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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사 발렌티나>의 글로리아와 <고래고래>의 호빈 사이 배우 박준후
<까사 발렌티나>의 글로리아와 <고래고래>의 호빈 사이 눈에 딱 띄는 배우 박준후
지금처럼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작품으로 무대에 서고 싶고, 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이번에 연극을 하면서 느낀 건데 연극이 확실히 어렵지만 배울 것도 많아서 앞으로도 연극 무대에는 많이 서보고 싶고요. 일단 글로리아와 호빈으로 관객들과 재밌게 만나야죠
공연시장이 확대되면서 예전에 비해 작품도 많아지고 배우도 많이 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연을 취재하는 기자지만 관람하지 못한 공연, 잘 모르는 배우도 많은 게 사실이죠. 특히 요즘은 한 배역에 더블, 트리플 캐스팅은 기본이라 ‘저 배우들이 만나면 어떤 시너지를 낼까?’ 궁금한 무대는 더욱 많아졌지만, 한 작품을 보고 또 보는 이른바 회전문 관객들과 달리 기자는 결국 인터뷰가 잡힌 배우의 공연을 우선적으로 보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찾아간 무대에서 새로운 배우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뛰어난 외모’ 때문일 수도 있고, ‘연기나 가창력’ 또는 ‘전체적인 분위기’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한 배우가 눈에 꽂히면 남은 무대는 내내 그를 쫓게 되죠. 그리고 인터미션 때 재빨리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리스트에 올린 뒤 다음 공연이 잡히면 바로 인터뷰를 요청하는 겁니다. 유명세 때문이 아니라 무대에서 눈에 띈, 그 공연을 본 사람만 찾아낼 수 있는 인터뷰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연극 <까사 발렌티나>에서 단연 눈에 띄었고, 뮤지컬 <고래고래>로 더 많은 관객들의 눈에 꽂히게 될 배우 박준후 씨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봤습니다.
“저는 아직 공연 전인데 형님들 무대 한 번씩 보려고 왔어요. 사실 걱정이죠. 글로리아와 호빈이는 캐릭터가 너무 다르다 보니까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크로스 드레서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까사 발렌티나>에서 마이클과 글로리아로 열연 중인 박준후 씨는 지난해 초연 이후 대학로로 무대를 옮겨 재연된 뮤지컬 <고래고래>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습니다. 연극 <까사 발렌티나> 공연이 없는 날에도 자신의 <고래고래>첫 무대에 앞서 호빈 역에 함께 캐스팅된 김재범, 최수형 씨의 공연을 보기 위해 대학로를 찾았습니다.
“(김)재범이 형은 정말 잘 하시죠. 초연 때도 하셨잖아요. 찌질하면서도 귀엽고. 반면에 (최)수형이 형은 상남자 같다고 해야 하나? 가장 남성적이에요. 저는 아직 공연 전이라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모르겠는데 저만의 호빈이를 보여드려야죠.”
그러게요, 두 인물이 달라도 너무 다르네요. 글로리아가 똑 부러지고 할 말 다하는 성격이라면 호빈이는 만년 단역이지만 친구들 앞에서만은 허세가 극에 달하죠. ‘찌질’과 ‘허세’로 대변되는 인물인데 실제로는 어느 쪽에 가깝나요(웃음)?
“글로리아를 연기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어요. 외적인 면도 그렇지만 말투나 몸짓도 차갑고 똑 부러지게 표현하기 위해서 연습을 많이 했어요. 그런 점에서는 호빈이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또 필요한 경우에는 글로리아처럼 말하기도 해요(웃음). 글로리아나 호빈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안은 더 여리고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연극 <까사 발렌티나>를 보고 여장한 글로리아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예쁘다기보다는 우아하고 도도하다고 할까요? 혹 여장 남자배우가 필요한 다른 작품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나요(웃음)?
“제가 못할 것 같아요(웃음). 남자배우가 여장을 한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주위에서 좋은 말씀은 해주시는데 제가 힘들어요. 지인들도 괴로워하더라고요. 제 아내는 연극을 아직 안 봤어요(웃음). 그런데 작품은 굉장히 좋아요. 솔직히 처음에 대본을 받고는 세 장을 못 넘겼어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크로스 드레서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도 어렵고, 번역체라서 공감이 안 되는 부분도 있었고. 그래서 이태원 숍에도 가보고 나름 노력을 많이 했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시야가 많이 넓혀진 것 같아요.”
