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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미 “우정? 배려? 약간의 배려랄까요?”

그림책 『지렁이빵』 저자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빛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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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빵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정? 배려? 약간의 유머랄까… 뭐 큰 주제의식은 없어요. 저는 매우 단순하게 몇 문장 혹은 몇 가지 이미지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말하는 걸 좋아해요. 제가 만드는 그림책은 거의 그래요. 마지막 장면에 반전이라면 반전이랄까, 메시지라면 메시지랄까. 단 한 컷에 담겨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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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을 달려 양평 작업실에 도착했을 때, 노석미 작가는 빵 반죽을 오븐에 막 넣으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림책 『지렁이빵』에 나오는 것과 똑같은 지렁이 모양 반죽!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빵이 구워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20분쯤 뒤, 먹음직스러운 빵 냄새와 함께 인터뷰가 시작되었습니다.

 

노석미 작가는 홍익대에서 회화를 공부했고, 다양한 분야의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인, 인형 만들기, 아트상품 제작 등을 하며 여러 차례 개인전과 기획전을 열었습니다. 현재 경기도의 작은 정원이 있는 작업실에서 뚱뚱하고 귀여운 고양이들과 함께 살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어요.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해』,  『냐옹이』, 『서른 살의 집』, 『피델리오』, 『스프링 고양이』, 『아기구름울보』 등을 쓰고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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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은 형광색을 사용하지 않는 게 좋아요


근황을 여쭤 보며 시작하려고 했는데 이미 다 들어 버렸네요.

 

근황이요? 바쁩니다(웃음). 전시회 임박이라 바쁘고, 봄이라 농사도 지어야 돼서 바쁘고, 마음이 바쁘고 그렇죠.

 

텃밭도 텃밭인데 정원도 손이 많이 갈 것 같아요.


정원은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됐어요. 꽃 심어 놓은 자리가 있어서 그렇게 손이 많이 가지는 않아요. 더 많이 꽃을 들인다거나 정원 구조를 바꾼다거나 이런 게 아니면요. 해마다 퇴비를 주고 관리를 해줘야 애들이 꽃도 더 많이 피우고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너무 힘드니까… 생긴 대로 살아라, 피는 만큼만 보겠다. 하고 있는 거예요.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을 보면 “게으른 사람의 정원에도 꽃은 피어난다”는 말이 나오잖아요.

 
왜냐하면 걔네들도 살아 있는 생명체니까요. 알아서 하는 거죠. 물론 관리해 주면 훨씬 예쁘기는 하겠죠.

 

양평에서 맞는 봄은 어떤가요? 시골 생활에서 봄이 갖는 의미가 더 크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가 그랬대요. 저도 어디서 읽은 글인데, ‘내가 자살하지 않는 이유는 햇살 때문이다.’ 엄청난 말이지 않아요? 햇살이 느껴지는 봄날이 시작되면 만물이 생동하잖아요. 사람도 똑같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기분이 좋아지고 뭔가 움직이고 싶고 들썩들썩 하고. 그리고 저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인생이 되게 힘들게 느껴질 때, 내가 맞이할 수 있는 봄이라는 게 앞으로 과연 몇 회나 남았을까? 30번? 40번? 생각해 보면 매우 짧은 거예요. 봄이 해마다 오는 것 같지만, 한 개인이 평생 누릴 수 있는 봄의 횟수는 얼마 안 돼요.

 

정말 그러네요.


네. 그리고 10대 때는 봄을 누리자! 이런 말 잘 안 하잖아요. 봄을 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30대 이후예요. 봄은 짧기 때문에 더 좋잖아요. 그러니까 아끼지 말고 누려야 돼요. 누린다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갖지 말고요. 우리가 할 일이 쌓였을 때, 쉬려고 하면 내가 너무 사치를 부리나? 이런 생각하잖아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날도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일을 미루고 논다고 꾸중하는 하는 어른들도 있었어요. 


