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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정대 "모든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마찰음"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가 만난 작가들⑧ 시인 박정대
제가 겪은 청춘은 ‘격렬’하면서 ‘비열’했습니다. 비열하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어떤 용기라고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도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 바쳐 격렬할 필요도, 비열할 필요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지나온 청춘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딱 ‘격렬비열’이더라고요.
한국문학번역원의 9월은 축제의 단장이 한창이다. 대학로의 9월 마지막 주를 화려하게 수놓을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 축제 참가 작가들은 어떤 표정일지 궁금해진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박정대 시인은, 인터뷰 질문에 한마디도 안 해서 곤란하게 만들겠다는 반 협박이 무색하게 이야기가 술술 끊이지 않는다.
곧 새 시집이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추석 전후로 나올 예정입니다. 제목은 『그녀에서 영원까지』로 정했는데, 시집에서 나오는 ‘그녀’는 인류의 대표라고 할 수 있어요.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처럼 ‘그녀’를 사랑하기 위해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천사의 관점에서 썼습니다. 이 주제는 제가 첫 시집에서부터 줄곧 써 내려왔던 이야기입니다. 첫 시집에서의 이야기가 다음 시집에서도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도록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제 시를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제 시집을 계속 읽어 왔던 독자라면 “반갑다! 박정대”하실 겁니다(웃음).
2011년에 출간된 시집 『모든 가능성의 거리』와 『삶이라는 직업』은 각각 천사와 인간의 시각으로 쓰였습니다. 이 두 시집처럼 조금 더 새롭게 해보고 싶은 시도가 있으신지요.
새로운 시도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시집에 「의기양양」이라는 제목의 아주 긴 시를 실었습니다. 거기에 ‘계속 걷기 위한 삼중주’라는 부제가 붙어있지요. 이전에 발표했던 5편의 시와 그 영어 번역본을 함께 실었고, 시 해석도 덧붙여 ‘삼중주’인 셈인데요. 제 시를 영역하면 느낌이 또 완전히 달라져서, 독자와 함께 느끼고 싶었어요. 이미 발표했던 시들이지만, 충분히 하나의 작품으로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새로운 의미가 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제 나름대로 의미도 있었고,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는 작가님의 시집 제목이기도 하고, 시에 등장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라! 분명 그곳은 아름다운 곳일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최서단에 ‘격렬비열도’라는 이름의 섬이 있어요. 제 시 때문에 그곳을 알게 되었다는 독자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곳의 실제 모습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는 ‘격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비열’하기도 한 청춘의 한 자락을 말하는 것이죠. 제가 한참 청춘의 시절을 통과하고 있을 때, 제가 겪은 청춘은 ‘격렬’하면서 ‘비열’했습니다. 비열하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어떤 용기라고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도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 바쳐 격렬할 필요도, 비열할 필요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지나온 청춘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딱 ‘격렬비열’이더라고요.
유독 ‘체 게바라’에 여러 지면을 할애하셨어요. 물론 시집『체 게바라 만세』에서는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도 하고요. 이쯤 되면, ‘체 게바라’가 작가님의 페르소나라고 보아도 무방할까요?
체 게바라가 누구에게는 ‘혁명의 투사’겠지만, 저에게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60년대를 살던 사람 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인간적인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누가 그렇게 무모한 꿈을 꾸겠어요? 그란마호라는 작은 배를 타고, 백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한 나라를 전복시키러 가는 쿠바혁명 자체가 무모하고 비현실적이잖아요. 그럼에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사람인 거죠. 그래서 그에게 헌사도 하고, 시집의 제목에서 만세를 외치기도 하는 겁니다.
따뜻한 인간 ‘체 게바라’에 대한 만세이군요! 그래서 그런지, 작가님의 시는 ‘혁명’이나 ‘노동’과 같은 과격한 시어가 가득하지만, 막상 시를 들여다보면 굉장히 아름답고 낭만적이에요.
그런 강한 시어들은 의도적으로 쓴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쓰는 정치적인 용어들을 시적으로 바꿔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제 시에서 말하는 ‘혁명’이란 정치적 혁명과는 거리가 멀어요. 저에게 혁명이란, 담배 한 대 맛있게 피울 수 있는 여건을 제 힘으로 마련하는 것, 그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피가 철철 흐르는 혁명과는 거리가 멀죠. 궁극적으로는 ‘감정혁명’을 꿈꾸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시인이 펜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조금 더 많은 이들에게 감정적인 공감, 어떤 울림을 주는 것이죠.
시인 박정대에게 ‘체 게바라’만 있느냐? 아닙니다. ‘장만옥’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물론 단 한편의 시이지만, 작가님의 작품 중에 「장만옥」이라는 시를 가장 아름답다고 꼽는 사람들이 많아요. 배우 장만옥의 팬이신가요?
멀리 가려다 쉬고 싶은 길 위에 문득 너는 있다
꽃잎 진 복숭아나무들이 긴 목책을 이루어
푸른 잎들이 오래도록 너를 읽고 있는 곳에
꽃잎 진 내 청춘의 감옥,
복숭아나무 그 긴 목책 속에
(「장만옥」에서)
「장만옥」이라는 시를 쓸 때, 그녀가 출연한 수많은 영화 가운데 어느 한 편에서의 어떤 한 장면을 떠올렸어요. 그 외에 그녀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지는 못하죠. 팬이라고 하기에는 낙제점일 것입니다(웃음). 어쨌든, 그 모습이 제가 살면서 겪었던 한 여자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시의 제목으로 삼았어요. 사실을 말씀 드리자면. 그 시는 제 외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쓴 시입니다. 많은 분들은 연애시로 받아들이시지만요(웃음).
