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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지 마라

어떤 분야의 글을 쓰느냐에 따라 단어 선택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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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책에서 익힌 라틴어 어원의 어려운 단어들은 많이 알지만, 막상 생활 영어에 쓰이는 어구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책에서 배운 어려운 어휘가 쉽고, 배우지 않은 쉬운 구절들이 어려운 역설이 벌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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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친구 중에 브랜든이란 사람이 있다. 한국어를 꽤 해서 종종 한국어로 대화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맥주잔이 오가고 대화가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브랜든의 낯선 한국어가 예기치 못한 웃음을 자아내곤 한다. 치과에 가서 치아를 ‘발본색원’했다느니, 자신이 잠깐 도와주고 있는 어떤 회사의 사장이 이상한 사람이라서 회사가 ‘백척간두’라느니, 혹은 자신이 누군가에게서 커피를 대접받고 ‘결초보은’하겠다고 말해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느니, 하는 것이다. 그가 사용한 한국어가 분명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왠지 상황에 비해 과장되고 어색하기 때문에 듣는 우리는 즐겁기도 하고, 우리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기회를 얻기도 한다. 왜 그럴까? 그는 우리말 고사성어를 상당히 많이 알고 있다. 종종 필자보다도 더 많은 고사성어, 특히 사자성어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다. 다만 그가 모르는 것은 그 많은 고사성어들이 다소 고답적이고, 책(?)스럽고, 일상회화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그럴 때면 필자에게는 불현듯 오래 전 유학생활에서 겪은 일들이 떠오르곤 했다. 왜 그곳 교수님이나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필자가 책에서 배운 영어와 다른 것일까? 가령 그들은 필자가 책에서 understand라고 배운 단어는 잘 사용하지 않고 주로 ‘get it'이란 말을 사용했다. 더욱 당황스런 것은 이런 일이었다. 필자가 지도교수에게 처음으로 질문거리가 생겨서 약속을 잡으려고 연구실 문을 노크했다. 교수가 나오더니 “Will you be hanging around for a moment around here?"이라고 하기에, 필자가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교수는 똑같은 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되풀이했다. 아마도 필자가 외국인이라 못 알아듣는가보다 하고 천천히 말하는 것 같았다. 교수님이 아주 천천히 말했으므로 필자는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문제는 필자가 도저히 hang around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필자가 단어를 외웠던 <Vocabulary 22000>이니 <Vocabulary 33000>같은 책이나 GRE를 준비하던 학습서에는 그런 단어가 없었던 것 같았다. 마침내 교수님이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손까지 써가면서 ”Youngjun, wait here for a second"라고 하셨고, 필자는 그제서야 알아들었다.
 
며칠 후, 필자의 아내가 튜터를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해서 웃음을 자아내는 일이 벌어졌다. 그 튜터는 미국의 역사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해주고 맨 마지막에 "Does it make any sense to you?"라고 했다. 아내는 오히려 설명 내용은 모두 알아들었는데, 이 말을 못 알아들었기 때문에 “No, I don't understand"라고 했고, 튜터는 전에 설명한 내용을 또 다시 되풀이했다. 마지막에 또 ”Does it make any sense to you?"라고 했고, 아내는 다시 “No, I don't understand”라고 했다. 이런 일이 서너 번 쯤 반복되었고 마침내 그 튜터는 마지막 문장을 되풀이하지 않고 그날 수업은 그런 식으로 끝났다. 아내가 저녁에 필자에게 도대체 그놈의 make sense to you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다. 그게 understand와 같은 의미라고 말해주자 아내는 정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웃음을 터뜨렸었다. 그러니까 튜터가 설명한 내용은 다 알아들었는데, 마지막에 “이해가 됐어?”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필자나 필자의 아내만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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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귀국하여 만난 많은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우리나라의 대부분 학습자들에게 상황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책에서 익힌 라틴어 어원의 어려운 단어들은 많이 알지만, 막상 생활 영어에 쓰이는 어구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책에서 배운 어려운 어휘가 쉽고, 배우지 않은 쉬운 구절들이 어려운 역설이 벌어지는 것이다. 필자의 친구 브랜든이 고답적인 우리말 고사성어를 생활에 적용하여 웃음을 자아낸 것처럼, 우리도 잘 쓰이지 않는 책스런(이를 bookish라고 한다) 영어를 사용하여 웃음을 자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충치가 있는 이를 빼는 것은 라틴어 어원을 따라  eradicate라 하지 않고, 그냥 take out을 쓰면 된다. 안과의사는 oculist란 어려운 말보다는 그냥 eye doctor라고 하는 편이 더 낫다. 그러니까 사용 목적에 따라 배우려는 영어의 성격을 고려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훈련하는 사람은 자신이 쓰려는 글이 어떤 분야의 어떤 성격을 가지는 글인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영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일상생활의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은 미국 드라마나 아이들이 보는 쉬운 책들(chapter book이라 불리는)을 권하고 싶다. 우연한 기회에 미국의 초등학교 3학년 이하가 보는 이야기책의 구절들을 조사해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우리나라 영어 교사나 교수들이 모를법한 구절들이 두세 쪽에 한 번씩 등장하고 있었다. 실제로 필자가 서너 명의 교사와 교수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들은 그 문장의 의미를 하나같이 모르고 있었다. 이는 브랜든과 마찬가지로 외국어를 배우는 모든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현상이긴 하다.
 
필자처럼 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많은 사람들은 조기유학을 한 젊은 친구들이 사용하는 일부 어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어휘들은 사전에 나온다기보다는 생활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멋있게 쓴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적재적소에 알맞은 어휘를 쓴다는 것이기도 하다. 『글쓰기의 요소』에서 스트렁크가 강조한 것도 그런 점이다. 철자를 틀리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잘못 쓰인 단어가 엉뚱한 의미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고, 잘못 쓰인 구두점도 섬세한 의미 차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엄밀함을 지킨다는 것이다. 굳이 동일한 뜻을 가진 어휘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어휘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선택된 어휘의 적절성, 구두점의 적절성, 강약의 적절성, 상황의 적절성 등. 이 모든 면에서 엄밀성이 지켜졌을 때 우리는 그 글이 잘 쓰인 글이라고 최종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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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요소

윌리엄 스트렁크 저/장영준 역 | 윌북(willbook)
정확한 문장을 쓰는 핵심 규칙을 명쾌하게 정리한 책이다. 영미권 사람들이 잘 쓴 영어와 잘못 쓴 영어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책으로,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도서’이며, 스티븐 킹, 댄 브라운 등 대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꼽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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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장영준

국내 최고의 촘스키 전문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논문 집필 당시 세계적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에게 논문 지도를 받으며 그의 제자로 이름을 알렸다. MIT와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 방문학자로 활동했고, 중앙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현재는 오르고라는 필명으로 활동한다. 저서로는 『한국어가 사라진다면』 (공저), 『언어의 비밀』 , 『그램그램 영문법 원정대』 시리즈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촘스키, 끝없는 도전』, 『번역과 번역하기』, 『영어에 관한 21가지 오해』, 『최소주의 언어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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