제가 보기엔 그것도 과도한 이데올로기예요. 가끔 그런 생각해요. ‘난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하는 거야? 일하러 이 세상에 왔니?’ 물론 놀기만 하면 인간이 무위고에 시달리니까 그것도 고통이에요. 일을 하는 와중에 놀아야 노는 것도 즐겁거든요. 놀고 일하고 놀고 일하고 이래야 되는 거 같아요. 두 개 다 해야 돼요.

 

마당에 찾아오는 길고양이들이 더 자란 것 같아요. 다들 무탈하게 지내고 있나요?


그렇죠. 그런데 밖에 고양이들은 야생이기 때문에 밥 챙겨주고 어느 정도까지만 해요. 깊게 관여는 안 해요. 걔네를 지금 집 안에 있는 고양이들처럼 죽을 때까지 보살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요. 적당히 새한테 모이 주듯이. 제가 겨울에 밖에 새한테도 모이 주거든요. 그 정도 선에서 관리해요. 저것들이 너무 나한테 들러붙어서 그렇지(웃음).

 

몇 마리예요?


정확히 몰라요. 일부러 세지 않아요. 많이 먹으러 올 때는 열 마리도 와요. 적게 올 때는 일곱 여섯 마리 이럴 때도 있고. 밖에 애들은 수명이 되게 짧아요. 예뻐했는데 2, 3년 만에 없어지면 죽었다고 생각해야 되거든요. 그럼 아쉽고 마음이 너무 아프잖아요. 지금 여기서 10년 살았는데 제가 그걸 그동안 몇 번이나 겪었겠어요.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방 안에서 어슬렁 나오자)


씽이 나왔네? 씽 이리로 와봐. 얘가 손 모델 했잖아요. 『지렁이빵』 편집자가 고양이랑 같이 책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해서. “너 가만있어!” 이러고 찍었어요. 다른 애들은 말도 안 들어요. 얘니까 그나마 말 듣지. 젤 순둥이고 막내고. 막내인데도 열두 살. 다른 애들은 더 늙은이예요. 호호할아범은 지금 관절염으로 아프셔서 나오지도 않아요.

 

『지렁이빵』 책을 보고 별색 잉크를 써서 인쇄 했나 했어요. 형광 느낌이 나서요.


이 책은 단조롭고 플랫한 색이 많으니까. 처음엔 노랑이랑 핑크 중에서 하나 별색을 쓰면 좋지 않겠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인쇄감리를 가 보니까 별색을 쓰지 않기로 했다는 거예요. 왜 안 쓰냐고 물었더니 디자이너가 별색처럼 보이게끔 작업을 했더라고요.

 

컴퓨터로 색조정을 했다는 거죠?


디자이너니까 시스템에 대해서 잘 아는 거죠. 그리고 형광색은 말 그대로 안 좋은 물질이라는 거예요. 말 그대로 형광물질인 거죠. 인쇄소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린이책에는 쓰지 않는 게 좋다고.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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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배려? 약간의 유머랄까


개인전 사이 사이 그림책 작업도 꾸준히 하고 계시죠.


저는 그림책을 좋아해요. 왜냐하면 저하고 잘 맞아요. 제가 좋아하는 게 짧은 글쓰기와 내러티브 있는 그림 그리기예요. 그 두 개가 결합된 게 그림책이잖아요. 저한테 매우 적합한 장르인 거예요. 본 직업을 굳이 말하자면 화가인데 화가도 되게 다양하거든요. 그리고 그림만 잘 그린다고 해서 그림책 작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내러티브 구조에 대한 이해가 있고, 그걸 즐기고 이야기를 짜내야 하는데, 저는 그런 걸 좋아해요. 그래서 평소에도 매우 생각을 많이 해요. 지금도 내고 싶은 그림책이 열 개는 있어요.

 

와 진짜요?


