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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리뷰 대전] 읽어낸 만큼 살아남는다

인문 권하는 사회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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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인문학의 기본이다. 인문 교양 MD는 잘 살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리고 책으로 말한다. 브리핑은 거들 뿐. (2017.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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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전집 세트를 갖고 있다는 것은 교양인임을 증명하는 것과 같았다. 방학 숙제 중 독후감 도서는 대개 세계명작전집 세트에 있는 것 중 아무 책이나 뽑으면 될 정도였다.


그러나 저자 박숙자는 『속물 교양의 탄생』에서 '세계문학전집'으로 대표되는 서구 문학의 실상에 대해 이렇게 비평한다. 이러한 책 읽기 문화는 바로 식민 시대 속에서 시작된 계급 상승에 대한 욕망과 자본주의가 깊이 깃든 속물적인 것이라고. 우리가 교양인이 되기 위해 필독서로 읽어왔던 독서 문화를 각종 역사 자료와 저자의 꼼꼼한 주석을 곁들인 논리적인 해석을 통해 파헤쳐졌다. 독서 문화에 대한 비평에서 시작해 근대 문화 자체에 대한 비평까지 아울렀다.


그런 저자가 이번에 내놓은 책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의 청년들이 무엇을 읽고 무엇을 생각했는지에 대해 보여주며 당시 시대를 짚어낸다. 전작에서도 그러했듯, 저자는 이번에도 문학을 통해 역사를 파헤치는 데 능통하다. 저자는 문학과 현실에서 4명의 청년들을 찾아냈다.

 

이념 과잉의 시대 속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던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준’, 혁명 속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들어야 했던 김승옥 소설 『환상수첩』의 ‘정우’, 차별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한국 현실에서의 여성을 대표하는 소설가 전혜린,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 치던 전태일이 바로 그 4명의 청년들이다. 이들은 모두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다. 그 수단은 바로 독서였다. 저자는 이 청년들이 어떤 방식으로 무질서한 세계를 살아냈는지를 이들의 책읽기를 통해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의 근대 문화 흐름까지 그려낸다.

 

저자는 조금은 딱딱하고 어려울 수도 있는 이 내용들을 매끄럽게 풀어내며 책장이 술술 넘어가게 만든다.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 위주의 내용이지만, 문학 외에도 영화, 당시 실제 사건, 대중가요 등을 동원해 이야기를 풀어나가 다채롭게 한국 현대사를 이야기한다. 물론 아주 자주 등장하는 방대한 사료와 문학 작품을 바탕으로 한 주석들을 짚어가며 읽는다면 조금 더 오래 걸릴 테지만, 한국 근현대사와 조금이라도 친한 편이라면 굳이 하나 하나 들춰가며 읽지 않아도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 때로는 이 인물이 소설 속의 인물인지, 당시를 살았던 실존 인물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만큼 쉽게 읽힌다. 가령 앞서 언급했던 세계문학전집 읽기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해 준다.

 

정우는 김승옥의 소설 『환상수첩』의 주인공이다. 이 삶 속에서 한글로 된 세계문학을 집어 삼키듯 읽어댔다. 문학청년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할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에서부터 전후 세대의 문학에 이르기까지 넘나들며 읽었다. 한글로 된 세계문학전집이 속속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전집 한 질을 읽었다는 청년이 적지 않았다. 많이 읽을 수 있었고, 애지중지하는 책이 있었으며, 그런 만큼 책에 몰입할 수도 있었다. 닥치는 대로 읽을 수 있었다.
- 본문 106쪽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준과 정우, 혜린과 태일에게 '책'이란 세상의 문을 여는 손잡이였다. 그래서 그들은 책을 읽으며 어떻게 삶다운 삶을 만들어내는지 물었고 엿보았다"고 말이다. 내가 지금 독서를 하고 있듯이, 해방 직후의 청년들도 독서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을 잠시라도 생각해 봤던 사람이라면 이 책은 분명 그 궁금증을 해소해 줄 것이다. 당시 청년들이 오로지 살기 위해, 조금 더 알기 위해 읽었던 필사적인 독서를 들여다 보면,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독서의 시간들이 더욱 소중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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