑자기 세상에 나 혼자뿐인 것 같아 불안해진다. 쟤는 저기로, 얘는 여기로, 걔는 거기로 가는데 난 대체 이제부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새삼, 그동안 수동적으로 살았다는 걸 실감한다. 교과 과정과 시간표에 따라 움직였지, 내가 내 인생을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한 기억이 별로 없다. 뭐든 하기 전에 친구들에게 물어보는 게 익숙했다. 너네들 뭐 먹을 거야? 너네들 그거 할 거야? 너네들 어디 갈 거야? 같이 먹어, 같이 해, 같이 가. 그렇게 뭐든지 함께 하면서 안심했지만, 더없이 편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이 관계에 야금야금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이게 아닌데 싶어진다.
너무 가까우면 때로 무례해진다. 출근은 15분 일찍 한다면서, 동호회 모임이며 학원 수업에도 칼같이 시간을 맞춰 나간다면서, 나와의 만남에는 꼭 30분씩 늦는다. 진작 말을 하지, 한참 기다렸다고 투덜거리면 원래 그랬잖아, 새삼스레 왜 성질이야 라며 오히려 더 버럭댄다. 최근에 보고 느낀 좋은 것 이야기를 할라치면 너 그런 거 안 좋아하지 않냐고 말을 뚝 자른다. 내가 언제? 하니 예전엔 그랬단다. 아마 처음 친구가 된 고등학생 때 이야기거나 한참 붙어 다니던 대학생 때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 네 머릿속의 나는 20년 전, 30년 전 모습인가보다.
나도 다르지 않다. 같은 실수를 하고, 같은 이유로 얼굴을 붉힌다. 말하자면, 동의 없이 상대방의 음식을 주문해버리는 것과도 비슷하다. 너 이런 거 좋아하잖아(20년 전에), 그래서 내 맘대로 시켰어. 이런 일들이 쌓이면 서서히 친구라기보다는 오래 알고 지낸 지인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너와 내가 서로의 오늘을 공유하고 내일을 꿈꿀 수 있을까?
오래되고 허물없는 사이는 종종 만만하고 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와 그런 사이라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것은 아니다. 어느 자리에선 어려운 사람일 테고, 어느 자리에선 존경받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되고 너무 허물없어 깜빡깜빡 잊는다. 넌 이런 사람이잖아, 라며 쉽게 정의한다.
하지만 실은 나는 널 잘 모르고 너는 날 잘 모른다. 많은 걸 잊는다. 선을 지켜야 한다는 것도, 자존심을 건드려선 안 된다는 것도 잊는다. 소중함을 잊고, 고마움을 잊는다. 그리고 곧 유효기간이 끝난다. 이제 우리는 친구가 아니야! 라고 선언한다는 게 아니라, 이제는 서로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고 자연스레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는 얘기다. 슬프거나 아쉬운 대신 오히려 후련하다. 그동안 네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이만큼 인정받는다는 걸, 이만큼 잘나간다는 걸 증명하느라 긴긴 시간을 썼다.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나드니 4~50대에 재사회화 교육이 필요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오래된 친구 사이에서도 재친구화 교육이 필요할지 모른다. 지속 가능한 관계를 쭉 유지하기 위해서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당연한 고독 속에 살게 해
- 이소라, 「Track 9」 중
혼자일 때 행복하고, 혼자일 때 충만하다. 만났을 때 에너지를 얻는 대신 오히려 피곤해지는 소모적인 관계를 정리하면서 얻은 선물 같은 감각이다. 어딘가에 기대지 않아도, 누군가를 붙잡지 않아도 나는 내 두 발로 서야 한다. 영차, 하고 코어와 다리 근육에 힘을 주지 않으면 혼자 설 수 없다. 그렇게 몸을 일으켜선 거울 앞에 서서 인생 혼자구나, 라고 소리 내어 말해본다. 그 말이 그지없이 쓸쓸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더없이 홀가분하게 들리기도 한다.
혼자 먹는 밥, 혼자 읽는 책, 혼자 보는 영화, 혼자 하는 여행.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과 많은 공을 들였다. 소중히 지키고 싶다.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재미난 일, 궁금한 일만 골라서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그녀는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탓에 혼자서 시각과 후각의 기쁨을 찾아 주구장창 배낭여행만 하는 중이다. 큼직한 카메라와 편한 신발, 그리고 무엇보다 튼튼한 위장 하나 믿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40회에 가까운 외국여행을 했다. 여전히 구순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처음 보는 음식, 궁금한 음식은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습성을 지녔다. ISO 9000 인증급의 방향치로서 동병상련자들을 모아 월방연(월드 방향치 연합회)을 설립하는 것이 소박한 꿈.
저서로는 『까칠한 여우들이 찾아낸 맛집 54』(조선일보 생활미디어), 『결혼 전에 하지 않으면 정말 억울한 서른여섯 가지』(이가서), 『2만원으로 와인 즐기기』(조선일보 생활미디어),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시그마북스), 『여행자의 밥』(이덴슬리벨)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