저는 그 벽을 높게 갖고 있지 않아요. 모든 건 쉽고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대명제예요. 쉽고도 어려운 일이 나에게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쉽기만 하거나 어렵기만 한 일은 나의 일이 아닌 거죠. 선문답 같은 이야기이기는 한데. 과연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사명 의식을 주는 일인가? 그 생각을 계속 해요.  그림책은 약간 시 같은 느낌이 있어요. 짧은 몇 가지 문장으로 말하고 싶을 걸 강력하게 말할 수 있고, 그게 그림과 결합되었을 때 주는 부드러움? 이런 것들 때문에 그림책 작업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많이 하고 싶고, 계속 하고 싶어요.

 

『지렁이빵』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해요.


이 책은 빵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정? 배려? 약간의 유머랄까… 뭐 큰 주제의식은 없어요. 저는 매우 단순하게 몇 문장 혹은 몇 가지 이미지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말하는 걸 좋아해요. 제가 만드는 그림책은 거의 그래요. 마지막 장면에 반전이라면 반전이랄까, 메시지라면 메시지랄까. 단 한 컷에 담겨 있는 거죠. 『지렁이빵』 마지막 컷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내가 이렇게 맛있게 만들었어.’ ‘너를 위해 준비했어.’ 이거예요. 새를 등장 시키려다 보니까 지렁이가 나온 거고요. 빵과 지렁이에서 오는 상충되는 이미지랄까? 그런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고. 원래 새하고 고양이는 서로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일부러 친구처럼 보이는 관계로 만든 거고요.

 

고양이의 친구니까 당연히 고양이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죠. 알고 보니까 친구가 새!? 얼마나 황당해요. 새 친구는 마지막에 나와서 ‘아 맛있다!’ 하고 끝나는 거죠. 이기적인 친구(웃음). 실제로도 관찰해 보면 새들은 좀 얄미워요. 먹을 것만 먹고 날아가거든요.

 

숨은 유머라고 느꼈어요. 새가 지렁이를 먹는다는 걸 알아야만 즐길 수 있는. 그걸 모르고 보면 ‘이게 뭐?’라고 할 수도 있는 거죠.


그렇죠. 아무 의미가 없을 수 있죠.

 

정말 매력적이에요. 새를 위해서 지렁이 모양 빵을 만들다니!


사실 빵은 고양이나 새나 먹지도 않는데. 어차피 독자는 인간이니까요. 그런 코드를 읽는다면 재미있는 책이 되겠죠. 저는 그림책 작가로서 제 색을 갖고 싶어요. 단타 치는 느낌의 하이쿠 같은 거죠. 책을 보는 건 1분 밖에 안 걸렸지만 계속 떠오르는 것. 제가 좋아하는 책들이 그런 책들이기도 하고요. 지나가다가도 ‘어? 이거 어디서 읽은 건데’ 하고 생각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건 분명 독서할 때 감흥을 받았다는 뜻이거든요. 저도 그런 책을 만들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 짜내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어떤 찰나들을 잘 수집했다가 내 작업에 용해해서. 투명하고 뾰족하게, 이를테면 매우 사실적이게 표현하는 거죠.

 

쉬운 작업은 아니에요.


잘 갈고 닦아야죠.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면 너무 안 사실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사실적인 것은 ‘표현하고 싶었던 어떤 것을 당시의 찰나 그대로 미끈하게 잘 뽑아내는’ 거예요. 작업을 하는 과정은 사실 되게 지난해요. 그러다 보면 싱싱함을 잃어요. 10대를 잃는 것처럼요. 작업에도 일종의 생로병사가 있거든요(웃음). 아무리 늙어도 그런 작업은 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방금 피어난 장미 같은 작업이 좋아요. 완숙한 작품에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내 작품을 보고 만족감을 못 느낄 수도 있어요. 싱싱하긴 한데 뭔가 덜 익은 것 같은데? 이런 느낌을 받을 수도 있거든요.

