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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전국제패’, 대성공!

전국 책방 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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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내가 무심코 “서울에서만 행사를 할 게 아니라 다른 지역도 돌아보면 좋을 텐데” 어쩌고 하는 말을 꺼낸 건 아침저녁으로 시원해진 날씨 탓이었으리라.

언젠가 무슨 영화를 보다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유명한 작가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바닷가 마을의 자그마한 서점을 방문해서 십여 명 정도의 독자를 앞에 놓고 자신의 작품을 낭독한 후에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고 사인을 해주고 기념사진을 찍고 수다를 떠는 장면’을 마주하며 감탄한 적이 있다. 그게 노벨문학상이었는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튼 유명한 작가의 소박한 행보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건 작가의 표정에서 ‘작은 책방을 도와줘야지’와 같은 측은지심적 마인드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는 거다. ‘멀지만 거기에도 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있으니까’라는 사해평등적 기백이 느껴졌을 따름이다. 열 명이면 어떠냐는 듯한 얼굴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작가가 이런 마음가짐이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당연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마음가짐이 이와 같다면 독자로서 뿌듯하지 않을까.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무심코 “서울에서만 행사를 할 게 아니라 다른 지역도 돌아보면 좋을 텐데” 어쩌고 하는 말을 꺼낸 건 아침저녁으로 시원해진 날씨 탓이었으리라. 그냥 지나가듯 한 얘기를 김탁환 작가가 “마침 부산 다대도서관에서 강연이 있는데 가는 김에 특색 있는 작은 책방” 저쩌고 하며 다큐로 받을 줄은 몰랐지만 불현듯 내 머릿속에는 ‘김탁환의 전국제패’라는 제목이 떠올랐고 별 생각 없이 페이스북과 북스피어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리기에 이른 것이다.

 

“9월 1일부터 9월 7일까지 일주일간 전국의 특색 있는 소규모 서점을 돌며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해볼까 해요. 지금부터 신청을 받겠습니다. 행사를 원하는 서점 담당자 분께서 댓글로 연락처와 성함 남겨주시면 제가 연락드릴게요. 저희(김탁환 마포 김사장)의 요구 조건은 간단합니다. (1) 밥을 주셔야 함. (2) 잠 잘 데도 마련해 주셔야 되고요. (3) 강연료는 받지 않습니다. (4) 뭐 굳이 소정의 강연료라도 줘야겠다면 거절하진 않아요.”

 

신청은 금방 마감됐다. 과장이 아니다.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제법 있거나 반 보 가량 늦게 신청한 서점들도 많아서 일주일이 겨우 7일뿐이라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어디를 방문할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각 도에서 가 볼 만한 작은 서점이 겨우 한 군데이거나 아예 없었던 삼 년 전에 비하면 감개무량이라 표현해도 좋을 만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광주 동네책방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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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카페 책방이 삼위일체된 ‘숨’은 2015년 12월에 오픈했다. 다년간 도서관을 운영하다가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를 읽고 서점 창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적당히 벌어 잘 사는 삶’에 관심 있는 분들은 방문해 보시기 바란다. 마침 북스테이(Book stay)도 준비중이라길래 하룻밤을 지내보았는데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텐트 안에서 자는 기분이 아주 그만이었다. 아침은 잉글리쉬 브렉퍼스트식으로 제공된다.

 

통영 봄날의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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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를 만든 출판사는 ‘남해의 봄날’, 서점은 ‘봄날의 책방’, 게스트 하우스는 ‘아트하우스 봄날의 집’이라 부른다는 걸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너무 자주 소개돼서 지겨워요’라는 푸념을 들을 게 뻔하니 반복하진 않겠다. 대신(이라고 할까) 방문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서점 옆에 새로 생긴 카페 ‘안녕 봉수골’에도 들러 반드시 명란젓 파스타를 맛보시라고 진지하게 권해드리는 바이다.

 

괴산 숲속작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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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다음날 『서점은 죽지 않는다』의 저자 이시바시 다케후미를 이 책방에서 만난 건 우연이었지만 진보초의 전설적 책방지기에 관한 그의 최근작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에 대한 추천사를 숲속작은책방의 책방지기가 썼음을 감안하면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다.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의 저자이기도 한 숲속작은책방의 책방지기를 찾아온 다케후미 씨의 첫 질문은 “왜 이 책방에 들어오면 ‘반드시’ 책을 한 권 사야 하는 겁니까”였다. 정녕 모르시겠습니까. 나는 딱 보니까 알겠더구만.

 

대구 커피는책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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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두 번 놀랐는데, 하나는 대구에 북카페를 열고 처음 해보는 저자 강연 행사라는 얘길 들었을 때고 다른 하나는 남편 몰래 저자 강연 행사를 추진한 아내가 『안녕 엄마 안녕 유럽』의 저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다. 『안녕 엄마 안녕 유럽』을 읽고 나면 틀림없이 이 귀여운 부부를 만나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 텐데. 이곳에서 독립출판물을 꾸준히 진열해 두는 이유를 직접 들어보시면 더 좋겠고.

 

경주 노닐다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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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상하기 짝이 없는 북카페가 이번 전국제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솔직히 어처구니 없을 만큼 책도 적었고 기가 막힐 만큼 행사 홍보도 되지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에 걱정이 상당했지만 순식간에 구름 관중이 모여 부흥회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를 연출했고 판매도 최고여서 출발할 때 차에 실은 책을 싸그리몽땅 팔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여고 시절부터 단짝이었던 주인장 두 사람은,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라, 몹시 웃기다. 외모도 박경림 박슬기와 심하게 닮았음.

 

일산 미스터버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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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제패의 마지막 무대로 미스터버티고를 고른 건 당연히 끝나자마자 잽싸게 귀가할 수 있다는 현실도피적 이유도 있었지만 그곳이 문학 ‘전문’ 서점이었기 때문이다. 서점 이름은 폴 오스터의 소설 제목에서 따왔지만 ‘어떻게든 버티자’는 의미가 더 강하다는 건 서점을 한 번이라도 방문해 본 이라면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맥주가 맛있는 이 서점은 주인장이 직접 작성하여 둘러놓는 띠지를 구경하는 재미가 각별한데, 아직은 뭐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다.

 

그리하여 전국제패 기간 동안 만난 작은 책방의 공통된 특징을 요약해 볼짝시면-, (1) 서점마다 차별점이 없어서 그 서점이 그 서점인지 떠올려 봐도 뭐가 다른지 도통 알아채기 어려웠던 숨은그림찾기적 과거 책방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반면 (2) ‘적당히 벌어 하고 싶은 걸 하겠다 내 멋대로 팔겠다’는 신념 비슷한 건 잔뜩 있었는데 (3) 왜 서점을 하는가, 에 대한 대답은 어쨌거나 한결 같았다.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이것은 “왜 전국제패를 시작했는가, 왜 서울을 놔두고 지방까지 내려갔는가, 왜 큰 서점이 아니라 작은 서점이었는가”에 대한 우리(김탁환 마포 김사장)의 대답이기도 하다. 기회가 되면 다음 번에는 더 길게 해보고 싶다. 그때까지 다들 잘 버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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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미남이고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다. 가끔 이런저런 매체에 잡문을 기고하거나 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하거나 출판 강의를 해서 번 돈으로 겨우 먹고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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