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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계속되는 이준규

시집 『7』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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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이준규의 시는 내가 사랑하는 시인들이 가닿았던, 자기(만)의 극지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놀라운 한 발짝이 처음으로 어딘가에 땅을 내딛은 자리가 바로 『7』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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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거절하면 영원히 시를 쓸 수 있어요.”

 

대학 수업 도중 스승이 지나가듯 던진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 이후로 끝나지 않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시란 무엇이기에 자신을 거절하며 영원해지는 것일까. 영혼을 버리고, 자신을 버리고서야 도달 가능한 시의 지평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시라는 독특한 1인칭 예술은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얽매이고야 만다. 자신을 거절하는 것도 긍정하는 것도 모두 자신에게 얽매이는 일이겠지. 시란 정말이지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는 예술이고,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좀처럼 진보하지 못하는 예술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사랑한 여러 시인들은 모두 그 지점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시와 끊임없이 싸우는 이들이었다. 시가 아름답다거나 감동적이라거나 그런 것은 조금도 믿지 않고, 그저 시라는 양식과 똑바로 마주 보고 쉼 없이 싸워나가는 이들이었다. 시가 1인칭 예술이라는 사실, 시가 ‘나’로부터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장르라는 사실, 내가 사랑한 시인들이 궁극적으로 싸운 것은 바로 그 사실들이었다.

 

그리고 이준규 또한 그렇다. 내가 사랑하는 시인, 그리고 시라는 양식의 한계와 싸우는 시인. 누가 내게 이준규의 시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이준규의 시에는 이준규 밖에 없다, 고 답하리라. 그것이 그가 시와 싸우는 방식이다. 아마 처음 듣는 이들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집 『7』의 제목을 생각해보면 조금은 명확해진다. 7, 그것은 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 7, 그것은 이준규의 7번째 시집이라는 뜻이다.

 

나는 방에 있다. 비가 내린다. 비는 내린다. 비가 내리고 있다. 피곤하다. 비가 내린다. 나는 유리문을 닫았다. 나는 내가 닫은 유리문을 다시 열고 싶다. 지금 내리는 비는 가을비다. 지금 내리는 비는 차다. 지금 내리는 비는 가을에 내리는 차가운 비다. 그러니까 지금 내리는 비는 찬비다. 나는 우울하다. 어떤 빛은 지나간다. 그 빛은 파랗고 빨갛고 주황이고 보라고 파랑이다. (중략) 비는 내려오고 있다. 나는 네게 말한다. 저기로 갈까, 아니면 저기로 갈까, 그것도 아니라면 저기로 갈까, 비는 그리고 내리고 있다. 비는 내리고 있다. 이 방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비는 내리고 있다. 귀뚜라미가 운다. 비가 내린다.

-7~8쪽

 

위의 인용은 『7』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가을비가 내리는 저녁의 방에서 볼 수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 정도가 될 테지만, 그 내용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시에서는 비도 저녁도 방도 너도 중요하지 않다. 이 시에는 은유가 없고, 중심이 없다. 대상이 없고, 목적이 없다. 그저 문장이 이어질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꾸 이어지기만 하는 문장들 속에서 사물과 언어들은 점차 사라져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외로움에 대한 시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어떤 슬픔이나, 삶의 비가역성이나 아무튼 다른 어떤 무엇에 대한 시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읽을 수 있을 뿐이다. 그저 그 순간, 가을비가 내리는 저녁의 방에서 시 속의 ‘나’가 느끼고 보는 것들, 그것들이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져갈 뿐인 것이다. 그리하여 시 속에는 ‘나’만이 덩그러니 남겨진다.

 

이처럼 『7』은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면서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하나의 거대한 장시집이라고도 할 수 있고, 혹은 여러 짧은 산문시들이 제목을 붙이지 않은 채 연달아 이어지는 산문시집이자 연작시라고도 할 수 있다. 혹은 일기라고도, 혹은 그냥 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구분이 중요하지는 않으리라. 오히려 어떤 종류의 글쓰기에도 쉽게 포섭되지 않는 글쓰기라는 그 사실이 더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나’가 글을 쓴다는 그 행위이며, ‘나’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그 감각이다.

