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내가 쉐프 하지, 글 쓰고 있겠나!
스페인, 세비야
음식을 먹어주는 상대방의 입맛이 까다로우면 음식 솜씨가 늘게 마련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인즉 내가 먹어주지 않으면 남자의 요리 솜씨는 발전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음식
자꾸 맛 없는 음식을 만들어 오면 비둘기 먹이로 던져버릴 테다.
스페인 남부의 뜨거운 태양 빛에 얼굴이 뒤집어졌다. 햇빛 알레르기였다. 몸 관리를 오죽 못 했으면 햇빛에 나가떨어졌을까, 면역력이 이 모양이 될 때까지 몸의 신호를 모른 척했던 나의 미련함을 책망했다. 지중해의 완벽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옆에 두고 된장에 삶은 양배추를 찍어 먹었다. 햇빛 알레르기로 시작한 몸의 반응이 온갖 음식으로도 전염된 상태였다. ‘먹을 것’이 한정되다 보니 자연스레 ‘먹을 것’에 대한 어떤 의견도 낼 수 없었다. 이 말은 그 남자가 원하는 대로 취향껏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혹자는 요리 좋아하는 남편을 둔 게 복에 겨운 행운이라고 말한다. 뭐라 반박할 수 없는 말이지 싶다가도 나름의 고충을 주섬주섬 꺼내고 싶어진다.
결혼하기 전, 중국에서 자주 해 먹던 요리라며 토마토를 으깨 계란과 볶아왔다. “으~ 이렇게 맛없는 음식은 처음이야.”라며 음식상을 물렸다. 그것은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다시는 내 입맛에 맞지 않은 이런 음식 따위는 해 오지 말라는. 사랑하는 사람이 해 준 음식이면 뭐든 맛있다는 흔한 거짓말 대신 일찌감치 ‘당신이 해준 음식은 맛이 없으니 애쓰지 말고 당신이나 먹으시오’가 나한테는 그 남자를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세비야에서 남자는 자신만을 위한 음식 삼매경에 빠졌다. 그동안 모험하지 않고 고기나 굽고 야채를 볶아왔다면 이번에는 지중해의 문어, 아보카도, 연어, 살라미 등을 이용해 요리로 발휘할 수 있는 창작활동에 들어갔다. ‘음, 이번 음식은 좀 맛있어 보이는군. 한 입만 달라고 할까? 아니야 그동안 면박 준 게 있는데 자존심을 구길 순 없지.’라며 두서없이 생각하다 결국 한 입 얻어먹었다. 이쯤에서 사람들은 대단한 반전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거 봐라. 맛있지 않느냐’, ‘남자 기를 죽이면 안 된다’, ‘그도 하면 잘하는 사람일 거다’라는 등의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남자 요리는 역시나 별로였다.
남자와 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는다. 맛없는 걸 사람 성의를 봐 가며 억지로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가끔 사람 좋은 척 인심 쓰듯 맛없는 음식을 먹고 나면 꼭 탈이 나는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그 남자는 내가 좋은 걸 좋다고, 싫은 걸 싫다고 말해도 관용으로 혹은 사랑으로 감싸 안아준다. ‘믿는 구석’ 그 남자가 있기에 음식 투정하며 패악을 부려도 남자 옆에 기생하며 아직도 보란 듯이 살아가고 있다.
음식을 먹어주는 상대방의 입맛이 까다로우면 음식 솜씨가 늘게 마련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인즉 내가 먹어주지 않으면 남자의 요리 솜씨는 발전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남자는 요리를 좋아하지만 잘하지는 못한다.
“여보, 당신이 한 음식은 당신만 드시오. 나는 그냥 찬밥에 물 말아 먹겠소이다.”
세비야의 부엌에서 혼자
지붕 위로 솟아오른 안테나 모양이 모두 제각각이듯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해야 그 집만의 독특한 요리가 생겨나지 않겠소!
강한 햇빛에 알레르기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랬다. 더욱이 그 희귀한 케이스가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라니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얼굴이 부어오르고, 피부는 뒤집힌 그 여자가 걱정되어 밖에 나가지도 못한 채 건강식을 해 나르며 한 달을 보냈다. 여행인데 밖에 돌아다니지 못해 어쩌냐 걱정할 수도 있는데 노 프라블럼! 외출이 없으니 돈 쓸 일이 없어서 지갑이 풍족했다. 여행 대신 신선한 식재료를 가지고 온갖 요리를 해 먹으며 그 한 달을 알차게 보냈다.
세비야에서 만든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진 이유는 주방에 빛이 잘 들었기 때문이다. 자연광 아래서는 어떤 요리도 맛있어 보이는 마법이 숨어 있다. 문어를 사다 파스타를 해 보고, 샐러드에 살짝 얹어 보았다. 온갖 버섯을 가지고 볶음 요리도 하고, 덮밥으로 만들어 봤다. 실용적인 음식만을 고집하는 그 여자 옆에서 달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프라이뿐이었지만 손이 많이 가는 수란도 늘 음식 옆에 곁들였다.
평소 그 여자는 창의성이 발휘된 내 요리를 마주하면 조용히 한쪽으로 밀어 놓고 익숙한 음식을 다시 준비했다. 하지만 병환 중이라 자기가 먹을 양배추만 가져다주면 내 요리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낯선 음식들이 궁금했는지 한두 번 맛을 보긴 했는데 이내 인상이 구겨졌다. 아무래도 혀에도 알레르기 반응이 생겼나 보다.
난 내가 한 음식이 맛있다. 뭐랄까. 별다른 양념 없이 소금간만 한다거나, 재료가 익으면서 나오는 맛을 살리는 조리법이라 조금은 투박하지만 건강한 음식이다. 물론 그 여자가 좋아하는 우리 엄마의 전통적인 한식 레시피로 음식을 하면 모두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상대를 위해서 요리하나? 나 먹으려고 요리하지!
얼마 전, 은퇴한 남편을 둔 아주머니의 고민을 들었다. 출근하지 않으니 아침, 점심, 저녁으로 밥을 해 날라야 하는데 그때마다 음식 타박을 한단다. 거기 까지면 그래도 참고 살겠는데 꼭 다시 만들어 오라고 해서 그때마다 미치겠다고 한다. 늘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혼 생각을 실행하고 싶어진다나 뭐라나. 다행히 나는 그런 스트레스는 없다. 그 여자는 ‘맛없다. 네가 맛있는 건 너만 먹어라’ 하고 자기 요리를 하니까. 그래서인지 나는 내 음식 맛없다고 타박해도 개의치 않는다. 자기가 자기 요리해 먹는다면 맛없는 걸 맛없다고 말하는 건 문제 될 게 없다.
그 여자의 표현이 직설적이고 조금 날카로워서 그렇지 솔직하게 의사 표시를 하는 것도 다음을 위해서 좋다. 물론 잠시 속이 상할 때도 있지만 그 여자 입맛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늘 맛있고 창의적인 요리를 해낼 수 있다면 내가 쉐프 하지, 글 쓰고 있겠나!
두 사람은 늘 함께 하는 부부작가이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 타이베이 등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도시를 찾아다니며 한 달씩 머무는 삶을 살고 있고 여행자인 듯, 생활자인 듯한 이야기를 담아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를 썼다.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일상을 여행하듯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