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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해변에서 혼자>, 결국 취사선택의 문제

오! 해변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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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 통로마다 복작거리는 분위기가 영 불편했는데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보는 동안에는 상영 전 극장 풍경이 다르게 다가와 재밌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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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언론 시사회 극장이 만석인 것은 물론 기자들로 아수라장이었다. 홍상수의 영화가 언제부터 이렇게 언론의 관심을 모았나? 영화 때문이 아니라는 건 대부분 아실 테고. 그렇다고 김민희 배우의 이번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을 축하하려고 모인 것도 아니고. 연인 사이로 알려진 홍상수와 김민희가 <밤의 해변에서 혼자> 상영 후 처음 국내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극 중 여배우와 유부남 감독의 사연을 다룬다고 하여 홍상수와 김민희 커플의 관계를 직접 드러낸 것은 아닌지 확인하려는 언론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 좌석 통로마다 복작거리는 분위기가 영 불편했는데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보는 동안에는 상영 전 극장 풍경이 다르게 다가와 재밌게 느껴졌다. 극 중 영화와 현실을 분리해 보여주고 더 나아가 꿈과 현실의 관계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연출이 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에게 어떤 감흥을 안겨줄지 궁금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총 2부로 진행된다. 1부의 배경은 외국의 어느 도시다. 여배우 영희(김민희)는 한국에서 유부남 감독과의 만남이 주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선배가 있는 이곳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다. 호젓하게 산책을 즐기고 공원을 산책하고 선배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등등. 그러면서도 영희를 만나러 오겠다는 그를 기다린다. 그런 양면적인 감정을 털어버릴 겸 해변에 갔다가 어느 남자에게 납치를 당한다.

 

엇! 홍상수 영화에서 납치라니? 사실일까, 의심이 들자마자 2부가 시작한다. 2부의 첫 장면은 강릉의 어느 극장에서 스크린을 응시하는 영희의 모습이다. 그러니까, 1부 내용은 2부의 영희가 보는 영화였던 것 같다. 극장을 나온 영희는 강릉의 지인을 찾아 커피를 마시고 술자리를 갖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숙소 앞 해변으로 나가 바다를 마주한 채 모래사장에서 잠이 든다.

 

홍상수 감독은 지극히 일상적인 연애사를 가지고 예상치 못한 형식을 부여해 영화적 마법을 연출하는 게 특징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여배우와 유부남 감독의 관계는 아무래도 홍상수와 김민희를 연상시킨다. 다만 이를 영화로 옮기는 건 현실과는 달라서 극 중 내용이 모두 두 사람의 것이냐, 는 또 다른 문제다. 그에 관해 얘기하는 것, 내게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목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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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난 후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 배우가 참석한 간담회 자리에서 어느 기자가 질문했다. 일반 국민은 두 사람의 관계를 정서적으로 불편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홍상수 감독이 답했다. 일반 국민이란 표현을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와 김민희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그러니까, 홍상수와 김민희가 사랑하는 사이라는 사실 이외의 진실은 이를 받아들이는 각자 처지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의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게 그렇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누군가는 현실로, 또 누군가는, 영화로, 어떤 이는 꿈으로 인식하며 다양한 해석을 드러낸다. 영화감독과 같은 예술가는 거기에서 ‘마법’을 찾아 이를 적당한 매체로 구현하기를 즐긴다. 그것이 바로 삶과 예술의 상관관계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1부와 2부의 연관 구조가 그에 해당한다. 서로 다른 배경과 분위기를 취하고 있지만, 사건의 전개 방향은 그렇게 비슷할 수가 없다.

 

마음이 복잡해 타지로 온 영희가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해변으로 간다는 이야기 골조는 1부와 2부 공히 같다. 각각 외국과 강릉, 한적한 공원 벤치에서의 대화와 시끌벅적한 술자리에서 주고받는 이야기, 해변에서의 납치 사건과 잠에서 깨어나는 결말의 디테일이 다를 뿐이다. 이는 영화가 현실을 더욱 극적으로 극화(劇化)하는 방식을 옮긴 것에 가깝다.

 

안 그래도 간담회 자리에서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감독의 자전적인 내용이냐는 질문이 나왔고 홍상수 감독은 이렇게 반응했다. 상업적인 필요에 의한 디테일을 쓸 수 있지만, 그럼으로써 일어나는 작용이 있다. 또한, 개인적인 걸 건드릴 때 발생하는 작용이 다르다. 그래서 개인적인 디테일을 쓰고 다르게 배열하는 과정을 거친다. 디테일이 내게 가까울수록 영화의 방향성이 정해지는데 그것이 진실에 대한 무게감을 부여한다.

 

결국, 이는 취사선택의 문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1부에 등장하는 영희의 대사를 빌려 좀 더 고상하게 말하자면 “나답게 살고 싶어”, 즉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다. 여기에는 자격이 있을 수 없다. 홍상수 감독은 이 논리를 극 중 영희와 유부남 감독의 관계에 대입해 풀어 간다. 강릉이 배경인 2부에서 영희는 대화가 한창일 무렵 술에 잔뜩 취한 태도로 “자격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 목소리를 높인다.

 

동의한다. 사람의 감정과 욕망은 당사자 개인조차도 판단할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랑은 합법이고, 저 사랑은 불법이다, 라는 공식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게 인간의 욕망은 초월적이다. 현실이면서 한 편의 영화이고 또한, 일장춘몽이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영희는 이제나저제나 강릉으로 자신을 보러 와주기를 바랐던 유부남 감독 상원(문성근)을 만나 술자리를 갖는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 한바탕 떠들고 나니, 이는 현실이었던가, 꿈이었던가. 눈을 떠보니 해변의 모래사장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였던 그녀 앞에서 파도는 여전히 무수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영희는 그런 바다를 나란히 하며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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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_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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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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