 

그건 완성도의 문제하고는 다른 걸까요?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완성도는 각자 다르거든요. 추구하려고 하는 게 다르기 때문에. 나다운 걸 하려면 내가 스스로 터득하는 수밖에 없어요. 남은 모르는 거예요. 세상에 존재하는 너무나 많은 좋은 것들이 훌륭한 교과서가 되지만, 내 것은 내가 해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눈앞이 안개 속이에요. 답이 없는 길을 걷는 거예요. 그걸 받아들여야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냥 꿋꿋이 걷는 거예요. 제가 20년 작가 생활 하면서 느낀 건 그거 하나예요. 이제야. 그림책에 대한 인식도 비슷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책이라는 형태로 잘 만드는 것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사실 사람들이 다 좋아하진 않죠.

 

낯설게 바라보는 독자들도 있어요.


아주 많을 거예요. 정말로 그림책의 영역이 더 넓어지려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작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문학을 좋아해요. 그림책도 문학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왜 문학을 향유하는지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향유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 일을 할 수가 있겠어요? 중요한 건 마음을 움직이는 거잖아요. 책이든 그림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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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한마디로 그냥 똥이에요


어떤 문학 작품, 작가를 좋아하세요?


문학 작가는 몇 년 전부터 쭉 한 사람을 얘기해요.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해요. 소세키 책은 다 가지고 있어요. 기질적으로도 저랑 맞는 것 같고. 뭐랄까, 짝사랑 한다고 할까? 그런 정도로 좋아해요. 헤세도 당연히 좋아하고. 헤세는 우리한테는 교본 같은 사람이잖아요. 최근에는 제임스 설터라든지, 레이먼드 카버도 좋아해요. 저는 생산자의 위치이기도 하지만, 향유자일 때 가장 행복해요.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보거나. 그 사람이 예술가로서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을 그냥 좋아하는 거예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건 다르니까요.

 

전작 『왕자님』의 주인공은 코끼리였고, 『지렁이빵』에서는 고양이와 새가 등장해요. 동물에 대한 애정이랄까, 관심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인간보다는 좋아하죠(웃음). 제가 인간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인간에 대해서 너무 잘 아니까. 복잡함, 사악함…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상처를 주잖아요. 우리가 코끼리한테는 상처 안 받잖아요. 그리고 『왕자님』 같은 경우는 배경이 동남아예요. 그 나라의 왕자라는 특성에 어울리는 게 코끼리라서 그렇게 한 것도 있어요. 사람을 선택했을 때는 소년이든 소녀든 캐릭터가 존재하잖아요. 모든 사람이 감정이입을 하기는 어려워요. 그런데 동물은 광범위하게 감정이입이 가능한 지점이 있어요.

 

그리거나 쓰는 건 계속 소진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충전은 어떤 식으로 하세요?


소진과 충전을 동시에 해야 해요. 놀고-일하고-놀고-일하고. 왜냐하면 오늘 작업하고 내일 죽을 거 아니잖아요? 장거리 달리기 선수 같은 거예요. 저는 지금은 굉장히 규칙적으로 살아요. 오래됐어요. 오후 되면 일 안 해요.

 

여행을 좋아하시니까 여행이 충전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물론 여행도 충전이죠. 저한테는 충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죠. 여행은 이를 테면 오늘 안경을 끼고 있는데, 이 안경을 벗는 거죠. 그런 차원의 다름이랄까?

 

정말 와 닿아요.


네. 그렇게 리프레시가 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죠. 쉴 수도 있고 고행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집 떠나면 고생이죠. 저는 모든 여행이 다 고행이었거든요. 집에 돌아와서 앓아 누워요. 하지만 그게 인생에서 두고두고 좋은 경험으로 남는 것 같아요. 생경한 상황에 나를 놓음으로써 얻게 되는 생경한 감정들. 새로운 나를 만나고 싶을 때 여행을 가는 거죠. 올해 개인전 끝내고 어디든 가려고 하고 있어요. 그런데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다른 것보다도 고양이들이 좀 아파서.

