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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아닌 오롯이 한국 : <부산행>

영화를 통해 보는 한국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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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은 2016년 한국이 우리에게 어떤 곳인지를 거듭해서 묻는다. 희망을 믿어보고 싶은 누군가의 손과 맞잡고 동행하는 것이 ‘불신’인 곳은 아닌지, 나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살려달라는 사람을 위해 손을 내밀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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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것처럼 <부산행>은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다. 예상되는 만큼 무섭고 잔인하다. 놀랄만한 장면도 있고, 보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장면들도 나온다. KTX 열차처럼 이야기는 숨 돌릴 틈 없이 질주한다. 한국형 좀비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다. 상업영화가 품고 있는 감동의 공식도 어떻게 보면 전형적이다. 상투적인 인물 설정도 있고 예측 가능하고 낯 뜨거운 장면들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이 영화 느낌이 남다르다. 가장 끔찍하고 무서운 순간이 슬그머니 다른 방식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은근슬쩍 힌트를 주긴 하지만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게 된 이유가 불분명하고 좀비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데는 이유도 목적도 없다. 찬찬히 영화를 보고 있자면 그 모양이 기괴하게 변질된 채, 이유도 없이 질주하는 좀비 떼가 영화 속 괴물이 아니라, 현실의 우리 모습처럼 보이는 순간이 온다. 비로소 소름 돋는 진짜 공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5년 전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을 본 이후,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실사영화는 어떨지 궁금했다. <부산행>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정답지 같은 영화다.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연상호 감독은 아주 극단적이고 잔혹한 방식으로 우리나라 사회의 지옥 같은 속살을 칼날처럼 헤집으면서 질주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2011년 <돼지의 왕>, 2012년 <창>, 2013년 <사이비> 연작을 통해 학교폭력, 군대폭력, 그리고 종교 문제를 그렸다. 뚜렷한 선인도 악인도 없이 모두가 비겁하고 모두 조금씩 나쁘다. 그는 광기 어린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누가 더 나쁜 사람인가에 대한 일종의 지옥도를 그린다. 


결론적으로 말해 <부산행>은 그의 전작들과 괘를 같이하는 영화다. 작위적이고 뻔한 설정이 있긴 하지만 더 큰 이야기가 앞선다. 과하지 않은 복선들이 이야기와 맞아 떨어지면서 톱니가 잘 맞물려 돌아간다. 장르 영화의 관습 안에, 혹은 장르의 클리셰 안에 2016년 한국의 이야기를 녹여내는 이야기 장악력은 앞선 애니메이션 못지않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한국을 빗대어 비판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방식도 상징적이다. 그래서 <부산행>은 ‘한국형’ 좀비 영화가 아니다. 그냥 한국이다. 


아내와 떨어져 사는 펀드 매니저 석우(공유)는 바쁘고 일에 지쳐 하나뿐인 딸을 돌보지 못하는 무심한 아빠다. 딸 수안(김수안)의 생일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아내가 있는 부산행 KTX에 마지못해 오른다. 부산으로 가는 동안 전국은 좀비 바이러스로 아수라장이 된다. 한 명의 좀비가 확산시킨 바이러스 때문에 열차는 순식간에 좀비가 장악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밀폐된 공간에서 좀비와 대치해야 한다. 오직 마지막 희망은 초기 대응에 성공해 무사하다는 부산으로 가는 것이다. 좀비들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도시가 폐허가 되는 순간에도 언론과 정부는 거짓말로 국민을 안심시킨다. 국가가 보호하지 않는 일상의 사람들은 오직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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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은 좀비 바이러스라는 소재를 이용해 정부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혹은 공권력이 국민을 절대 지켜주는 법이 없는 현재를 빗댄다. 그래서 질주하는 KTX는 2016년 현재 한국을 그대로 반영하는 공간이 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좀비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이유도 영문도 모른 체, 살아있는 사람들을 공격한다. 연상호 감독은 좀비와 사람들의 생존 게임을 다루면서 소름 끼치게 섬뜩한 순간을 직조해 낸다. ‘사람’이라고 불리는 우리가 사실은 괴물이라 불리는 좀비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문득 인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공유와 마동석, 정유미, 최우식 등 주연배우들은 자칫 어수선할 수도 있는 좀비와의 사투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준다. 사소한 호흡, 눈빛으로 절절한 사랑과 감정을 전하는 진심 덕분에 숨 돌릴 틈 없이 내달리는 이야기 속에 인간에 대한 믿음이 그래도 구원이라는 메시지를 믿고 싶게 만든다. 특히 적당히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우리 모습을 대변하는 석우 역할의 공유는 급박한 이야기 속에서도 갈등하는 감정의 선을 섬세하게 놓치지 않는다. 아주 작은 배역이지만 예수정과 박명신의 호흡도 끈끈하고 설득력이 있다. 철저하게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김의성의 배역은 다소 작위적일 수도 있는데, 안정적인 연기로 밉상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그리고 이 영화의 발견, 김수안은 믿어주고 싶고 지켜주고 싶은 희망의 아이콘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난다. 

 

<부산행>은 2016년 한국이 우리에게 어떤 곳인지를 거듭해서 묻는다. 희망을 믿어보고 싶은 누군가의 손과 맞잡고 동행하는 것이 ‘불신’인 곳은 아닌지, 나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살려달라는 사람을 위해 손을 내밀 수 있을지? 정의로움을 말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허상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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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영화의 잔혹함에 빗대어 한국사회를 이야기하는 <부산행>은 감독의 전작들처럼 극단적 절망과 비판적 시선을 그 바닥에 깔고 있지만, 깊고 질긴 폭력 앞에서도 서로에 대한 믿음과 단결이 구원일 수 있다는 단초는 남겨둔다. 보편적 정서를 담아내고 있어 세계적으로도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영화지만, <부산행>의 이야기에 유독 울컥할 수밖에 없는 깊은 죄의식과 절망감을 우리는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연상호 감독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부산이 희망일 거라고 이야기하진 않는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 같은 불신의 사회 속에서 구원과 믿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섣부를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재난 블록버스터의 결말이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안도와 위안인 것에 반해, 우리가 <부산행>의 결말을 통해 만나는 그림은 많이 다르다. <부산행>을 통해 연상호 감독이 만들어내는 피비린내 나는 지옥도가 툭 튀어나와 재현하는 것은 계속 변질되기만 할 뿐, 단 한 번도 온전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 여전히 안녕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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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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