 

즉 그의 시에서 나타나는 ‘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시적 자아가 아니다. 그 ‘나’는 전통적인 시적 자아에 채 미치지 못하고, ‘나’ 이전의 존재 혹은 ‘나’ 바깥의 존재로서의 쓰는 이, 즉 이준규를 암시한다.

 

 

겨울. 겨울밤. 조금 다른. 먼지 같은. 겨울. 밤. 겨울밤. 겨울밤. 먼지 같은 눈이 날리지 않은. 조금 다른 겨울밤. 나는 앉아 있고. 너는 누워 있고. 나는 역시 앉아 있고. 겨울밤. 새들도 없는. 겨울밤. 달도 없는. 나는 서쪽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너는 침대에 누워 있고.

-69쪽

 

그의 시에는 언제나 반복이 있다. 반복과 변주의 흐름이 그의 시를 만드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다음 말이 앞의 말을 반복하거나 번복함으로써, 언어의 의미는 점차 약화되고 무화한다. 그리고 이 반복들을 통해, 지워진 의미 사이에서, 그 반복을 애써, 그러나 아무 뜻 없이 수행하는 자, ‘나’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 의미를 지워가는 텍스트 안에서 시적 자아로서의 ‘나’에게는 반복을 수행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나’ 이전에 주어진 형식에 가까운 것이다. 즉 이 반복은 ‘나’ 이전의 존재로서의 쓰는 이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움직임인 것이다.

 

이 반복의 형식은 매우 의식적이고 작위적이다. 이준규는 이러한 작위를 통해 일상을 집요하게 불러들인다. 거의 일기에 가까우면서도 결코 일기로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 가까스로 시이면서 거의 시가 아닌 이 텍스트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그 작위에 있다.

 

앞서 말했듯이, 시는 언제나 ‘나’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나’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의미’들로부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준규는 그 불가능을, 반복을 통해 의미를 약화하며 ‘나’만을 남김으로써, 그리고 그 약화를 통해 ‘나’ 이전의 쓰는 이, 즉 이준규를 끊임없이 가리킴으로써 ‘나’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는 ‘나’를 벗어나 이준규에 자꾸 도달하려 한다. 물론 이준규에 도달한다고 해서, 사실 ‘나’라는 관념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 벗어남은 시의 불가능한 꿈이니까. 그러나, 그렇기에, 이준규 시의 이준규는 영원히 계속된다.

 

내 생각에, 이준규의 시는 내가 사랑하는 시인들이 가닿았던, 자기(만)의 극지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놀라운 한 발짝이 처음으로 어딘가에 땅을 내딛은 자리가 바로 『7』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이 다소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내가 이토록 이준규의 시를, 『7』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든 당신이 이 책의 소중함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서, 애타는 마음에 자꾸 말이 복잡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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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이준규 저 | 울리포프레스
『흑백』,『네모』,『반복』등의 작품집을 펴낸 시인 이준규의 또 하나의 시집이다. 그의 시는 언제나 새롭다. 처음 책을 집어드는 순간부터 신비롭다. 책 제목이 무엇인지 눈에 불을 켜고 한참을 찾다가, 한 발짝 멀어진 순간 그림 같기도 하고 글자 같기도 한 모양새로 쓰인 '7'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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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인찬(시인)

시인. 시집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와 산문집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등을 썼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7 칠

<이준규> 저12,000원(0% + 5%)

『흑백』,『네모』,『반복』등의 작품집을 펴낸 시인 이준규의 또 하나의 시집이다. 그의 시는 언제나 새롭다. 이번 시집 역시 그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처음 책을 집어드는 순간부터 신비롭다. 책 제목이 무엇인지 눈에 불을 켜고 한참을 찾다가, 한 발짝 멀어진 순간 그림 같기도 하고 글자 같기도 한 모양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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