작가님의 시에는 유난히 북방의 이미지가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고원’, ‘몽골’ 그리고 ‘위구르’까지. 이러한 북방의 이미지들이 궁금합니다. 작가님 스스로 북방인의 후예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TV 다큐를 볼 때에도 북방의 유목민 이미지가 나를 잡아 끌죠. 그런 북방의 이미지들을 보면 기시감 같은 것을 느낍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굉장히 친숙하고 편한 인상을 받는다면, 아마 전생에 살았던 곳을 발견한 걸까요?(웃음) 그래서인지, 북방에 대해 ‘동경’이 아니라, 진짜 고향을 그리워하듯 ‘향수’를 느낍니다.
북방의 유목민 같다가도, 파리의 골목길에서 마주칠법한 예술가처럼 느껴지기도 하십니다. 파리 여행도 즐거우셨다고 들었어요.
파리 여행은 몇 번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가기 전부터, 워낙 프랑스 영화와 문학을 좋아했어요. 제가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는데, 장난 삼아 나는 ‘국어불문학과’ 다닌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웃음). 대학시절에는 르 클레지오나 로맹 가리의 책들을 끼고 살았죠. 프랑스 여행을 몇 번 다녀왔는데, 그 중 한 번은 묘지순례를 다녔어요. 예술가들이 잠든 파리의 3대 묘지는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죠. 제가 동경하던 작가들이 묻혀있는 곳에 서니, 굉장히 설레더군요. 불멸의 천재들을 만나 함께하는 것처럼 가슴 떨리는 경험이었습니다. 작가들의 생가를 찾는 것과는 또 다른 질감의 경험인 것 같아요.
작가님의 시는 선율로 가득 차 있는 느낌입니다. 심지어 시 「체 게바라 만세」에서는 ‘선반에 쌓여있는 약간의 먼지’도 음악이라고 하셨어요. 고품격 음악방송에서나 할 법한 질문을 드립니다(웃음). 시인 박정대에게 ‘음악’이란?
모든 것! 악기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도처에 존재해요. 스스로 악기임을 인식하는 세상의 모든 존재가 이미 한 마리의 악기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음악은 모든 것이라고 답할 수밖에! 인터뷰를 하면서 끄덕이는 고갯짓도, 때로는 침묵마저도 모두 음악이 됩니다. 제가 말하는 음악은 모든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마찰음입니다. 세상의 어떠한 사소한 소리도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면 음악이죠.
한번은 글을 쓰는 친구들과 난상토론을 벌인 적 있습니다. 사람들의 오감 중 태초에 어머니의 뱃속에서 처음으로 느끼는 감각이 무엇인가. 가장 본질적인 감각은 무엇인가에 관해서 말입니다. 어쨌거나 결론은 ‘문학’은 그 근처에도 못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자를 익힌 다음에야 가능한 것이 문학이니까요. 음악은 일단 무조건 다섯 후보 안에는 들잖아요. 결론은 이거죠. 문학이 예술에 근접이라도 하려면 음악 쪽으로 가야 한다!
시인을 일컬어 ‘전직 천사’라고 말하시는데요. ‘전직 천사’가 되기 위해서라도 꼭 시를 써야할 것만 같습니다(웃음). 일반인들도 시 쓰기를 가까이 하라는 뜻인가요?
모든 일반인들도 시를 써야 전직 천사가 되고,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시를 쓰는 마음, 그리고 시를 읽는 마음만 있으면 그 사람이 이미 ‘전직 천사’이고,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글을 잘 쓸 수는 없죠. 하지만 시를 꼭 직접 쓰지 않아도, 누군가가 쓴 시를 읽으려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시인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영화나, 글을 볼 때 ‘나랑 어쩜 이리 똑같을까’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런 경우에, 그건 사실 내가 쓴 거나 다름없어요. 다른 이가 나를 대신해서 먼저 쓴 것일 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시인이란 누군가의 시를 대신 써줄 수 있는 ‘전직 천사’인 거예요.
다른 생업을 가진, 시인으로서 시 쓰기가 버겁게 느껴진 적은 없으신가요?
한국사회에서 시인으로 사는 것은 정말, 불굴의 의지 없이는 불가능해요. 전업시인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이 직장을 다니면서 시를 쓰죠.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분리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잖아요. 까딱 잘 못하면 시인으로도, 직장인으로도 설 자리를 잃을 수도 있어요. 직장인 박정대는 퇴근 후에 이른 저녁을 먹고 일찍 잠을 청합니다. 그리고 남들이 잘 때 시인 박정대는 깨어나 시를 쓰거나, 음악을 듣죠.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의 주제는 ‘잊혀진, 잊히지 않는’입니다. 작가님도 그런 기억이 분명 있을 텐데요, 축제의 주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이번 작가축제의 주제는 포괄적인 주제라서, 작가들로부터 다양한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누구나 잊지 못하는 기억은 있죠. 물론 잊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듯이, 잊어야 하는 악몽 같은 기억에 대해서도 잊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 가운데, 기억으로 남는 것은 결국 취사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버릇이 있잖아요. 어떤 기억을 남겨두느냐가 바로 그 사람을 규정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억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기도 하고, 그 사람의 체질이기도 합니다. 그런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결국 ‘나’를 형성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가 9월 마지막 주, 대학로에서 그 막을 연다. 축제 준비가 한창인 8월의 어느 날. 설렘으로 잠을 설치는 소풍 전야처럼, 9월의 작가축제가 문득 궁금해진다. 작가축제에서 만나 볼 작가들의 릴레이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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