 

에세이 『그린다는 것』에 ‘그리기’는 원초적인 배설의 욕구라고 쓰셨어요. 배설이 예술이 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요?


사람들이 너무 어렵게 생각하게 된 게, 잘못된 학습의 결과예요. 이를테면 처음부터 원론을 생각하면 돼요. 예술이 무엇인가를 얘기하면 돼요. 예술이 뭡니까? 예술이 뭐죠?

 

… 모르겠어요.


거 봐요. 이미 너무 어려워진 거예요. 교육을 너무 많이 받아서 그래요. 그 책 쓸 때 생각했어요. 내가 왜 그리는지부터 시작해야겠다. 나에게 예술이 무엇인가? 예술은, 한마디로 그냥 똥이에요. 이 사회에 존재하는 무수히 존재하는 것들 중에 매우 작은 지점이에요. 하지만 빛나는 거죠. 없어도 돼요. 그렇지만 있으면 빛나는 거예요. 시골에 들어와 살면서 현실적으로 많이 생각했어요. 예술가로 성공하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잖아요. 돈을 버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내가 만약 자식이 딸려 있고, 부모를 부양해야 하면 이걸 계속 할 수 있을까? 고정수입이 필요하지 않을까? 예술을 해야겠는데 굶어 죽게 생겼을 때, 과연 내게 예술이 무엇이고, 내가 하는 예술은 무엇이고, 그게 이 사회에서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그냥 다 배설이에요.

 

어떤 배설은 되게 불쾌하잖아요.


대부분의 처녀작들은 불쾌해요. 그림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작가가 사회에 내놓은 첫 작품은 내용이 매우 우울해요. 왜 그런지 아세요? 그게 본질인 거예요. 인간의 본질. 집에서 혼자 나에 대해서 생각할 때 ‘난 너무 밝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처녀작은 대부분 자기 얘기를 해요. 그게 맞아요. 유명한 작가들의 초기작들을 찾아보세요. 대부분 우울해요. 자기 연민에 가득차 있어요. 저도 옛날 그림 보면…

 

되게 어둡던데요!


어둡죠! 사람도 막 다 흉측하게 그려놨어요. 뭔가 내면의 울화를 표현하고 싶은 거죠. 감정과 이성이 있다면 감정이 과한 상태. 그게 젊음의 특권이기도 하죠. ‘나는 이런 똥을 쌀 수 있어!’ 하고 팍 싸는 건 젊은이예요. 그런데 그 똥을 다 싫어해요. 이게 나의 젊은 시절까지 떠올리게 해서 더 불쾌한 거죠. 그런데 창피해하면 안 돼요. 누구나 다 그걸 시작으로 하니까요. 그걸 알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어요. 시작은 배설이지만, 향기로운 똥이 될 때까지. 누구나 다 냄새 맡고 싶어 하는 똥이 될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거죠. 하지만 그래도 배설물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어요. 예술은 인간 세계의 일이에요. 인간이 향유하려고 만든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과하게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향기로운 똥이 되는 게 어렵다는 거죠. 나 혼자 향기롭기도 어렵거니와 많은 사람들이 좋게 보기는 더 어렵죠. 세상에 예술가가 한둘이겠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가는 많지 않잖아요. 그만큼 어려운 일이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인 거예요.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면, 거기서 끝나는 거예요.


 

 

지렁이빵 노석미 글그림 | 사계절
넓은 판형 위에 밀가루 반죽과 반죽을 주무르는 고양이의 손만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빵을 만들 거예요.”라는 말처럼 이 책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빵을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는 독자들, 특히 어린 아이들은 직접 따라서 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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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현주

10년 동안 어린이책 편집자였다. 지금은 작가들을 만나 사진도 찍고, 영상 편집도 하고, 꽃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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