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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트가 되라는 게 아니야
자기를 사랑하되, 건강하게 사랑하는 일
대단히 반듯하고 올바를 때만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인정해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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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자기애’라는 단어와 마주하게 된다. 이때 우리가 추구해야할 자기애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우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해 그에게 다가가려다 물에 빠져죽었다는 나르키소스의 나르시시즘적 자기애가 아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로부터 사랑이 피어오르는 것을 의미하지 내 안에서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애와는 혼동해서는 안 되는 태도, 그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자기만 대단하고 뛰어난 존재이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인정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도가 지나치면 오만해지기 마련이다. 주변 사람들 역시 나처럼 특별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잊게 된다. 어딜 가나 자기만이 최고여야 직성이 풀리는 하는 사람은 진정한 자기애를 가진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나약하고 불안한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렬하다. 남에게 인정받아야 안심하면서도 자신에게만 몰입되어 있는 탓에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하고 관계맺음에 있어서도 자기중심적이다. 자기 객관화도 잘 못하고 자기 개념이 과장되어 있는 탓에 다른 사람들은 마땅히 자신에게 찬사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사람들은 내가 빛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런 사람에게 책임감이 있을 리 만무하다. 잘 되면 내 탓이지만 잘못되면 당연히 남의 탓이다. 모두에게 관심 받지 못하거나 모임의 중심이 되지 못하면 예민하게 구는 이기적인 면모를 자기애와 헷갈려서는 안 된다.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이기심을 자기애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병적인 자기애는 무리에서 돋보이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청소년기나 20대 초반 자아성찰과 주변의 성찰 역시 미숙한 그 무렵에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고민하고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런 시기에 유달리 자기 확신에 찬 사람은 특별하고 남달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면 그런 사람들은 자기애를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에너지를 마구 착취하는 유형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에게도 그런 부분들이 있었다. 첫 연애의 애인에게서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넌?”이라는 힐난도 들었다. 연인의 사랑도 내게 주목하고 관심을 주는 여타의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생각했다. 서로가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사랑을 넘어 숭배의 감정까지 가져주길 바랐다. 대단히 제멋대로였고 이기적이었다. 처음부터 자신을 잘 들여다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어린 시절 한두 번의 연애에서 나는 실수투성이였고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그러면서도 사랑받는다는 특별한 지위에 오르면서 기고만장해 버렸다.
하지만 자기 확신이 넘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 보이는 나의 이면에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불완전함이나 열등함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연애 하는 내내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고, 그런 나의 문제들을 상대와 공유하지 못했다. 오히려 꼿꼿하게 널 잃어도 상관없어와 같은 태도를 취해서 상대를 헷갈리고 힘들게 만들었다. 상대를 믿지 못했고 그 연애 안에서 행복한 날보다 쌍꺼풀이 풀릴 정도로 우는 날이 많았다. 약한 자신을 감추고 부정하기 위해서 ‘척’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나의 지난 잘못을 돌이켜 살펴보고 그 모습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단히 반듯하고 올바를 때만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인정해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기 위해선 진짜 나 그러니까 내가 숨기고 싶은 나의 추함도 직면해야 한다. 쉽게 바뀌진 않더라도 그걸 포용하고 더 나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 자기애의 기반이 마련된다.
제대로 된 사랑을 성취하기 어렵다. 자기를 사랑하는 일도 이토록 어렵다. 자기를 사랑하되, 그것이 자기 방어적이거나 도취적인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 건강하게 사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익혀 나가야 하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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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며 제법 깊은 내상을 입었지만 그만큼 현명해졌으며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걸 수줍어하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재생능력으로 사랑할 때마다 소녀의 마음이 되곤 한다. 누군가의 장점을 잘 발견해내고 쉽게 두근거린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등을 썼으며,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