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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길 심프슨, 어린 아이에게 전하는 이야기
스터길 심프슨(Sturgill Simpson) 〈A Sailor’s Guide To Earth〉
복잡한 컬러와 부드러운 멜로디, 아티스트의 과거를 대표하는 고전적인 아메리카나와 현재를 대표하는 실험적인 사운드, 사랑과 행복, 고민과 갈등 등, 아티스트가 표현해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한데 근사하게 담겼다.
두 번째 앨범이자 전작인 <Metamodern Sounds In Country Music>은 결국 아티스트의 향후 행보를 예고한 작품이었다. 작품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It ain’t all flowers」에서의 변칙적인 움직임은 스터길 심프슨 역시 평범하지만은 않은 싱어송라이터라는 사실을 충분히 증명해주었다. 1970년대의 웨일런 제닝스를 닮았다고 할 정도로 옛 컨트리 사운드를 잘 만들어내던 예전의 성향은 세 번째 음반 <A Sailor’s Guide To Earth>가 가진, 전작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해진 양식에 많이 가려진다.
몇 도드라지는 요소들을 짚어가며 여러 갈래로 얽힌 작품의 사운드를 따라가 볼까. 먼저 부유하는 듯한 사운드. 스트링과 브라스, 페달 스틸 기타, 신시사이저, 보컬의 울림을 저 먼 공간으로 전달해주는 부피감 큰 전반의 사운드는 사이키델릭 록 특유의 우주적인 컬러를 음반 전체에 이식한다. 그다음으로는 브라스「Welcome to earth (pollywog)」과 「Keep it between the lines」, 「All around you」에 자리한 트럼펫과 트롬본, 색소폰 등의 관악기들을 동원해 트랙리스트 곳곳에 소울과 펑크(funk)의 색채를 더한다. 빈티지한 알앤비와 소울 사운드에 특화된 댑-킹스의 브라스 파트 멤버들이 이 지점에서 큰 기여도를 보인다. 더 나아가 제일 마지막 트랙인 「Call to arms」에서는 토킹 헤즈 식의 펑크 뉴웨이브가 등장하기도 한다. <A Sailor’s Guide To Earth>에는 예의 아메리카나 사운드 뿐 아니라 위와 같은 다양한 접근들이 여러 방향으로 교차해가며 만든 다각화된 사운드가 같이 존재한다.
스터길 심프슨의 훌륭한 음악적 역량은 바로 이 부분에서부터 드러난다. 아티스트는 여러 재료를 뒤섞어 색다른 색감을 끌어내고 이를 적재적소에 적용시키는 데에 능한 모습을 보인다. 막 태어난 아들에게 크나큰 애정과 환영으로 인사를 건네는 「Welcome to earth (pollywog)」에는 풍성한 스트링과 브라스를, 유머러스한 표현들로 아이를 가르치는 「Keep it between the lines」에는 흥겨운 소울 펑크 터치를, 사랑하는 아내에게 자신의 취약한 내면을 이야기하는 「Oh Sarah」에는 부드럽게 소리를 뽑아내는 현악 라인을 얹어 곡마다의 주제에 알맞은 사운드를 주조해냈다. 몽환적으로 재구성한 너바나의 「In bloom」과 토킹 헤즈 느낌의 펑크(funk)로 시작하는 「Call to arms」 또한 이 위치에서 짚고 넘어갈만하다. 이와 같은 곡들이 모여 이룬 다채로운 트랙리스트에서는 진부함을 낳는 전형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더 나아간 지점에 또 다른 감상 포인트가 존재한다. 널찍이 떨어져서 작품을 바라보자. 곳곳에 밴 각양의 스타일들이 결과물을 산만하게 만들 법도 하다만, 음반은 상당히 안정적이다. 우선 <A Sailor’s Guide To Earth>는 일종의 콘셉트 앨범이다. 어린 아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들이라는 테마가 서사의 핵심에 자리해있다. 이러한 동인이 음반의 줄기를 관통함에 따라 작품 내에는 커다란 맥락과 함께 통일감이 생겨난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터길 심프슨은 매 순간 좋은 선율을 선사할 줄 아는 아티스트다. 외부에서 행해지는 활발한 사운드 혼합과는 반대로, 내부에서는 듣기에 이렇다 할 어려움이 없는 멜로디들이 시종일관 찰랑거린다. 굵직한 주제와 푸근한 곡조들이 결합하며 낳는 안정감은 소리들이 조금은 어지럽게 움직여대는 앨범의 한가운데서 작품에의 접근성을 크게 끌어올린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그 어느 하나 모자랄 게 없는 앨범이다. 복잡한 컬러와 부드러운 멜로디, 아티스트의 과거를 대표하는 고전적인 아메리카나와 현재를 대표하는 실험적인 사운드, 사랑과 행복, 고민과 갈등 등, 아티스트가 표현해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한 데 근사하게 담겼다. <A Sailor’s Guide To Earth>는 훌륭한 작품이다. 솔로 활동을 시작해 세 번째 음반을 내기까지에 이르는 결코 적지 않은 시간 속에서 이 싱어송라이터는 어제와 똑같은 장면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분명 스터길 심프슨은 계속해 변화하고 있다. 그가 써 내려가고 있는 창작의 타임라인 역시 방향을 가리지 않고 뻗어 나가고 있다. 그러한 여정의 위에서 <A Sailor’s Guide To Earth>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록될 테다.
2016/04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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