연극 <까사 발렌티나>가 소수자들의 이야기라면 뮤지컬 <고래고래>는 꿈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고등학교 시절 밴드로 활동했던 영민과 민우, 호빈, 병태가 10년 뒤 각자의 생활을 뒤로 하고 다시 뭉쳐 목포에서 자라섬까지 버스킹에 나서는 모습을 인디밴드 몽니의 노래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극중 호빈이도 배우를 꿈꾸는데, 박준후 씨도 배우를 꿈꾸던 그 시절 생각이 많이 났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호빈이는 왜 안 풀릴까 생각해봤어요. 일단 연기를 못하는 것 같고(웃음), 어쩌면 사회성이 부족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상황에 잘 대처하지도 못하고, 사람들한테 돌려서 말하는 것도 못하고, 사실 마음은 그렇지 않고 의리 있는 사람인데 말이죠. 저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좀 자유롭게 살았고(웃음), 요리를 하고 싶어서 관련 일을 배우기도 했어요. 연기에도 관심은 있어서 친구 따라 대학에서 뮤지컬을 전공하게 됐는데, 그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200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했을 때 (김)재범이 형도 같은 무대에 있었죠. 그런데 혼자 열심히만 했나 봐요. 공연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건데 어울릴 줄도 몰랐고, 사람들을 사귀지도 않았거든요. 군대 다녀왔더니 불러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고요. 많이 힘들었죠. 그래서 무대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부터 다시 배웠던 것 같아요.”
이름도 좀 더 잘 풀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꾼 건가요(웃음)? 대학로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이름을 바꾼 배우들이 많은데, 인기 많은 김수로 프로젝트 작품에 꾸준히 참여하고 계시니 잘 풀리고 있는 거죠?
“이름은 장모님이 어딘가에서 얘기를 듣고 오셔서. 개명까지는 내키지 않아서 예명으로 쓰고 있는데, 아직도 다들 ‘영필’이라고 불러요(웃음). 그런데 이름 바꾸고 안 좋은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좋은 작품에 계속 불러 주시고. 제가 워낙 쟁쟁한 배우들과 한 무대에 서잖아요. 같은 인물에 함께 캐스팅될 때도 있고. 그런데도 기죽지 않고 할 건 한다고 좋게 평가해 주시더라고요.”
배우로서 외모, 연기, 음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쟁쟁한 배우들과 한 작품에서, 또는 같은 인물로 한 무대에 서고 계신데, 배우로서 또 어떤 꿈을 꾸고 계시나요?
“대단한 꿈은 없어요. 저는 사생활에 영향을 받을 만큼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고, 어떤 무대에 꼭 서고 싶다는 욕심도 없어요. 지금처럼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작품으로 무대에 서고 싶고, 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이번에 연극을 하면서 느낀 건데 연극이 확실히 어렵지만 배울 것도 많아서 앞으로도 연극 무대에는 많이 서보고 싶고요. 일단 글로리아와 호빈으로 관객들과 재밌게 만나야죠(웃음).”
기자에게는 <까사 발렌티나>의 한껏 도도한 글로리아가 머리에 남아 있었으나, 카페에서 만난 박준후 씨는 글로리아와는 전혀 다른 표정과 말투로 자신의 얘기를 쏟아냈습니다. 그래서인지 글로리아는 그야말로 박준후 씨가 만들어낸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 사람이 어떻게 그 인물을 연기했을까?’ 이렇게 배우는 대본에 쓰인 캐릭터를 무대 위에서 입체적으로 창조해 내지만, 캐릭터가 배우를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가 만든 글로리아를 통해 관객들 역시 배우 박준후 씨를 더욱 뚜렷하게 인식하게 됐으니까요. <까사 발렌티나>에서 가장 멋진 인물이 글로리아라면 <고래고래>에서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인물은 호빈이죠. 박준후 씨가 찌질하고 허세 가득한 호빈이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호빈이가 박준후 씨를 또 얼마나 관객들에게 각인시킬지 궁금하지 않나요? 연극 <까사 발렌티나>가 9월 11일까지, 뮤지컬 <고래고래>가 11월 13일까지 공연되니 한동안은 박준후 씨의 변신을 즐겁게 확인해 보시죠. <고래고래> 무대를 가득 채우는 몽니의 노래와 재밌는 커튼콜도 놓치지 마시고요.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